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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쉬 (블루레이, 감독판)

울프팩 2014. 7. 12. 22:50

공포물이 주는 두려움은 미지의 존재, 즉 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다.

나와 다른 형태, 움직임, 소리 등이 어떤 영향을 미칠 지 몰라서 방어기제처럼 공포가 작동해 경보를 울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종 차별도 공포물이나 다름없다.

모르는 것을 무서워하는 공포물처럼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이 배어 있다.

 

폴 히기스 감독의 '크래쉬'(Crash, 2004년)는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인종 차별 문제를 공포영화처럼 섬뜩하게 다뤘다.

서로에 대한 오해에서 빚어진 사건들이 결국은 미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연결고리를 느슨하게 만들고, 이를 깨뜨릴 수 있다는 점을 여러 인물들의 에피소드로 보여준다.

 

제작 및 연출, 원안에 공동 각본까지 쓴 폴 히기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미국 사회가 오랜 세월 인종 차별의 장벽을 걷어내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뿌리 깊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히려 대도시로 상징되는 고도의 산업화를 거치며 벌어진 빈부격차는 인종 차별의 벽을 더 높게 만들었다.

 

오늘날 미국 사회에 남아 있는 인종 차별은 피부색보다 돈의 색, 즉 크나 큰 빈부 격차의 골이 본질 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백인들의 자동차를 빼앗는 흑인들이나, 멕시칸 열쇠수리공과 가정부를 못미더워하는 백인 여성도 그들의 인종 차별 성향이 결국은 경제적 부의 차이에서 기인함을 보여준다.

 

결국 이 영화는 백인 흑인 동양인 아랍인 등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서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오늘날 미국의 초상을 제대로 보여준 영화다.

미국인들이 인종 차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다인종 다민족 사회가 안고 있는 연합체의 한계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미국은 민낯을 가리는 두터운 화장처럼 유독 인종 문제를 다룬 영화에 약한데, 제 78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이 작품에 작품상, 각본상, 편집상 등 3개의 상을 선사했다.

그러나 미국에 살면서 인종 차별 문제를 체감했다면 여러모로 공감할 작품이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네 입장에서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080p 풀HD의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극장판보다 일부 내용이 추가된 감독판이다.

필름 입자감이 느껴지는 화질은 무난한 편이다.

 

DTS-HD 6.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후방 스피커를 적절히 활용해 서라운드 효과가 괜찮다.

부록으로 감독과 배우, 제작자의 음성해설, 삭제장면, 뮤직비디오, 제작과정, 감독 인터뷰, LA 도시에 대한 고찰 등 풍성한 내용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폴 해기스 감독은 1991년 '양들의 침묵' 시사회를 보고 집에 가다가 두 흑인 남성에게 자동차를 빼앗겼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브렌든 프레이저의 에피소드는 그때 기억을 살려 썼다. 

해기스 감독은 차를 빼앗긴 사건을 TV 시리즈로 써서 HBO의 시드니 폴락에게 보여줬다. 그러나, HBO에서 논쟁의 여지가 너무 많다며 거절했다. 이후 CBS에 대본을 가져갔으나 마찬가지로 거절 당한 뒤 주변 권유로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 

감독이 처음 배역을 제안한 배우는 돈 치들이었다. 대본을 읽고 너무 마음에 든 치들은 가장 먼저 배역을 수락한 뒤 브렌든 프레이저, 산드라 블록 등 여러 배우에게 전화를 걸어 대본을 읽어보라고 권유했고, 제작비 마련에도 앞장 서 적극 도왔다. 

밴트루 블루버드에서 촬영한 장면. 이 영화는 인종 차별에 대한 미국인들의 컴플렉스와 자격지심 덕을 보기도 했다. 감독은 LA 시민들의 실제 생활을 바탕으로 인종 문제와 관련된 상황을 만들었다. 

해기스 감독은 "미국인들은 무조건 흑백논리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서 상대가 어떤 인물인 지 성급하게 결정하는 바람에 편견을 갖게 된다"고 주장했다. 

마치 사람들의 내면을 꿰뚫어 보듯 맷 딜런이 극 중 내뱉는 "넌 네가 엄청 착한 놈 같지. 착각하지 마라"라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해기스 감독은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면 두려워하면서 관용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촬영은 총 36일 소요. 

미국 사회학자들은 1965년 발생한 LA 폭동과 1992년 4월30일 로드니 킹 사건이 촉매가 돼서 터져 나온 LA 흑인 폭동은 이면에 기본적인 사회 경제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발생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루다크리스는 이 작품으로 영화에 처음 출연했으나 방황하는 흑인 청년 역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원래 카메론 역은 포레스트 휘트테이커에게 먼저 제안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테렌스 하워드에게 넘어갔다. 카봇 검사 역도 존 쿠삭을 고려했으나, 브렌든 프레이저를 섭외했다. 

막판 내리는 눈은 희망을 상징한다. 1970년대에 실제로 LA에 눈이 내린 적이 있단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크래쉬 (2Disc) HD리마스터링
크래쉬 (일반판) :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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