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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천사의 성, 로마의 산탄젤로

울프팩 2016. 9. 9. 08:12

로마는 성당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당이 아주 많다.

그 중에서 바티칸을 제외하고 특색있는 성당을 꼽으라면 몇 군데가 있는데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과 산탄젤로를 빼놓을 수 없다.

 

테르미니역에서 가까운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Santa Maria Maggiore)은 역대 교황들이 자주 찾은 곳이다.

2014년 8월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도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먼저 들렸다가 바티칸으로 향했다.

 

[예수의 성 유물이 보관된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정면.]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한때 이 성당은 교황의 임시관저였을 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352년 로마의 7개 언덕 중 하나인 에스퀼리노 언덕에 건립된 이 곳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산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과 더불어 로마의 4대 대주교좌로 꼽힌다.

이는 교황 다음으로 높은 총대주교가 머무는 곳이라는 뜻이다.

 

[십자가를 얹은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후면. 정면과 달리 한적하다.]

 

이 곳에서는 안티오크의 총대주교가 몇 세기 동안 머물렀다.

성당의 이름인 마조레(maggiore)는 위대하다, 중요하다는 의미와 함께 성모 마리아에게 바친 로마의 성당들 가운데 가장 거대한 곳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원래 이 성당의 이름은 눈의 성모 마리아였다.

아들을 간절히 원했던 로마의 귀족인 조반니 부부가 어느 여름날 꿈을 꿨는데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다음날 아침 눈 내리는 곳에 성당을 지으면 아들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시를 했다.

 

[천장에 장식된 화려한 금박의 격자무늬가 눈길을 끄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내부.]

 

일종의 태몽으로 생각되는 꿈을 꾼 부부는 당시 리베리우스 교황에게 찾아가 꿈 얘기를 하다가 교황도 공교롭게 같은 꿈을 꾼 것을 알았다.

이들은 8월인데도 불구하고 에스퀼리노 언덕에 하얗게 눈이 내린 것을 보고 여기에 성당을 지었다.

 

성당에서는 이 같은 일설을 기념해 매년 축일 미사마다 둥근 돔에서 흰 장미꽃잎을 뿌려 성모의 기적을 알리고 있다.

성당은 431년 교황 식스투스 3세가 에페소 공의회에서 동정녀 마리아를 예수의 어머니로 선포한 것을 기념해 개축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중앙 제단 아래 성 유물 보관실이 있다.]

 

1348년 대지진으로 손상을 입기는 했지만 이후 여러 번 추가 작업을 거치면서 외형을 키웠다.

그러면서도 로마 제국 시대의 원래 구조를 그대로 갖고 있는 로마의 유일한 성당이기도 하다.

 

성당 정면은 12세기에 건축됐으나 1743년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지시로 페르디난도 푸가가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만들었다.

성당 한 편에 높다랗게 솟은 75m 높이의 로마네스크 양식 종탑은 1377년에 건설된 것으로, 로마에서 가장 높은 종탑이다.

 

[중앙 제단 앞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성 유물 보관실이 나온다.]

 

성당 내부는 길이가 86m로 꽤 큰 편이며 1489년 줄리아노 다 상갈로가 만든 격자무늬 천장이 유명하다.

훗날 스페인의 페르디난드왕과 이사벨라 여왕은 스페인 출신 교황 알렉산드르 6세에게 헌정하기 위해 잉카에서 가져온 금을 녹혀 이 천장의 격자무늬에 금박을 입혔다.

 

천장과 더불어 이 성당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중앙 제단인데, 교황과 일부 성직자만 오를 수 있다.

제단 아래쪽에 예수가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날 때 누웠던 말 구유 조각이 일부 보존돼 있다.

 

[은으로 된 함 가운데 부분에 보이는 나무 조각이 바로 예수가 태어난 말 구유 조각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다.

지하 보존실은 교황 식스토 5세의 명을 받은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가 설계했다.

 

더불어 이 곳에는 로마를 대표하는 유명한 조각가이자 건축가 베르니니의 무덤도 있다.

명성에 비해 화려하거나 요란하게 장식하지 않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성당 바닥을 잘 보면 그의 무덤을 알리는 명판이 박혀 있다.

 

이 성당은 한 때 아비뇽 유수에서 돌아온 교황이 로마로 복귀하고 나서 임시 관저로 사용했다.

그래서 지금도 교황이 자주 들리고 있으며 성모 승천 대축일인 8월15일마다 직접 미사를 집전한다.

 

[옆에서 바라 본 산탄젤로. 꼭대기에 천사 미카엘의 청동상이 서 있다.]

 

로마 제국의 현명한 5명의 황제 중 하나로 꼽히는 하드리아누스는 뛰어난 무인이었고 훌륭한 통치자였다.

여기에 음악 미술 문학 건축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으며 여행을 즐겨서 21년의 통치기간 중 12년을 로마 제국 곳곳을 돌아보며 내정을 튼튼하게 다졌다.

 

그런데 말면에 성격이 변덕스럽고 잔혹하게 변해서 귀족들의 반발을 샀다.

