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칼리귤라 (블루레이)

울프팩 2014. 1. 13. 23:56

영화 '칼리귤라'(Caligula, 1980년)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품도 드물 것이다.
우선 제작진의 면면을 보면 대충 어떤 영화인 지 감이 온다.

** 그들이 왜 뭉쳤을까 **

'모넬라' '올 레이디 두 잇' '살롱 키티' 등 에로틱한 영화로 유명한 틴토 브라스 감독이 만들었고, 포르노잡지인 펜트하우스가 제작했다.
이쯤되면 대충 감이 온다.

하지만 출연진을 보면 막연하게 포르노성 영화라는 추측이 무색해진다.
'시계태엽 오렌지' 'if...'의 말콤 맥도웰, '아라비아의 로렌스' '마지막 황제'의 피터 오툴, '백야' '레드'의 헬렌 미렌, '샤인' '간디' '미스터 아더'의 존 길구드 등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여기에 '벤허'의 공동 각본을 쓰고 '링컨' 평전을 집필한 미국의 유명 작가 고어 비달이 극본을 썼다.
아주 막강한 제작진이다.

이들은 함께 뭉쳐 서기 37년 로마제국의 제 3대 황제로 등극한 칼리귤라의 난삽하고 엽기적이며 잔혹한 이야기를 변태 포르노같은 영화로 만들었다.
이름꽤나 알려진 배우들이 왜 이런 영화에 출연할까 싶은데 피터 오툴, 존 길구드처럼 비달과 개인적 친분에 얽혔거나, 틴토 브라스 감독의 설득 등으로 영화에 합류했다.

그렇다보니 영화가 복잡 미묘하다.
틴토 브라스나 펜트하우스의 성향을 다분히 살린 포르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엽기적인 성적 묘사가 적나라하게 나오고, 고어 비달의 작가적 경향이 녹아든 정치적 비판 또한 무겁게 깔려 있다.

그 바람에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나름 볼 만 하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유명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처럼 "전혀 쓸모없고 부끄럽기 짝이 없으며 구역질이 나는 쓰레기"라고 혹평하며 영화를 보다가 나가버린 경우도 있다.

볼 만 하다는 것은 적나라한 성기 노출과 성행위가 나오는 포르노 같은 영상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살로 소돔의 120일'처럼 작품성이 있거나 정치적 메시지가 강한 숨은 걸작은 아니다.

** 치열한 싸움과 복잡한 판본 **

오히려 영화의 허명을 높인 것은 제작진들간에 물고 뜯는 싸움과 복잡한 판본이다.
펜트하우스는 1976년 149분짜리 오리지널판본의 내부 시사회를 거치고 나서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틴토 브라스 감독이 관객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찍은 원로원 의원과 괴물같은 여자의 정사 장면은 제작진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래서 영화 제작을 맡은 펜트하우스 창간자 밥 구치오네를 비롯한 펜트하우스측은 틴토 브라스를 배제하고 영화를 따로 편집했다.

틴토 브라스 감독이 찍은 일부 장면들을 잘라내고 여성들의 레즈비언 성애 장면을 비롯해 하드코어적인 정사 장면을 새로 찍어 추가했다.
그 바람에 영화 제목이 '고어 비달의 칼리귤라'로 바뀌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틴토 브라스 감독은 제작진을 상대로 이탈리아에서 소송을 벌였다.
틴토 브라스 감독은 소송에서 이겼으나 영화를 다시 바꾸지는 못했다.

그렇게 만든 영화는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100분 안팎의 분량으로 축소돼 혹독한 비판 속에 사라졌다.
이후 작가인 고어 비달도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틴토 브라스와 제작진 모두 잇따른 소송에 지쳐 결국 합의했다.
그 바람에 타이틀 크레딧에 "주요 장면은 틴토 브라스가 만들었다"는 문구가 들어갔고, 틴토 브라스 영상과 밥 구치오네가 새로 찍은 영상을 섞어서 156분의 언컷 버전을 만들어 1984년 이탈리아에서 상영했다.

영화 제목도 고어 비달을 뺀 '칼리귤라'로 다시 바뀌었다.
한때 4시간 가까운 210분짜리 영상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1979년 칸영화제 필름마켓에서 156분짜리 언컷 버전과 50여분 분량의 메이킹을 함께 공개했는데 이 둘을 합쳐서 210분짜리 판본이 있는 것처럼 와전됐다.
어쨌든 이 영화의 공식 언컷 버전은 블루레이에 수록된 156분 버전이 맞다.

이 작품은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며 극장 흥행에서는 실패했으나 펜트하우스 작품 가운데 비디오 판매순위 1위를 기록하며 많은 돈을 벌었고, 틴토 브라스의 이름값 또한 올려 놓았다.

** 국내에 정식 공개되지 않은 무삭제 버전 **

국내에는 미국에서 R등급으로 편집한 105분짜리 버전이 상영됐다.
국내에 정식 출시된 DVD도 이 판본을 담았으며, 블루레이는 출시되지 않았다.

156분짜리 언컷 버전은 미국에서 출시된 '임페리얼 에디션' 블루레이로 볼 수 있다.
국내 개봉작인 미국 R등급 버전은 50분 넘게 잘라내는 바람에 더 할 수 없이 밋밋한 영화가 돼버렸는데, 언컷 버전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강렬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작품성보다는 충격적 영상으로 승부하는 비주얼 쇼크 무비인 셈이다.
미국판 언컷 블루레이는 영화 본편을 담은 1장의 블루레이 디스크와 부록만 담은 1장의 DVD 디스크 등 2장으로 구성됐으며, 한글은 물론이고 영문 자막조차 없다.

