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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천 DVD / 블루레이

긴급명령 (4K 블루레이)

울프팩 2018. 9. 9. 16:37

필립 노이스 감독의 영화 '긴급명령'(Clear And Present Danger, 1994년)은 제목만 보면 무슨 내용인 지 가늠하기 힘들다.

'명백하게 현존하는 위협'이라는 뜻의 원제도 마찬가지.

 

오히려 톰 클랜시의 원작 소설을 번역 출간할 때 붙인 국내 책 제목 '마약 전쟁'이 확실하게 와닿는다.

영화 제목이 말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서라도 우선 제거해야 할 위험이다.

 

이를 미국 정부는 마약으로 봤다.

하지만 톰 클랜시의 원작 소설이 그리는 것은 단순히 마약에 국한하지 않는다.

 

마약을 빌미로 미국 대통령의 묵인 아래 다른 나라에 군대를 파견해 문제를 일으키고, 정작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무소불위의 위험천만한 제국주의적 사고 방식을 가진 권력을 더 문제로 삼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마약 단속을 빌미로 중남미 국가들의 권력과 결탁하거나 내정에 간섭해 이를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는 수단으로 삼아 왔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올리버 노스 중령이 관여한 이란 콘트라 스캔들이다.

미국은 당시 적대국인 이란에 무기를 판 돈으로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는데 이 돈의 일부가 미국으로 흘러드는 마약 밀매에 쓰였다.

 

여기에 톰 클랜시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얹었다.

1980, 90년대 중남미 최대 마약 밀매 조직이었던 콜롬비아의 메데인 카르텔을 이끌던 두목 파블로 에스코바르 가비리아의 이야기다.

 

가난한 막노동꾼의 아들이었던 에스코바르는 마약 밀메에 손을 대 엄청난 돈을 벌었고, 이 돈으로 정치권과 관료들을 두루 매수해 막대한 권력을 유지하며 납치 고문 강간 살인 등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에스코바르는 그렇게 번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 1,000여명에게 공짜로 집을 지어주고 신문사에 자금을 지원해 이미지를 빈자들의 영웅처럼 세탁한 뒤 국회의원에도 출마해 당선됐다.

 

그러나 법무장관이 마약자금을 이용한 부정선거로 당선됐다고 고발해 의원직을 상실하자 장관과 신문사 편집국장을 암살하고 폭탄 테러를 벌이기도 했다.

나중에는 증거 인멸을 위해 법무부에 난입해 판사들을 포함해 95명의 인질을 잡고 총격전을 벌이다가 인질들을 모두 죽이고 증거를 파기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대통령 후보들까지 암살하는데, 결국 1980년 새 대통령으로 취임한 세자르 대통령이 견디다 못해 에스코바르와 신변 보장을 조건으로 위장 자수 협상을 벌였다.

미국에 신병을 넘기지 않는 조건으로 자수한 에스코바르는 정부의 비호 아래 수영장, 연회장 등이 딸린 호화 감옥을 지어 편안하게 생활했으나 여기서도 살인 고문 납치 등을 벌여 결국 탈옥해 도피생활을 했다.

 

그렇데 도망다니며 마약 제국을 유지한 에스코바르는 1993년 12월, 미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영화는 이런 역사적 사실에 잭 라이언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투입해 이야기를 끌어 간다.

 

하지만 영화는 소설과 실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흥미로운 줄거리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원작 소설의 이야기를 모두 담기에는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고, 액션에 초점을 맞춰 영화적 재미를 살리려다 보니 방향을 잃었다.

 

그렇다고 액션 연출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보고타 거리에서 벌어지는 시가전은 보는 이를 긴장하게 만들지만 나머지 특공대가 벌이는 전투가 그들이 쫓기는 장면은 기대만큼 볼거리가 많지 않다.

 

그 바람에 액션물을 기대한 팬들은 물론이고 원작 소설이 지닌 풍부한 테크노 정치 스릴러를 기대한 톰 클랜시 팬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비록 영화는 어중간하게 끝났지만 배경에 얽힌 이야기를 충분히 알고 싶다면 원작 소설을 읽어 보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4K 타이틀은 4K 디스크와 일반 블루레이 디스크 2장으로 구성돼 있다.

2160p U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다.

 

무엇보다 디테일이 잘 살아있다.

일반 블루레이 타이틀의 화질이 그저 그런 점을 감안하면 조금 나아진 편이다.

 

일반 블루레이 타이틀은 아무래도 영화 제작연도가 오래되다 보니 지글거림이 보이고 윤곽선도 두터워 예리한 맛이 떨어진다.

 

음향은 일반 블루레이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돌비트루HD 5.1 채널을 지원한다.

채널분리가 잘 돼 있어서 괜찮은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일반 블루레이 타이틀에 수록된 부록은 한글 자막이 포함된 배우와 감독인터뷰 등과 예고편이 들어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해리슨 포드는 전작 '패트리어트 게임'에 이어 두 번째로 잭 라이언을 연기했다. 이후 그는 더 이상 잭 라이언 역할을 하지 않았다. 
원작 소설은 잘못된 마약 전쟁을 누가 책임져야 할지 질문을 던졌다. 결국 전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모든 사건의 배후에 미국 대통령이라는 절대 권력자가 숨어 있다. 
톰 클랜시는 이란콘트라 스캔들에서 영감을 얻어 이 소설을 썼다. 극중 악역 어네스토 에스코베도는 메데인 카르텔을 이끌던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모델이다. 
원작 소설을 쓴 톰 클랜시는 ROTC를 지원했으나 근시 때문에 떨어졌다. 워낙 밀리터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보험회사에 다니며 틈틈히 쓴 '붉은 10월'을 1984년 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보고타 거리에서 미 장관 일행이 마약밀매 조직에게 공격 당하는 장면은 멕시코시티 외곽 축구장에 100m 길이의 보고타 거리 세트를 만들어 촬영. 보고타 시에서 차량 폭파 장면을 허가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말 코카인 밀매로 돈을 번 에스코바르는 고향인 메데인에서 밀매 조직 연합인 카르텔을 결성해 정부에 맞섰다. 콜럼비아 정부 인사 뿐 아니라 미 마약단속국(DEA) 요원들까지 납치해 살해했다.
톰 클랜시는 2013년 66세 나이로 세상을 떴다. 
미군이 폭파하는 마약밀매조직 두목들의 회합 장소인 저택은 감독이 멕시코의 할라파 근처를 여행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이혼녀 소유의 집이었는데 과거의 기억이 서린 이 집을 좋아하지 않아 실제로 폭파하도록 허가했다. 감독은 7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저택 폭파 장면을 찍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웃음이 나오지만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자랑하는 최첨단 하이테크 싸움이다. 도스 기반의 오래된 컴퓨터에서 랜을 통해 상대방 컴퓨터에 침입한 뒤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파일을 슬쩍 훔쳐보는 장면이다. 모니터는 컬러다. 
필립 노이스 감독은 이 영화의 전작인 '패트리어트 게임'을 비롯해 '솔트' '캐치 어 파이어' '세인트' 등의 액션물을 주로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