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007 스카이폴 (4K 블루레이)

울프팩 2019. 11. 25. 21:08

"취미가 뭔가?" "부활이지."
악당과 007이 영화 속에서 나누는 이 대사가 이번 작품의 테마다.

샘 멘데스 감독이 007 영화 탄생 50주년을 맞아 23번째 시리즈물로 내놓은 '007 스카이폴'(Skyfall, 2012년)은 악당이 파괴한 첩보조직과 제임스 본드의 부활을 다루고 있다.
부활은 소멸을 전제로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제임스 본드를 빼고는 모든 캐릭터가 새로 태어났다.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출발을 예고하듯 007만 빼고 더 젊어지고 강건해 졌다.

오랜 세월 책상 앞에만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여성 머니페니는 총질을 마다 않는 검은 피부의 섹시한 젊은 여인으로 거듭났고, 데스몬드 르웰린이 타계할 때까지 연기한 늙은 과학자 Q는 컴퓨터를 귀신같이 다루는 젊은이가 됐다.
압권은 007이 속한 대외첩보조직 MI6의 수장 M이다.

17년간 그 자리를 지킨 여성 보스 주디 덴치 대신 다시 남자가 헤드를 맡았다.
원작 소설은 물론이고 1탄부터 버나드 리가 맡았던 점을 감안하면 M은 원래 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새로운 캐릭터들은 옛 007 시리즈를 그리워 하듯 각종 향수어린 요소들과 함께 등장한다.
1960년대 숀 코네리가 007을 맡았던 시절 애마였던 애스턴마틴 DB5를 비롯해 두툼한 방음 출입문이 달린 M의 사무실,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 벙커였던 지하 사무실, 그리고 최후의 결전에서 007이 집어든 무기는 자동소총 대신 묵직한 엽총이다.

샘 멘더스 감독은 옛 것과 새 것의 조화를 통해 이 작품 이후 달라질 007을 예고한 셈이다.
그 과정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은 것은 '아메리칸 뷰티' '로드 투 퍼디션' 등 일련의 작품에서 탁월한 연출력을 발휘한 감독의 내공 덕분이다.

이 작품 역시 느와르물인 '로드 투 퍼디션'처럼 묵직하게 가라앉는 분위기로 승부를 건다.
부모 자식 같은 M과 본드의 오랜 인연이 조직 이란 이름아래 얽히고 설키며 애증과 회한으로 마무리되는 과정을 보면 등장인물들에 대한 멘더스 감독의 남다른 성찰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중요한 인물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장소가 본드의 어린 시절 기억을 간직한 시골 집이라는 설정은 너무 작위적이다.

오히려 안전하게 피신하려면 군대가 더 나을 수도 있다.
본드가 고른 스카이폴은 피신의 장소라기보다는 결투의 장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매력적이다.
변함없이 선 굵은 액션을 보여준 다니엘 크레이그와 철의 여인을 연상케 하는 주디 덴치,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하비에르 바르뎀의 악역 연기가 훌륭했고, 이스탄불 상하이 런던 등을 돌며 촬영한 볼거리 가득한 영상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007의 3대 요소인 탈 것을 이용한 추격전, 주먹질과 총질이 빠지지 않는다.

국내 출시된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2160p UHD의 2.40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화질이 우수하다.

칼 같은 윤곽선과 깔끔한 색감은 4K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준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소리의 이동성이 확실해서 리어 채널에서 프론트 채널로 넘어가는 소리의 궤적을 확인할 수 있다.
부록으로 감독 음성해설, 제작자 해설, 제작과정, 시사회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오토바이 추격전은 터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 옥상에서 촬영. 동명의 주제가는 아델이 불렀다.

달리는 기차에서 벌이는 액션은 터키의 아다나에서 찍었고, 클로즈업은 그린 스크린 촬영을 했다. 이 작품에는 소니TV, 소니 스마트폰, 소니 노트북 등 온통 소니 제품이 나온다.

이브로 나오는 나오미 해리스. 그의 성은 맨 끝에 나온다. 샘 멘데스 감독은 시리즈 가운데 '007 죽느냐 사느냐'를 가장 먼저 봤고, '007 위기일발'을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았다.

샘 멘데스 감독은 평생을 살아온 런던을 이번 작품의 주요 무대로 삼았다.

영국 첩보계의 상징인 MI6 건물 폭파장면은 전통에 빛나는 007 시리즈 촬영장소인 파인우드스튜디오에 축소 모형을 만들어 놓고 폭파하며 촬영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역대 007 가운데 투박한 액션이 가장 잘 어울린다.

유니언잭에 덮힌 직원들의 관이 안치된 장면은 그린위치 해양박물관에서 찍었다.

위기를 맞은 MI6가 처칠의 지하 벙커로 숨어 들었다. 내부는 파인우드 스튜디오에 만든 세트.

