서사적이고 규모가 큰 작품을 좋아하는 리들리 스코트(Ridley Scott)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 2005년)은 그의 남성적인 연출 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작이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기사들의 십자군 원정을 다룬 이 작품은 칼과 창이 번뜩이며 피가 튀고 비명이 울리는 중세시대의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전쟁을 개각도 촬영과 슬로 모션을 적절히 섞어서 핏방울과 흙먼지까지 보일 만큼 세세하게 묘사했다.
덕분에 '글래디에이터' 못지않게 실감 나고 박력이 넘친다. 2003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스코트 감독은 같은 칭호를 받은 기사로서 과거의 기사 이야기를 역사에 충실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실존 인물과 각종 소품을 시대의 고증에 맞게 재현했으나 정작 중요한 메시지는 지극히 서구 편향적이다. 겉보기에는 십자군과 이슬람군 모두 내부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모습을 그려 공평하게 다룬 것 같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는 결코 두 개의 선이 충돌할 수 없는 법, 어느 한쪽은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다.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고 십자군의 목을 잘라 쌓아 놓은 참혹한 장면은 이슬람군을 악귀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이슬람 사원도 예수의 무덤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모두 소중하다"는 주인공 발리안(올랜도 블룸 Orlando Bloom)의 대사도 가식적으로 들린다.
이라크 전쟁 이후 911 테러 등으로 서구인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이슬람 세계를 다독이려는 다분히 정치적인 메시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는 끝까지 지켜보게 만들 만큼 재미있다.
중반까지 약간 늘어지는 게 흠이지만 중반 이후 이슬람군과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면 블록버스터의 위력이 제대로 발휘된다. 무엇보다 십자군 전쟁의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서 이야기의 흡입력을 끌어올린 스코트 감독의 연출이 돋보인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영상은 화질이 훌륭하다. DVD 타이틀은 원경과 중경의 샤프니스가 떨어져 윤곽선이 예리하지 못했는데 블루레이는 이를 잘 보강했고, 햇빛에 반사되는 금속 질감 등 색감도 잘 살렸다.
DTS 음향은 블록버스터의 위용을 제대로 발휘한다. 저음이 부드럽고 둔중하며 채널별 분리도가 좋아 서라운드 효과가 뛰어나다.
영화 본편을 수록한 블루레이와 별도로 DVD 디스크에 부록을 따로 담았다. 제작과정, 역사 다큐멘터리, 인터뷰 등 다양한 내용이 한글자막과 함께 수록됐는데 ‘역사 VS 할리우드’와 ‘AE무비리얼’ 등 각각 40여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2편이 역사와 영화를 비교해 놓아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