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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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은이 '새벽비'

울프팩 2009. 6. 11. 08:21

혜은이의 노래는 요새 들어도 감칠맛 난다.
노래도 잘했지만, 특히 좋은 곡을 쓴 작곡가 길옥윤을 잘 만난 영향도 크다.

국민학교 시절, 카세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새벽비' '제 3 한강교' '감수광' '진짜진짜 좋아해' 등 혜은이의 히트곡을 곧잘 따라 부르던 생각이 난다.

가수 혜은이의 본명은 김승주.
1956년생이니 올해 53세다.

제주에서 태어났지만 50년대 악극단 낙랑쇼의 단장 겸 유명 변사였던 아버지 김성택을 따라 대전으로 옮겨와 거기서 여고를 졸업했다.
혜은이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고교 졸업 후 바로 밤무대 가수로 활동했다.

그의 인생이 달라진 것은 바로 작곡가 길옥윤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일본 강점기 경성치과대를 나온 길옥윤은 50년대 일본 재즈클럽과 국내 미군부대를 전전하며 색소폰을 불었다.

이후 60년대 길옥윤은 작곡가로 들어서 가수 패티 김의 히트곡 '서울의 찬가' '이별' '사랑하는 마리아' 등을 만들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패티 김과 결혼했다가 이혼하며 침체기를 걷던 중 75년 열아홉살이었던 혜은이를 만나 데뷔곡 '당신은 모르실거야'를 만들며 다시 일어섰다.

이후 혜은이는 길옥윤이 만든 곡 '진짜 진짜 좋아해'(77년), '감수광'(78년), '새벽비'(79년), '제 3 한강교'(79년) 등을 줄줄이 히트시켰다.
그 밖에 혜은이가 부른 '작은 숙녀'(83년), '열정'(85년), '파란나라'(85년), '비가'(89년) 등도 꽤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혜은이는 90년 탤런트 김동현과 결혼하며 가수 생활을 접었다.
남편이 영화 제작에 나섰다가 실패하며 빚을 지고 개인적인 우환까지 겹쳐 방송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것.


이후 2002년 미사리 조정경기장 근처에 '열정'이라는 카페를 냈으며 2007년 22번째 앨범을 내며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한편 길옥윤은 자신이 운영하던 음악카페 '창고'가 잘 안돼 빚을 지고 일본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이후 마샬 제도 국가를 작곡하는 등 해외에서도 음악 활동을 하던 그는 94년 귀국했으나 폐암과 척추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혜은이-'새벽비'

혜은이-'제3한강교'
이 노래는 전두환 정권 시절 일부 가사가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개사됐다.
문제가 된 가사는 '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고 우리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와 '이 밤이 새면은 첫 차를 타고 이름모를 거리로 떠나갈 거에요'라는 대목.
이 부분은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와 '이 밤이 새면은 첫 차를 타고 행복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에요'로 바뀌었다.

혜은이-'진짜진짜 좋아해'
이 노래는 청춘물을 즐겨 만든 문예송 감독이 임예진을 주연으로 찍은 동명 영화의 주제가로 쓰였다.

혜은이-'작은 숙녀'
이범희가 만든 이 곡은 혜은이가 이범희를 만난 뒤 네 번째 히트곡이었다.

혜은이-'열정'
김희갑(작곡)-양인자(작사) 부부가 만든 대표적인 히트곡.

혜은이-'제3한강교'
컬러TV 방송이 처음 시작된 80년 영상. 앳된 혜은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