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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빅 쇼트

울프팩 2016. 2. 9. 11:10

아담 맥케이 감독의 '빅 쇼트'(The Big Short, 2015년)는 독특한 영화다.

금융시스템의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드라마다.

 

'4명의 괴짜 천재들이 월가를 물먹였다'는 식의 홍보문구를 보면 '스팅'이나 '이탈리안잡' '오션스 일레븐' 식의 머리좋은 사기꾼들 얘기를 떠올릴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영화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전세계적 경제위기의 원인을 다루고 있다.

 

2008년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4위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발생했는데 리먼 사태의 원인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을 주로 다룬 뉴센트리파이낸셜의 파산이었다.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은 3가지가 있는데 신용이 좋은 사람들을 상대로 한 프라임, 중간단계인 알트-A, 그리고 신용이 나쁜 저소득층을 상대로 한 서브프라임이 있다.

 

미국 은행들은 경기가 좋던 2003~2005년 신용도를 가리지 않고 서브프라임을 남발했는데, 돈 떼일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서브프라임 대출채권을 증권사나 투신사 같은 투자사들에게 담보로 제공하고 돈을 받아 대출 및 투자를 했다.

투신사들은 이 같은 부실 위험도가 높은 채권들을 묶어서 부채담보부증권(CDO)이라는 투자상품, 즉 파생상품을 만들었다.

 

CDO에는 단순히 서브프라임 대출채권만 들어간 것이 아니라 신용도가 좋은 상품을 섞어서 부실 위험도를 줄였다.

이후 투신사들은 CDO를 다시 신용디폴트스와프(CDS) 같은 보험상품에 가입해 신용등급을 올려 기업, 개인들에게 팔아 먹었다.

 

한마디로 시한폭탄을 계란 바구니에 섞어서 계란처럼 보이게 만들어 팔아 먹은 셈이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시중에 돈이 너무 풀려서 여러가지 부작용이 예상되자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금기야 2004년에서 2008년 사이 미국 금리는 4% 급등했고 그 바람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을 받은 저소득층의 경우 이자는 고사하고 원급도 못갚을 지경이 돼 앞다퉈 싼 값에 집을 내놓았다.

그 바람에 신용도가 괜찮던 사람들도 집값이 떨어지자 덩달아 집을 내놓으면서 집값이 폭락했고, 심한 경우 마을 전체가 집을 버리고 떠나 유령마을처럼 된 경우도 있다.

 

이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고 대출 채권을 회수하지 못한 뉴센트리파이낸셜이 파산하면서 CDO를 대량 보유했던 리먼브라더스가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파산 당시 리먼의 부채는 터키의 연간 국내 총생산(GDP)과 비슷한 규모의 6,130억달러였다.

 

리먼 사태는 미국의 일로만 끝나지 않았다.

돈 줄이 마른 투자은행들이 앞다퉈 해외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면서 전세계 금융계가 휘청였고 기업들도 주식폭락과 자금난에 처하며 어려움을 겪어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한마디로 미국 금융계의 탐욕이 전세계 수 많은 사람들을 생계 위협에 빠뜨린 것이다.

영화는 이 과정을 세상과 거꾸로 움직인 4명의 투자자들을 통해 낱낱이 파헤쳤다.

 

미국의 금융계는 너도나도 앞다퉈 CDO에 투자하며 수익 올리기에 급급했는데 영화 속 주인공들은 반대로 모기지 대출이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이를 겨냥한 대규모 공매도, 즉 쇼트 포지션에 나섰다.

선물, 옵션 용어인 숏은 미래 일정 시점에 가격이 떨어질 것을 예상해 현재 가격으로 매도 주문을 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미래 특정 시점에 떨어질 가격으로 상품을 사서 떨어지기 전 가격에 팔아 차익을 챙길 수 있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금융 용어인 '빅 쇼트'인 것이다.

 

미국 금융사들은 다들 CDO 가치 하락을 예상한 주인공들을 비웃으며 쉽게 공매도에 응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세상은 미국 금융사들의 예상과 반대로 돌아갔다.

 

이 과정을 주의깊게 보면 상당히 흥미진진한 영화다.

마치 '그것이 알고싶다'나 '추적60분'처럼 세계 경제위기의 원인을 파헤치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같다.

 

특히 이 과정을 적절한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무엇보다 혼합 CDO를 라스베이거스 도박장 풍경을 빌려 설명한 대목이 뛰어나다.

 

다만 맹점은 쉽게 설명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금융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 지식이 있어야 이해 할 수 있다.

일단 제목부터 선물옵션용어라는 점을 알고 봐야 할 만큼 영화가 전문적이다.

 

그래서 흥미롭지만 어려운 영화가 돼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이후 아직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계 경제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원작은 '머니볼' 등의 작품을 써서 유명한 마이클 루이스의 논픽션 '빅숏'이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으니 관심있으면 읽어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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