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명량

울프팩 2014. 8. 15. 09:20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의 최대 난관은 바로 이순신을 그리는 것이다.

1970년대 국민학교 교과서에 무과 시험 중 낙마했으나 버들가지로 다리를 동여매고 시험을 치른 장군의 일화가 등장할 만큼 익숙한 존재인지라, 피상적으로라도 장군을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군에 얽힌 연대기적 이야기들은 동어반복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인간 이순신을 그려야 하는 것이 난제인데, '난중일기'를 제외하고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사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최단 기간 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김한민 감독의 '명량'(2014년)도 마찬가지 한계를 안고 있다.

1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해전 장면은 볼 만 하나 이순신의 모습이 피상적으로 그려졌다.

 

즉, 이순신의 고뇌와 속내가 기대만큼 깊게 묘사되지 못했다.

예들 들어, 이순신의 관점에서 쓴 김훈의 '칼의 노래' 를 보면 명량해전을 앞두고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이순신이 휘하 장수들과 첫 대면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자리에서 경상우수사 배설은 원균이 패한 칠천량 전투에서 도망친 이유에 대해 병력을 남기기 위해서라며 "칠천량에서 내가 빼돌린 전선과 수졸을 통제공께 다 드리리다. 통제공의 홍복이고 무운으로 아시오."라는 변명과 비아냥을 늘어 놓는다.

이때 이순신은 '징징 우는' 칼 소리를 들으며 "베어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하지만, 배설이 진도 어딘가에 숨겨 놓은 군선을 찾을 생각을 하며 "아직은 아니다"라는 결심을 한다.

비록 김훈의 상상력이 빚어낸 대목이지만 이순신이 갖고 있는 인간적 고뇌와 갈등이 잘 묘사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런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이순신은 바다를 버리자는 배설의 독설을 묵묵히 지켜만 볼 뿐이다.

 

이처럼 이순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데 한계가 있다보니 흥행 요소인 볼거리에 집착했다.

12척의 군선으로 300척의 왜선을 상대하는 해전 장면은 볼 만 하다.

 

특히 겁을 먹고 따라오지 않는 휘하 장수들의 군선을 뒤로한 채 이순신 혼자 왜적들을 상대하는 대목은 비장함과 함께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극이 그렇듯 주인공의 영웅적 모습을 부각하기 위한 사실 왜곡까지 일삼는 점이다.

 

왜장 구루지마의 군선을 친 것은 영화처럼 이순신이 아니라 녹도만호 송여종이었다.

구루지마는 송여종의 화살을 맞고 불귀의 객이 돼 물 위에 떠올랐다.

 

또 척후장이었던 임준영은 영화처럼 백성이 아니라 조선 수군의 군관이었다.

이 밖에 마을 어부들도 조선 수군 못지 않게 배를 몰고 나가 왜적들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이런 부분들이 영화에는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이순신의 영웅적 면모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친 영웅주의적 모습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군사 쿠데타 합리화의 일환으로 이순신을 무조건 초인적 영웅으로만 그린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충이란 백성을 향한 것"이란 영화 속 이순신의 대사처럼 그런 부분이 좀 더 부각되고, 자신을 버린 군주에 대한 원망, 죽음 앞에서 갈등하고 두려워한 이순신의 인간적 모습이 좀 더 부각됐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한계를 안고 있지만 치열한 해전을 비롯해 꽤 볼 만 한 작품이다.

*play 표시가 있는 사진은 PC에서 play 버튼을 누르면 관련 동영상이 나옵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찾아줘  (6) 2014.11.14
비긴 어게인  (4) 2014.10.04
군도  (3) 2014.07.27
겨울왕국  (0) 2014.02.22
용의자  (2) 2013.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