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차이나타운

울프팩 2015. 5. 2. 11:29

한준희 감독의 데뷔작 '차이나타운'(2015년)은 아주 '쎈' 영화다.

사방팔방 피가 튀는 사채업자들의 장기매매를 다룬 잔인무도한 이야기는 이보다 더한 막장이 없다.

 

장기매매는 '아저씨'나 '공모자들' 등 익히 우리 영화에 흔하게 등장했던 소재이지만, 이 영화는 그 과정을 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섬뜩하게 그렸다.

특히 그 중심에 여자들이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범죄 영화에서 여자들은 주로 희생자 아니면 종범이었지만 이 영화에서 여성들은 마치 여왕벌처럼 악의 중심에 서 있다.

무엇보다 관록의 여왕벌과 떠오르는 여왕벌의 녹록찮은 대결을 그럴 듯 하게 묘사한 배우들의 힘이 컸다.

 

얼굴 가득 주근깨 분장을 하고 짧게 자른 머리를 희끗희끗하게 염색한 김혜수는 마치 '대부'의 말론 브란도처럼 이전 영화들과 또다른 위악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여기에 '은교'에서 여리기만 했던 소녀를 연기한 김고은의 변신도 볼거리다.

 

액션스타까지는 아니지만 범죄물이나 스릴러물에도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들 외에도 우곤을 연기한 엄태구나 탁이 역할에 조복래 등 역할과 딱 떨어지는 배우 섭외가 탁월했다.

 

이들의 뛰어난 연기가 훌륭한 재료였다면 이를 솜씨좋게 버무려 맛을 낸 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공이다.

한감독은 신인 답지 않게 시종일관 템포를 잃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하며 드세고 억센 이야기를 끌어 간다.

 

다소 늘어지는 구석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관객들이 뒷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그만큼 이야기 전개가 짜임새 있다.

 

더불어 전체적으로 암울한 톤을 유지하는 미술도 뛰어 나다.

다만 조직의 보스인 '엄마'(김혜수)가 그토록 일영에게 집착하며 헤어나지 못하는 부분과, 일영이 남자에게 흔들려 무너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다소 미흡하다.

 

이들을 비롯해, 계속 일영을 미워하는 치도(고경표)나 일영에게 묘한 감정을 갖고 있는 우곤(엄태구) 등 인물들의 관계 설정이 치밀하지 못하고 성긴 느낌이다.

결정적으로, 아슬 아슬한 순간에 시원하게 터지는 한 방이 없다는 점도 전체적으로 답답한 느낌을 준다.

 

'공모자들'이나 '아저씨들'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분출하는 액션이 카타르시스를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못하다 보니 묵직한 체증같은 답답함이 가슴을 누른다.

여성판 '아저씨'를 기대했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소재를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끌어간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는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정작 무서운 것은 피가 튀는 칼부림이 아니라,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였지만 남남인 이들이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지독한 외로움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덧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제목은 공간적 배경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차이나타운'(1974년, http://wolfpack.tistory.com/entry/차이나타운)처럼 온갖 인간 군상들의 은밀한 이야기를 품은 거대한 늪처럼 상징적인 곳이다.

*play 표시가 있는 사진은 PC에서 play 버튼을 누르면 관련 동영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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