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안녕하세요(블루레이)

울프팩 2017. 8. 5. 17:51

1970, 80년대 익숙한 풍경 중 하나가 만화가게다.
만화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만화책을 빌려주는 대본소다.


가게에 찾아가 읽기도 하고 한 번에 여러 권을 빌려 집에 와서 배를 깔고 누워 보기도 했다.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던 1970년대에 만화가게는 아이들의 오락실이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이 만화가게에서 돈을 받고 TV도 보여줬다.
한 번에 10원인가 20원인가 내고 시간 맞춰 가면 TV에서 방영하던 '황금박쥐' '009' 등의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었다.


늘 이 돈을 내고 보기 힘들었던 아이들은 만화가게의 미닫이 문틈으로 몰래 들여다봤다.
그러다 주인에게 들키면 눈 앞에서 문이 쾅 닫히며 한 소리 들어야 했다.


당시로서는 TV가 워낙 비싸서 쉽게 사기 힘들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흑백 TV 한 대 가격이 당시 웬만한 월급쟁이 한 달치 월급과 맞먹는 쌀 한 가마니 값이었다.


그만큼 TV가 있는 집 아이들은 부러움을 샀고, 주말에 프로레슬링 중계라도 있는 날이면 다 같이 몰려가 경기를 봤다.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추억의 옛이야기가 됐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안녕하세요'(1959년)는 TV가 보급되던 1970년대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영화다.
검정 교복을 입고 등하교하는 학생들과 TV를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방문 판매를 하는 방물장사들, 사소한 오해로 이웃 사이에 틈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아기자기한 연속극처럼 담아냈다.


아이들 사이에 방귀 뀌기 시합이나 강매에 나선 방물장사를 쫓아보내는 할머니 등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소소한 유머가 절로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유쾌한 작품이다.
마치 이웃집을 기웃거리듯 카메라가 이 집 저 집 넘나들며 일상의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방식은 언뜻 보면 무의미해 보이지만 이 속에서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


"의미 없이 주고받는 안녕하세요란 말들이 인정이 흐르는 살 만한 세상을 만든다"는 대사가 이를 대변한다.
그러면서도 "TV는 1억 명을 백치로 만든다"는 대사를 통해 막 퍼져나가던 TV에 대한 경계심을 담았다.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는 듯한 유쾌하고 정겨운 작품이다.
더불어 우리네 풍경과 익숙한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1080p 풀 HD의 4 대 3 풀 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지글거림이 보이기는 하지만 화질이 괜찮다.
음향은 LPCM 2.0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전혀 없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군복 같은 검정 교복은 일본 학생 뿐 아니라 우리도 1982년까지 입었다. 일본 애들은 머리라도 길렀지만 우리는 이등병처럼 머리까지 박박 밀고 운동화도 반드시 검정색을 신어야 했다. 마지막 교복세대여서 검정 교복을 보니 옛 생각이 난다.

동네 아이들이 14인치 흑백TV 앞에 모여 스모 경기를 보고 있다. 1970년대 우리도 저렇게 모여앉아 김일, 여건부의 레슬링 경기를 봤다. 집에 있던 금성사 19인치 흑백TV는 다리가 달렸고, 브라운관 앞에 좌우로 여닫는 미닫이 문까지 있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전매특허인 다다미샷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카메라가 집집마다 오가며 동네 주민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화들을 TV 드라마처럼 보여준다.

TV를 사달라고 떼를 쓰며 무언 시위를 벌이는 아이들.

어려서 다닌 국민학교는 영화 속 장면처럼 교실과 복도 바닥이 나무로 된 마루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모두 일주일에 한 번 손걸레를 가져와 왁스를 묻혀 반들반들 윤이 나게 닦았다. 더불어 투박하게 만든 책걸상은 어찌나 무겁던 지, 저학년들은 쉽게 다루기 힘들었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원한 페르소나인 류 치슈가 아버지 역할로 등장. 그의 잔잔한 연기는 언제 봐도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에지로 토노는 할리우드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 나구모 중장 역을 맡아 눈에 익다. 마유즈미 토시로가 맡은 음악도 좋다.

등장인물들은 "때로는 낭비가 사람 사는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면서도, TV에 대해서는 "TV는 골칫덩이"라며 "세상이 너무 편해져도 문제가 많다"고 비판한다. 극 중 제품은 파나소닉 브랜드로 유명한 마쓰시타의 14인치 TV다.

이웃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다보니 절로 알게 되는 이웃의 관심 때문에 빚어지는 오해와 불편을 다뤘다. 결국 이런 오해와 불편을 막아주는 것이 제목 그대로 '안녕하세요'라는 따뜻한 인사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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