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버드맨

울프팩 2015. 3. 11. 23:51

올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본, 촬영상 등 4개 부문을 몰아서 받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Birdman, 2014년)은 보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만한 영화다.

주인공이 겪는 내적 갈등과 혼란을 쉽게 공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배우 리건은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처럼 원작 만화를 토대로 만든 블록버스터 '버드맨'으로 한때 잘나갔던 할리우드 배우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 더 이상 버드맨으로 설 수 없게 된 그는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에서 배우로서 제 2의 인생에 도전한다.

 

리건은 진정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고 싶어하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버드맨의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감독은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영상으로 주인공의 고뇌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문제는 그의 고뇌가 공감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 같은 고민을 해봤거나, 적어도 해보지는 않았지만 설명을 들으니 그럴 법 하다는 설득력이 있다면 공감할 수 있겠지만 배우로서 주인공의 삶과 고뇌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공감하기에 여러모로 버겁다.

 

그러니 그의 고뇌가 겉돌 수 밖에 없다.

잘 나갔던 과거와 그렇지 못한 현실이 교차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과연 주인공 같은 혼돈을 겪을 지는 의문이다.

 

다만 주연 배우인 마이클 키튼의 삶과도 닮은 극 중 주인공의 삶은 묘한 웃음을 자아낸다.

희극 배우였던 그는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 주인공을 맡았을 때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난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의외로 배트맨을 훌륭하게 소화하면서 시리즈를 이어 갔다.

더 이상 배트맨을 하지 않겠다며 가면을 벗었지만 그 이후 배트맨 만큼 성공작은 없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묘하게도 극 중 버드맨을 연기한 리건과 닮았다.

어찌보면 이 작품은 버드맨처럼 사라져간 숱한 히어로물 속 주연 배우들을 위한 송가일 수도 있다.

 

마이클 키튼은 자신과 닮은 캐릭터여서 그런지 날카로우면서도 불안한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했다.

더불어 엠마 스톤과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도 눈길을 끌었다.

 

이야기의 난맥상은 갈피를 못잡게 하지만, 독특한 카메라 움직임은 눈에 띈다.

등장인물의 시각에서 무대를 헤집고 뉴욕의 뒷골목을 훑는 핸드헬드 카메라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흔히 커다란 스크린에서 거침없이 흔들리는 카메라는 어지럽기 일수인데 이 작품에서는 어찌나 자연스러운 지 마치 스크린 속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다.

특히 거울을 바라보는 주인공을 기점으로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는 경이롭다.

 

거울 속 어느 곳에도 카메라가 걸리지 않으면서 디지털 효과의 느낌이 들지 않는 자연스런 움직임은 의식의 흐름 만큼이나 순조롭고 매끄럽다.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머리를 쪼갤 듯 중요한 순간에 울려 퍼지는 드럼 소리는 내심 주인공의 불안을 반영하는 심장의 고동 소리 같다.

때로는 베이스가 힘차게 쿵쾅거리며 때로는 스네어가 숨 넘어가듯 자지러진다.

 

역동적이면서 파괴적인 드럼소리는 스크린을 뚫고 나올 듯 요동치며 고스란히 불안과 위기감을 증폭시킨다.

어찌보면 가장 미국적이면서도 가장 이국적인 아이러니컬한 감정을 동시에 안고 있는 게 바로 이 영화의 드럼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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