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폴리스

마르잔 사트라피와 뱅상 파로노가 공동감독한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2007년)는 독특한 애니메이션이다.
그래픽 노블로 유명한 마르잔 사트라피의 동명 원작을 언더그라운드 애니메이터인 뱅상 파로노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내용은 팔레비 왕정이었던 1978년부터 호메이니의 혁명 기간까지 16년간 이란의 모습을 담았다.
실제로 이란에서 나고 자라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한 사트라피의 자전적 경험이 대부분 녹아 있다.

온 몸을 검은 차도르로 가리고, 미국 문물을 모두 거부당한 채 암흑같은 혁명기를 살아야 했던 소녀는 유학을 가서도 이방인으로서 살아야 하는 또다른 아픔을 겪는다.
결국 이란으로 돌아오지만 완고한 종교가 지배하는 강압적인 체제에 짓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결혼까지 실패해 결국 이란을 떠나게 된다.

이런 내용은 비단 주인공의 이야기일 수 만은 없다.
그 시절을 견디고 버틴 숱한 이란인들을 대신한 초상화다.

술조차 마실 수 없어 밀주를 담그고, 화장도 금지된 채 마음대로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명분이 어찌됐든 사람을 옭아매는 체제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숨조차 쉬기 힘든 이란 땅을 떠난 사트라피는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주목을 받았고,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2007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과 밴쿠버 국제영화제 인기상을 받았다.

원작의 캐릭터를 잘 살린 애니메이션은 암울한 이란 모습을 흑백으로 처리해 오래된 고전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단지 흑과 백의 명암만 존재하는 그림은 다양성을 거부하는 이분법적인 사회를 상징하는 듯하다.

오히려 그림이기에 실사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면서 내재된 메시지가 강렬하게 부각됐다.
여기에 캐릭터의 선은 최대한 단순화시켜 마치 '아라비안나이트' 풍의 구전설화 같은 느낌을 살렸다.

결코 짧지 않은 격동의 세월을 함축적인 이야기와 상징적인 그림으로 잘 묘사한 작품이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흑백 애니메이션이다보니 흠이나 잡티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제작과정, 감독의 일부 장면 해설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서방의 모습은 컬러, 이란은 흑백으로 묘사했다.

이란의 특징을 동화책의 삽화 같은 그림으로 잘 묘사했다.

흑백 영상이 오히려 반대파를 무조건 찍어 누르는 혁명기의 암울한 이란 풍경을 더 강조했다.

흑백 그림과 더불어 페이드 인과 페이드 아웃으로 장면을 전환해 옛날 영화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내용과 그림은 마르잔 사트라피의 원작을 바탕으로 했지만 내용은 책과 약간 다르게 전개된다.

밑그림 뿐 아니라 원화 위에 선을 그리는 트레이싱 작업도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모두 손으로 했다. 트레이싱을 손으로 처리하려면 선의 굵기가 일정하고 깔끔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까다롭고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마르잔 사트라피는 직접 몸으로 캐릭터들의 동작을 연기했고, 극 중 삽입된 'Eye of The Tiger' 노래는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TV에서 나오는 범죄 영화를 묘사한 장면. 대번에 장 가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느낌을 잘 살렸다.

애니메이션 작업은 사트라피의 아파트겸 스튜디오에서 했다.

페르세폴리스는 그리스어로 페르시아의 도시라는 뜻. 1969년 이란에서 태어난 마르잔 사트라피는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한 뒤 이란으로 돌아갔으나 이혼하고 1994년 프랑스로 이주했다.

주인공 마르잔의 어머니와 마르잔 목소리는 프랑스의 대배우 카트린느 드느브와 그의 딸 키아라 마스트로얀니가 연기했다.

원작 그래픽 노블은 2000년 첫 권을 시작으로 4년 동안 4권에 걸쳐 나왔다. 국내에도 2권으로 묶여서 번역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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