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나인 하프 위크 (블루레이)

울프팩 2013. 2. 15. 22:43

인터넷이 없던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 잘만 킹 감독의 작품들은 금기시된 것들을 알려주는 교과서였다.
당시 비디오대여점에 꽂힌 '레드슈 다이어리' '투 문 정션' '와일드 오키드' 같은 그의 작품들은 피 끓는 청춘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였다.

그만큼 1980, 90년대 청춘들에게 잘만 킹은 음지의 스승인 셈이다.
원래 잘만 킹은 배우였다.

그러나 배우로서 별반 재미를 보지 못하자 잘만 킹은 소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제작 쪽으로 돌아섰다.
그 첫 작품이 그가 제작한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나인 하프 위크'(9 1/2 Weeks, 1986년)다.

원래 잘만 킹이 감독하려 했으나 초보인 그에게 작품을 선뜻 맡기는 사람이 없어, 당시 '플래시댄스'로 주가를 올린 애드리안 라인을 감독으로 끌어 들였다.
킴 베신저와 미키 루크가 주연한 이 작품은 워낙 강도높은 영상들을 인터넷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싱겁다.

하지만 인터넷이 없던 1980년대에 이 작품은 별반 노출이 없는데도 대단한 화제였다.
영상도 영상이지만 이야기 자체가 파격적이기 때문.

커리어우먼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뉴요커 여성이 남자를 만나 이색적인 성에 눈을 뜨는 내용이다.
이색적인 성이란 흔히 말하는 변태, 즉 새디즘과 마조히즘을 다룬 SM의 세계다.

그렇다고 밧줄로 묶고 때리거나 괴롭히는 등 이상한 짓을 하는게 아니라, 눈을 가리거나 음식을 이용하고 바닥을 기도록 시키는 정도다.
그런데 그 과정을 애드리안 라인 감독은 특유의 감각적 영상으로 아주 스타일리시하게 표현했다.

갖가지 음식이 뿜어내는 영롱한 색감과 역광을 이용한 실루엣의 활용 등은 노출이 없어도 충분히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마디로 세련된 에로티시즘 영화가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여기에 음악에 강한 애드리안 라인 감독답게 영상과 어울리는 유리스믹스, 브라이언 페리, 조 카커, 빌리 할리데이, 장 미셀 자르의 음악과 노래 등을 적절히 섞어 청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만큼 이 작품이 블루레이로 나온다길래 내심 기대가 컸다.

하지만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의 화질은 실망스럽다.
지글거리는 현상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샤프니스도 떨어진다.

그래도 DVD보다 낫다는 점에 위안을 삼아야 할 듯.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간헐적인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주며, 부록은 전혀 없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한창 때 미모가 빛났던 킴 베신저와 꽃미남 배우였던 미키 루크가 주연을 맡았다.
특이하게 음식을 이용해 성감을 자극하는 점들이 이색적이다. 이 작품은 1970년대 엘리자베스 맥닐이 쓴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음식물의 영롱한 색감과 소리가 어우러져 시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점이 이 작품의 묘미였다.
느리게 움직이는 카메라는 자극적이며 탐미적이다. 촬영은 피터 비지우가 맡았다. 이름이 생소할 수 있지만 그는 유명한 걸작인 알란 파커 감독의 '핑크 플로이드의 벽' '벅시 말론' '트루먼 쇼' 등 감각적인 작품을 찍었다.
원작 소설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승마용품 점에서 채찍을 고르며 시험해 본다는 구실로 여주인공의 치마를 걷어올리고 허벅지를 채찍으로 때리는 대목이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허공에 휘두르는 선에서 그친다.
때로는 역광을 마다하지 않는 과감한 조명과 그림자를 적극 활용해 뮤직비디오처럼 분위기있는 영상을 만들어 냈다.
영화는 새디즘과 마조히즘, 즉 SM을 다루고 있다. 프랑스의 사드 후작에게서 유래한 새디즘과 오스트리아 작가 자허 마조흐의 이름을 딴 마조히즘이란 정신분석학적 용어를 만든 사람은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크라프트 어빙이다. 프로이트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성적 본능의 구성 요소로 봤다.
오디오 파일들에게 영원한 로망인 매킨토시 블루가 빛나는 MC2155 파워앰프. 매킨토시 앰프들 가운데 비교적 보급형에 속하는 이 앰프는 채널당 출력이 150와트다.
영화에 삽입된 유리스믹스의 'This City Never Sleeps', 브라이언 페리의 'Slave to Love', 루바의 'Let It Go', 장 미셀 자르의 'Arpegiator', 빌리 할리데이의 'Strange Fruit' 등의 음악들은 영상과 참 잘 어울렸다.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을 지켜보게 하거나, 연인이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도록 시키고 지켜보는 등 관음증 적인 요소들도 등장한다. 6년간 암과 싸웠던 잘만 킹 감독은 지난해 1월 70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나인 하프 위크
공경희 역/엘리자베스 맥닐 저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나인 하프 위크 : 블루레이
예스24 | 애드온2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정뱅이 천사  (0) 2013.02.19
스윙걸즈 (블루레이)  (2) 2013.02.17
럼블피쉬  (2) 2013.02.12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2) 2013.02.10
플레이타임  (0) 2013.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