원로원은 그가 죽은 뒤 모든 기록을 말살하는 가장 가혹한 형벌인 담나티오 메모리아이(damnatio memoriae)를 내렸다.

 

워낙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마 사람들에게 기록 말살은 최악의 형벌이었다.

그러나 후계자인 안토니누스 황제가 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면서 다행히 오명 대신 5현제로 남게 됐다.

 

하드리아누스는 생전에 황제들의 묘소인 아우구스투스 영묘에 더 이상 묻힐 자리가 없는 것을 보고 자신의 무덤 겸 후대 황제들이 묻힐 동그란 모양의 거대한 영묘를 구상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천사들의 성, 산탄젤로(Sant'Angelo)다.

 

[정면에서 바라본 산탄젤로와 산탄젤로 다리. 산탄젤로 국립 박물관이 함께 있다.]

 

원래 이름이 하드리아네움인 이 영묘는 하드리아누스가 죽고 나서 1년 뒤인 139년에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가 완성했다.

그러나 3세기 이후 부쩍 늘어난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로마 둘레에 20km 길이의 성벽을 쌓으면서 여기 일부로 편입됐다.

 

특히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270~275년 영묘 위에 방어용 성채를 쌓은 뒤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6세기 들어 영묘의 기능은 사라지고 교황의 성채로 바뀌게 된다.

 

이 곳이 산탄젤로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전설 때문이다.

7세기 흑사병이 만연했을 때 영모 위에 미카엘 천사가 나타나 흑사병이 물러갈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 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이 곳을 산탄젤로로 명명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로마와 영묘를 연결하기 위해 테베레 강 위에 건설한 산탄젤로 다리.]

 

영화 '천사와 악마'를 보면 바티칸에서 달아난 인물이 산탄젤로를 통해 도주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바티칸과 산탄젤로가 비밀통로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3세기에 교황 니콜라스 3세가 파세토 디 보르고라고 부르는 800m 길이의 비밀통로를 만들었고, 덕분에 여러 후대 교황들이 목숨을 건졌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1494년 프랑스의 샤를 8세가 로마를 침공했을 때 이 통로를 이용해 달아났고, 교황 클레멘스 7세 역시 1527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침입하자 이 통로를 통해 교황청 비밀금고를 가지고 산탄젤로로 피신했다.

꼭대기에 서 있는 미카엘 천사상은 1536년 라파엘로 다 몬텔루포가 대리석으로 만들어 세웠는데, 1753년 플랑드르의 조각가 페테르 안톤 폰 베르샤펠트가 만든 청동조각상으로 바뀌었다.

 

몬텔루포가 만든 대리석 조각상은 성 안쪽 뜰에 서 있다.

천사가 칼을 칼집에 꽂는 모습은 신의 은총이 내렸다는 뜻이다.

 

[산탄젤로 다리 위에서 공연하는 거리 밴드. 퀸과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들을 잇따라 불렀는데 꽤 잘했다.]

 

산탄젤로가 유명해진 것은 중세 시대 악명높은 정치범 수용소로 쓰이면서였다.

16세기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 18세기 신비주의자 알렉산드로 디 칼리오스트로 백작 등이 이 곳에 갇혔다.

 

특히 이렇게 갇혔던 죄수들을 이 곳에서 처형해 산탄젤로 다리에 놓아두기도 했다.

작곡가 푸치니는 이런 사연들을 오페라 '토스카'의 제 3막에서 이 곳을 배경으로 사용해 표현했다.

 

토스카의 나오는 카라바도시가 산탄젤로 감옥에 갇혀 있다가 나오면서 유명한 아리아 '별은 빛나건 만'을 부르게 된다.

산탄젤로 앞에는 로마 중심부로 곧장 이어지는 산탄젤로 다리가 있다.

 

[거리 밴드의 연주에 맞춰 산탄젤로 다리 위에서 춤을 추는 연인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건설해서 그의 다리라는 뜻으로 아일리우스 다리라고 불리던 곳인데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산탄젤로 다리로 다시 명명했다.

다리 양쪽에 보면 10개의 조각상들이 쭉 서 있는데 1535년 교황 클레멘스 7세 시절에 제작됐다.

 

처음에는 베드로, 바울,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이었는데 훗날 베드로와 바울을 제외하고 모두 천사들로 바뀌었다.

천사들은 예수가 고난을 겪을 때 함께 했던 물건인 가시간, 십자가, 채찍 등을 들고 있다.

 

[산탄젤로 다리 위에 늘어선 천사들 너머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노을이 번지고 있다.]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다리에 통행세를 부과했다.

지금은 사람들만 다닐 수 있다.

 

산탄젤로는 낮보다 해가 떨어지는 저녁이 아름답다.

불타는 듯한 노을이 성채를 배경으로 이글 이글 타오르면 그 자체가 한 폭의 풍경화다.

 

그래서 저녁이면 연인들이 다리에 데이트를 많이 나오고 길거리 밴드들이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산탄젤로 다리에서 내려다 본 테베레 강. 천천히 떠나는 카누가 여유로워 보인다.]

천사와 악마 - 확장판 (극장판,확장판 동시수록) :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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