벽에 걸린 그림은 J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이다. 고철이 돼 퇴역하는 낡은 군함을 그린 이 그림은 여러가지를 상징한다. 위기를 맞아 흔들리는 첩보기관의 보스 M과 예전 같지 않은 007에 대한 은유다. 자세히 보면 그림도 약간 기울어 있다. 제작진이 불안해 보이도록 일부러 그렇게 걸었다.

불야성의 도시 상하이. 워쇼스키 형제처럼 샘 멘데스 감독도 여기서 세기말적인 미래 도시를 봤다.

파란 불빛이 물결처럼 흘러가는 상하이의 얀얀 고속도로.

샘 멘데스 감독은 이 작품을 찍으며 스릴러의 교과서인 히치콕 작품들을 참조했다. 엘리베이터 장면은 '현기증' 등을 참고했고, 히치콕의 여러 작품에서 음악을 맡은 버나드 허먼 스타일의 음악을 차용했다. 엘리베이터는 세트다.

이브와 007의 관계를 성적으로 암시하는 장면. 히치콕은 "살인 장면은 러브 씬처럼, 러브 씬은 살인 장면처럼 찍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샘 멘데스 감독도 히치콕의 말을 따라 위험천만한 면도칼을 이용해 은근히 섹시한 장면을 만들어 냈다.

마카오 카지노는 파인우드 스튜디오에 지은 세트다. 여기서 스테디캠을 이용해 촬영.

유명한 상하이 공항 외관. 내부는 영국 애스콧 경마장을 공항처럼 꾸며서 찍었다.

마카오 카지노 결투에 나오는 코모도 도마뱀은 CG로 만들었다.

'젓지 말고 흔들어' 만드는 마티니는 월터PPK와 함께 본드의 상징이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마티니 전문가를 초빙해 촬영했다. 본드걸은 베레니스 말로가 연기. 베레니스는 캄보디아와 프랑스계 혼혈이다.

악당의 소굴로 나오는 유령 도시는 군함도로 알려진 일본의 하시마 섬. 제 2차 세계대전당시 지하에서 탄광이 발견되자 미쓰비시가 이를 개발하려고 도시를 만들었다. 주로 강제 징용된 조선인과 중국인들이 탄광에 들어가 혹독한 조건 아래 노동을 했고, 패전 무렵 탄광에서 학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시마 섬의 유령 도시 거리는 파인우드 스튜디오에 만든 세트. 세트를 만든 이유는 실내 촬영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악당을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 그의 등장을 롱테이크로 잡아 집중력을 높였다.

하시마 섬은 탄광이 고갈된 뒤 사람들이 모두 떠나 무인도가 됐다. 이후 관광지가 됐으나 섬을 찾은 사람들이 숱한 사고를 당하면서 지금은 출입이 금지돼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갈 수 있다.

처음으로 런던 체링크로스역에서 촬영. 달려오는 기차는 실제 운전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손으로 밀었다.

천장이 폭파되며 지하철이 쏟아져 내리는 장면은 세트에 트랙을 설치한 뒤, 18m 길이의 객차 2량을 만들어 중장비에 연결된 케이블로 끌어 내렸다.

007의 애마 애스턴마틴 DB5. 007 '골드핑거'에서는 핸드브레이크의 버튼을 누르면 옆좌석이 튀어나갔다. 이 작품에서는 이를 반영해 본드가 옆좌석에 앉은 M을 바라보며 핸드브레이크에 대한 농담을 건넨다.

스카이폴로 향하는 장면은 스코틀랜드의 글렌코에서 촬영.

스카이폴 저택은 앨더샷에서 촬영. 군대 실험실로 쓰이던 집을 이용.

군용헬기인 멀린을 사용.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접근하는 장면은 '지옥의 묵시록'을 연상케 한다.

샘 멘데스 감독이 히치콕 만큼이나 많이 참조한 감독이 바로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이다. 특히 집 안 터널을 이용해 달아나는 장면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집의 성'을 인용했다. 폭파된 집은 세트다.

호수와 주변 황무지는 야외가 아니라 영국 롱그래스 촬영소에 만든 거대한 세트다. 꽁꽁언 호수는 왁스와 강화유리를 이용해 만들었고 그 밑에 수조를 설치했다. 물에 빠진 뒤 수중 장면은 파인우드 스튜디오에 있는 수조에서 찍었다.

화이트홀이 내려다 보이는 지역은 일반인이 접근 불가능한 곳이다. 이 작품 시사에는 찰스 황태자도 참여.

1962년 개봉한 시리즈 최초의 작품인 '007 살인번호'를 찍은 세트로 복귀했다.

007 스카이폴 : 블루레이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다니엘 크레이그 컬렉션 (8Disc 4K UHD 2D 슬립케이스 한정판) : 블루레이
예스24 | 애드온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