1080p 풀HD의 2.00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지 않다.
무엇보다 창고에서 뒤늦게 찾아낸 필름 등 여러 판본을 뒤섞다 보니 장면에 따라 화질이 들쑥날쑥이다.

대체로 윤곽선이 두텁고 미세하게 떨리며 디테일이 떨어진다.
음향은 DTS-HD 5.0을 지원하는데 적당한 서라운드를 들려준다.

부록은 출연배우 및 감독 인터뷰, 제작과정, 비하인드씬 등 풍성한 부록이 들어 있다.
부록 디스크 역시 틴토 브라스 감독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떠한 자막도 들어있지 않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칼리귤라 역의 말콤 맥도웰과 선대 황제 티베리우스 역의 피터 오툴. 피터 오툴은 고어 비달과 오래 알고지내 출연했다. 그와 존 길구드는 사전에 하드코어 정사 장면을 알지 못하고 출연했다가 나중에 항의했다고 한다. 피터 오툴은 한 달 전인 2013년 12월15일 세상을 떠났다.

블루레이에는 156분짜리 무삭제판과 3분이 짧은 얼티네이트판 등 두 가지 판본이 들어 있다. 주제가 'We Are One' 등 아름다운 음악은 폴 클레멘티가 담당. 고어 비달은 작은 공간을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으나 미술 담당 다닐로 도나티가 무려 1에이커에 이르는 세트를 만들었다. 틴토 브라스 감독은 빈 공간을 엑스트라로 채우면서 배경이 누드와 난교로 가득 차게 됐다.

비달과 친분이 있어서 출연한 존 길구드는 피터 오툴이 연기한 티베리우스 황제 역을 제의받았으나 작은 역만 맡겠다고 거절하고 자살하는 원로원 의원인 티르바를 연기했다.

틴토 브라스 감독은 칼리귤라의 여동생 드루실라 역을 찾기 위해 파리에서 이 역할에 관심 있었던 마리아 슈나이더와 이자벨 아자니를 만난 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본 마리아 슈나이더를 캐스팅했다. 그러나 마리아 슈나이더는 티베리우스 장례식 촬영 중 노출이 심한 의상과 근친상간 장면을 놓고 감독과 심하게 싸운 뒤 떠나버렸다.

마리아 슈나이더의 중도 하차 뒤 말콤 맥도웰이 캐서린 로스를 드루실라 역으로 추천했으나 무산되고, 틴토 브라스가 자신의 전작 '살롱 키티'에 나온 테레사 앤 사보이를 섭외했다. 고어 비달은 대본을 쓸 때 드루실라 역으로 친구인 클레어 블룸을 고려했다.

철저하게 이용당한 뒤 죽음을 맞는 근위대장 마크로 역은 귀도 만나리가 연기. 그는 1988년 44세 나이로 사망했다. 칼리귤라의 원래 이름은 가이우스다. 작은 군화라는 뜻의 '칼리귤라'는 그의 아버지가 지휘한 게르마니아 군단 병사들이 지어준 애칭이다.

땅에 사람을 묻고 지나가면서 머리를 자르는 처형 기계는 고대 로마제국의 학자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가 쓴 로마 황제들의 전기인 '황제전'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 이 세트는 길이가 약 46미터에 이르렀다.

음탕한 황후 캐소니아는 헬렌 미렌이 연기. 틴토 브라스는 당시 헬렌 미렌이 유명하지 않아 캐스팅을 반대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신작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광기에 찬 주인공 역할을 '칼리귤라'를 참조해 연기했다.

말콤 맥도웰은 결혼식장에서 칼리귤라가 신부를 강제로 범한 뒤 신랑인 프로큘러스마저 강제로 항문 성교를 하는 장면을 거절했다. 그래서 틴토 브라스는 프로큘러스 부분만 항문에 주먹을 넣는 것으로 바꿨다.

칼리귤라는 말년에 공포 정치를 펴던 티베리우스를 죽이고 황제가 된 뒤 7개월 만에 고열로 쓰러져 심하게 앓고 나서 이상 행동을 보였다. 그러나 틴토 브라스 감독은 "칼리귤라는 미친게 아니라 단지 미성숙한 어린애였다"고 주장했다.

칼리귤라가 데리고 잔 말 인시타투스는 유고슬라비아의 다비데 라고 부른 종마를 캐스팅해 촬영. 틴토 브라스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를 보고 주연을 한 맥도웰을 원했다.

황후의 출산광경을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구경시키는 장면은 실제 임산부 3명이 출산하는 장면을 찍은 뒤 섞어서 사용했다.

칼리귤라가 귀족의 부인들을 배에 모아 놓고 매춘을 시키는 장면은 120개의 노를 갖춘 실제 53미터 길이의 배를 만들어 촬영.

밥 구치오네는 존 휴스턴과 라이너 베르트뮬러에게 감독을 맡기려고 협상하다가 무산됐다. 그는 잭 니콜슨을 주인공으로 원했다. 피터 퍼스도 주연 물망에 올랐다.

여동생과 근친상간을 하고 엽기적 행동을 일삼던 칼리귤라는 재위 3년 만에 근위대장 카시우스 카이레아의 손에 부인, 딸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