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담벼락에 붙은 극장 포스터만으로도 섬찟했던 기억이 있는 영화가 '써스페리아'와 '캐리'다.

그만큼 두 작품은 1970년대 국내에서 개봉한 공포물의 쌍벽을 이뤘던 작품이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대표작이면서 공포물의 걸작으로 꼽히는 '써스페리아'(Suspiria, 1977년)는 전형적인 지알로다.

이탈리아 말로 노란색이란 뜻의 지알로는 아르젠토, 루치오 풀치와 더불어 이탈리아 3대 공포영화의 거장인 마리오 바바가 꽃피운 장르로, 쉽게 말해 이탈리아 공포물을 뜻하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현란한 색상과 잔혹한 살해 장면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공포물을 의미한다.

1950년대 이후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범죄, 추리 등 통속소설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노란색 표지를 즐겨 사용하면서 지알로로 불렸다.

 

자극적인 내용과 영상으로 시선을 끄는 마리오 바바의 작품들도 이탈리아 통속소설처럼 지알로로 불리게 됐다.

특히 아르젠토 감독이 이 작품에서 보여준 색채와 미술 등 시각적인 임팩트는 단연 지알로 중 최고로 꼽힐 만 하다.

 

내용은 독일의 외딴 발레학교에서 괴사건이 벌어지면서 여기 얽힌 비밀이 드러나는 이야기다.

아르젠토가 공포를 느끼게 하는 방법은 독특하다.

 

무서운 괴물이나 사람을 난도질하는 슬래셔 무비와 달리 화려한 색채, 자극적인 음악 등 시각과 청각의 언밸런스한 조합으로 사람의 심리를 불안하게 만들면서 공포를 느끼게 한다.

영화 속 괴이한 발레학교의 붉은색과 황금색 벽지, 기하학적 무늬가 수놓인 천장 등은 역설적으로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여인의 얼굴 위로 번지는 피 조차도 미술작품처럼 표현했다.

특히 아르젠토는 이 작품에서 회화 작품처럼 정제되고 아름다운 영상을 보여줬다.

 

대칭을 이루는 붉은 색 복도, 아름다운 문양이 장식된 벽을 배경으로 양 끝 단에 배치된 인물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서양 유화처럼 와이드스크린의 묘미를 한껏 살렸다.

특히 공간을 둘러싸고 반원형으로 둘러싼 인물들의 모습과 필라멘트 너머로 잡은 영상 등은 참으로 독특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인상적인 장면들이다.

 

여기에 음산함과 신경을 자극하는 고블린의 음악은 공포심을 배가 시킨다.

1974년 결성된 이탈리아 아트록 밴드인 고블린은 아르젠토 감독의 '페노미나' '떼네브레' 등의 영화 음악도 맡아 아름다우면서도 기괴한 사운드를 들려줬다.

 

개인적으로는 신경을 자극하는 그들의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여러 장 음반을 갖고 있지만 자주 듣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내용이 크게 흥미롭지는 않지만, 영상과 소리의 조화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시청각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덕분에 이 작품이 보여준 양식미는 국내 영화감독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김지운 감독이 '장화 홍련'에서 보여준 벽지의 선택이나 자극적 소리 등은 다분히 아르젠토 감독의 영향으로 보인다.

 

1080i HD의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강렬한 색감이 잘 살아 무난한 화질이지만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다.

전체적으로 윤곽선이 두텁고 디테일이 부족하며 지글거림이 보인다.

 

돌비트루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리어를 적당하게 활용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고블린의 음악을 잘 살렸다.

부록은 전혀 없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제작은 감독의 아버지인 살바토레 아르젠토가 맡았다. 촬영은 4개월이 걸렸다. 

원래 아르젠토 감독의 아이디어는 12세 이하 어린 소녀들이 있는 발레학교였다. 그러나 제작자인 아버지가 이 아이디어를 반대했다. 

제작자 살바토레는 아이들을 겨냥한 폭력 장면을 촬영하면 상영이 금지될 것으로 보고 어린 소녀들의 출연을 반대했다. 

아르젠토 감독은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발레학교 학생들의 나이를 20세로 올렸지만 대본을 고쳐 쓰지는 않았다. 그래서 인물들의 대사가 다소 소녀 취향이다. 

감독은 원래 여자친구인 다리아 니콜로디를 주인공으로 대본을 썼다. 그런데 제작사에서 젊은 미국 여배우를 원해 주인공이 바뀌었다. 니콜로디는 여주인공이 공항에서 걸어 나올 때 잠깐 등장한다. 

현란한 색채와 기하학적 무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죽음들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많은 가구나 소품, 인물들이 없어도 공간이 가득차 보이는 것은 화려한 문양의 벽지 때문이다. 그 자체가 공간을 가득 메우는 소품 역할을 한다. 

감독은 애인인 다리아 니콜로디의 할머니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의 할머니는 독일 음악학교에서 비밀리에 마녀들의 비술을 행하는 것을 보고 달아 났다고 한다. 

반원형으로 벌려선 인물들의 구도가 회화적이다. 

이 작품은 '인페르노' '눈물의 마녀'와 함께 아르젠토 감독의 마녀 3부작으로 꼽힌다. 특히 이 작품은 3부작의 시초가 됐다. 

사운드트랙에 들어있는 속삭이는 소리는 밴드 고블린의 멤버 클라우디오 시모네티의 목소리다. 

티나 오몽도 주인공 제의를 받았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무산되면서 제시카 하퍼가 주연을 맡게 됐다. 마담 블랑크를 연기한 조안 베네트는 이 작품으 마지막 영화다. 아르젠토 감독은 프리츠 랑 감독을 존경해 그의 작품에 많이 나온 조안 베네트를 섭외했다. 

필라멘트 너머로 잡은 영상이 인상적이다. 

스테파냐 카시니는 철사 줄에 온 몸이 휘감기는 장면을 찍으면서 철사가 피부로 파고 들어 고생했단다. 

이 작품은 보통의 코닥 이스트만컬러 필름으로 촬영한 뒤 3색 분해 방식의 쓰리 스트립 테크니컬러 프로세스로 인화했다. 처음부터 쓰리 스트립 테크니컬러로 촬영한 것은 아니다. 

크레딧에는 없지만 고대 마녀로 잠깐 나오는 여인은 감독이 로마 거리에서 발견한 90대 노파로, 과거에 매춘부로 일했다고 한다. 마지막 장면은 감독의 애인인 다리아 니콜로디의 꿈에서 영감을 얻었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써스페리아 : 블루레이
써스페리아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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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울프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