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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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블루레이)

울프팩 2013. 7. 27. 15:23
비관과 우울의 음유시인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만든 '멜랑콜리아'(Melancholia, 2011년)는 제목 만큼이나 우울하고 암담한 영화다.
영화의 전반부는 우울증에 걸린 여주인공 커스틴 던스트의 이야기로 진행되고, 후반부는 지구를 덮치는 거대 행성의 이야기로 흘러 간다.

즉, 우울증에 걸린 여인과 지구 종말이라는 두 가지 암울한 요소가 만나 무겁게 가라앉는 작품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여주인공처럼 심한 우울증을 앓아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런 만큼 이 작품에는 그의 개인적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감독은 애써 희망을 이야기하거나 미화하려 들지 않는다.

어찌 세상이 즐겁고 희망 가득한 일 뿐이겠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감독은 지구의 종말이라는 다소 황당한 주제를 들어 이야기한다.

지구 종말을 맞는 사람들의 절규와 세상 어디에도 피할 곳 없는 참담한 비극을 고스란히 감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담담하게 펼쳐 놓았다.
무겁게 가라앉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눈길을 끄는 것은 뛰어난 영상 때문이다.

더러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기교에만 치우친다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도입부에서 보여준 아주 느리게 진행되는 영상들은 놀라운 이미지의 향연 그 자체다.
마치 최후의 순간을 앞두고 1초도 아깝다는 듯 최대한 시간을 늘여서, 말이 주저 앉고 바람이 불고 물이 흘러가는 지구 곳곳의 순간들을 재현한 영상들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만큼 대중적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이색적인 영화다.

블루레이 동호회인 DVD프라임에서 DP시리즈로 내놓은 블루레이 타이틀은 영화 본편의 자막을 화면 안에 둘 지 밖에 둘 지를 설정할 수 있을 만큼 세심하게 제작됐다.
TV나 모니터로 보는 경우 별 상관이 없을 수 있지만, 프로젝터를 이용해 대화면으로 보는 경우 자막을 화면 밖에 두는 기능은 아주 유용하다.

1080p 풀HD의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영상은 화질이 훌륭하다.
클로즈업 장면에서도 화소가 어느 하나 뭉개지지 않고 깔끔하게 재현될 만큼 디테일이 뛰어나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괜찮은 편이다.
전체적으로 소리가 청취 공간을 감싸는 가운데 저음이 으르렁거리듯 무겁게 울린다.

부록으로 영화에 대한 소개와 시각효과, 영상 스타일, 감독 및 배우들의 인터뷰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더불어 감독의 또다른 인터뷰 내용을 담은 소책자도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초반 등장하는 음악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1막 서곡이다. 이 음악은 '트리스탄 코드'로 유명하다. F에서 시작해 F로 돌아오지 않고 G#으로 끝나는 화음은 화성악에서 보면 일탈에 해당한다. 그만큼 이 코드는 독특한 느낌을 준다.
감독이 작품 제작에 영향을 받은 두 편의 그림 가운데 하나인 피터 브뢰헬의 그림 '눈 속의 사냥꾼'. 도입부에 나오는 이 그림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에도 영향을 줬다.
영향을 받은 또 한 편의 그림은 존 에버렛 밀레이의 유화 '오필리아'다. 도입부에서 커스틴 던스트가 부케를 안고 떠내려 가는 장면은 '오필리아'를 흉내냈다.
카메론 디아즈의 언니로 나온 샤를로트 갱스부르. 언니는 정상적인 사람들을 상징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평소 타르코프스키 감독을 자주 언급한다. 그만큼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 전작인 '안티크리스트'도 타르코프스키에게 헌정했다.
결혼식을 올리는 집은 스웨덴에서 촬영. 멜랑콜리아 행성은 크레인에 조명을 매달아 촬영.
원래 여주인공은 페넬로페 크루즈가 할 예정이었으나 크루즈의 '캐리비언의 해적' 출연 때문에 무산됐다.
올가 쿠릴렌코도 여주인공 물망에 올랐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도록 시종일관 들고찍기를 고집했다.
천체 물리학자들은 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이 낮다고 한다. 하지만 행성이 이 영화처럼 태양 뒤쪽에서 접근하면 태양에 가려 발견하기 어렵다고 한다.
감독은 페넬로페 크루즈와 편지를 주고 받다가 작품 아이디어를 얻었다. 크루즈는 편지에서 두 하녀가 주인을 죽이는 장 주네의 연극 '더 메이드'를 언급했고, 감독은 두 하녀를 자매로 바꿔 작품을 구상했다.
멜랑콜리아는 여주인공의 우울증과 지구 종말을 부르는 행성의 이름 등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다. 우울증을 앓는 여주인공은 멜랑콜리아 행성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감독에 따르면 종말의 순간 여주인공이 침착할 수 있는 이유는 "우울증 환자들은 잃을게 없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두려울 게 없는 반면, 보통 사람들은 잃을 게 너무 많아 당황하고 공포를 느끼게 된다는 것. 주인공의 언니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멜랑콜리아
Melancholia (멜랑콜리아) (Blu-ray)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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