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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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호

울프팩 2014. 7. 24. 00:01

한 켠에 쌓아 둔 DVD 타이틀 속에서 이광훈 감독의 '천년호'(2003년)를 발견했다.

아마 제작사에서 받아 놓고 미처 보지 못한 모양이다.

 

제목만 보면 신상옥 감독이 1969년에 만든 동명의 공포물이 생각 난다.

당시 신 감독의 '천년호'는 시체스 영화제에서 황금감독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고,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한 작품이다.

 

신라 진성여왕이 짝사랑한 장수를 차지하기 위해 그의 부인을 성 밖으로 내쫓아 호수에 빠져 죽게 만드는데, 여기에 천년 묵은 여우의 원혼이 씌워 복수하는 내용이다.

이 감독의 '천년호'는 바로 신 감독의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이 감독은 한국의 전통적인 귀신 이야기인 천년호를 고대 전설이 깃든 판타지물로 슬쩍 바꿨다.

우선 천년 묵은 여우를 뜻하는 원작의 제목을 천년 묵은 호수를 뜻하는 제목으로 바꿨고, 여우 이야기 대신 박혁거세에게 한을 품고 죽은 부족의 원혼이 서린 것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진성여왕과 짝사랑한 장군의 이야기, 아내를 지키기 위한 장군의 애통한 사연 등은 원작과 닮았다.

공포물의 판타지 성격을 가미해 새롭게 비튼 설정은 좋았으나 작품의 완성도는 원작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무엇보다 장군을 연기한 정준호가 원작에서 같은 배역을 맡은 신영균의 묵직한 카리스마에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 컴퓨터그래픽이 어설퍼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중국 저장성의 헝디엔촬영소까지 찾아가 올로케이션하며 색다른 볼거리를 시도했지만 정작 높은 성벽의 왕궁을 제외하고 나머지 호수 등은 그다지 중국 로케이션 분위기가 나지 않는 점도 패인이다.

굳이 중국 로케이션이 의미가 있나 싶을 만큼 풍광을 살리지 못했다.

 

한마디로 역사극에 판타지와 공포가 뒤섞이면서 만화같은 수준의 조잡한 역사판타지가 돼버렸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윤곽선이 두텁고 색감도 깨끗하지 못하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제작과정과 콘티보기, 갤러리, 예고편 등이 부록으로 들어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신상옥 감독 원작에 나오는 천년 묵은 여우의 원혼을 이 작품에선 박혁거세에게 몰살 당한 부족의 원혼으로 바꿔 놓았다. 차라리 원작처럼 천년 묵은 여우의 원혼을 살려 제대로 된 공포물로 갔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설프게 역사 판타지를 추구했으나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대규모 전투 장면도 그다지 박력이 넘치지 못한다. 대부분의 촬영은 중국 절강성 천목산에서 했다. 

신 감독 원작에서 신영균이 맡았던 신라의 명장 역할을 이 작품에선 정준호가 연기했다. 

높다란 성벽 등이 눈에 익은데, 바로 영화 '영웅'과 MBC 드라마 '기황후' 등을 찍은 중국 저장성 헝디엔 세트장이다. 

원작에선 진성여왕이 짝사랑하는 장군을 차지하기 위해 그의 부인을 성 밖으로 내쫓고, 부인은 산 속을 헤매다가 산적들에게 쫓기던 끝에 호수에 몸을 던지는 설정이다. 이를 이 작품에서는 장군을 시기하는 정적의 부하들이 장군의 부인을 겁탈하고 죽이기 위해 찾아오고, 이를 피해 달아나던 부인이 천년의 한이 서린 호수에 몸을 던지는 설정으로 바꿨다. 

해외 유명 패션학교인 에스모드의 박성민 교수가 고증을 거쳐 의상을 디자인했고, 중국 현지에서 수작업으로 1,200벌을 제작했다. 

원혼이 서린 부인을 연기한 김효진. 액션은 '더 원'의 무술감독이었던 홍콩의 위안더가 맡았다. 

촬영은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뤼에 감독과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흑수선' '선생 김봉두' 등을 찍은 김윤수 촬영감독이 함께 담당했다. 

전설의 보검은 '와호장룡'에서 소품을 담당했던 콩시엔파가 만들었다. 

순수 제작비는 60억원이 들었다. 

와이어 액션은 김효진이 직접 한 것도 있고, 위험한 연기는 중국 스턴트우먼이 대신했다. 

호수 속 수중 촬영은 광주 임주체육관 수영장에서 찍었다. 진성여왕은 김혜리가 연기. 이 작품을 연출한 이광훈 감독은 '닥터 봉' '자귀모' 등을 만들었다.

천년호
이광훈
신상옥 콜렉션 (로맨스 빠빠,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성춘향, 벙어리 삼룡이, 천년호/5디스크, 디지팩)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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