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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블루레이)

울프팩 2021. 9. 13. 00:15

샤카 킹(Shaka King) 감독의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Judas and the Black Messiah, 2021년)는 1960년대 미국 사회의 이슈가 된 블랙 팬서당, 즉 흑표당 이야기를 다룬 실화다.

흑표당은 1965년 미국에서 결성된 급진적 흑인 인권운동 단체다.

 

검은 옷과 검은 베레모를 쓰고 다녀 흑표당이라고 불린 이들은 비폭력 노선을 견지한 마틴 루터 킹 목사나 강경 무장 투쟁을 강조한 말콤 엑스와 달리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을 받아들여 혁명을 주장했다.

그래서 FBI는 폭력적 성향이 강했던 말콤 엑스보다 오히려 흑표당을 더 위험하다고 봤다.

 

당시 FBI 수장이었던 에드거 후버는 흑표당이 체제 전복적이라고 보고 강력 대응을 지시했다.

그가 생각한 강력 대응은 완전 제거였다.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면 옥살이 후 또다시 활개치고 다닐 테니 그러지 못하게 하려면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FBI는 흑표당 뿐 아니라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제거 작전을 준비했다.

 

제거 대상 중 하나가 흑표당의 일리노이 지부장이었던 프레드릭 앨런 햄프턴이다.

햄프턴은 혁명을 위해 다른 흑인 갱 및 백인 이민자 단체 등과 손잡고 사회 변혁을 꾀했다.

 

특히 햄프턴은 가난한 흑인 아이들을 위한 무료 조식 배급 프로그램, 무료 의료 센터 등을 운영하고 사회적 취약계층인 흑인 노인들이 은행이나 공공 기관에 돈을 찾으러 갈 때 보호하는 프로그램 등을 마련해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1969년 12월 FBI의 공작으로 아파트에서 자다가 기습을 당해 총을 맞고 숨졌다.

 

그의 나이 불과 21세였다.

영화는 제목이 암시하듯 그의 몰락을 다뤘다.

 

최후의 만찬을 치른 후 유다의 배신으로 로마군에 체포된 예수 그리스도처럼 햄프턴(다니엘 칼루야 Daniel Kaluuya)은 FBI 수사망을 피해 도피하는 방안을 논의하던 날 밤 동료의 배신으로 최후를 맞았다.

그를 배신한 인물은 흑표당의 경비대장이었던 윌리엄 오닐(Keith Stanfield)이다.

 

FBI를 사칭해 자동차를 훔쳤던 오닐은 오랜 복역을 면해 주겠다는 FBI 공작에 넘어가 흑표당에 잠입했다.

마치 영화 '무간도'처럼 FBI 첩자가 된 오닐은 흑표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햄프턴의 신변 경호 등을 담당하는 경비대장이 됐다.

 

마지막 날, 오닐은 FBI가 건넨 수면제를 술에 타서 햄프턴에게 먹였다.

햄프턴은 FBI와 경찰이 아파트를 급습했을 때 깨어나지 못했고 결국 총에 맞아 숨졌다.

 

킹 감독은 그의 죽음을 예수의 순교에 빗대어 표현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비교가 타당한 지 의문이 남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햄프턴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설명이 부족하다.

햄프턴이 흑인들에게 공감을 얻고 지지를 얻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다루지 못하고 혁명을 부르짖는 그의 연설만 되풀이해서 강조해 오히려 과격하게만 보인다.

 

그렇다 보니 햄프턴의 죽음과 흑표당의 수난에 대해서도 감정 과잉으로만 치닫는다.

킹 감독을 비롯해 제작진이 모두 흑인이어서 그럴 수 있지만 객관적이고 차분한 이야기 전개가 아쉽다.

 

아울러 햄프턴 사후 흑표당의 전개와 오닐의 행보를 자막으로만 처리한 점도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흥미롭고 의미 있는 사건을 제작진들이 감정에 취해 대중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안타까운 작품이 돼버렸다.

 

흑표당은 이후 창당 멤버들의 몰락과 비도덕적 행보로 급속하게 무너졌다.

어찌 보면 대중과 유리된 과격한 선전 선동과 급진적 정치행보의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이런 모습들은 1980년대 학생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학생운동이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부분이 분명 있지만 이론 논쟁에 휩싸여 분열하면서 정치적 구심점을 형성하지 못한 점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공교롭게 햄프턴을 배반한 오닐의 모습에서 학생 운동 시절 여러 번 제기됐던 프락치 사건들이 떠오른다.

참고로 오닐은 사건 발생 후 21년이 지난 1990년 미국 공영방송(PBS)이 방영한 다큐멘터리 'Eyes on the Prize2'에 출연해 사건 전모를 털어놓은 뒤 방송 당일 자살했다.

 

1080p 풀 HD의 2.40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조명을 받은 흑인의 피부를 보면 자연스럽게 그러데이션 되는 색감이 잘 살아 있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도 서라운드 효과가 괜찮다.

각종 사운드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부록으로 햄프턴에 대한 소개, 제작 과정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부록들은 모두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1960년대 에드가 후버 FBI 국장은 내부 브리핑을 통해 프레드 햄프턴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강력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FBI에 프락치로 포섭된 윌리엄 오닐은 1970년대 초반까지 흑표당 당원으로 활동하며 정보를 제공한 댓가로 20만 달러를 받았다.
프레드 햄프턴은 16세때부터 흑표당원으로 활동했고 법대에 진학한 뒤 일리노이 지부장을 맡았다.
바비 실과 휴이 뉴튼이 경찰 폭력으로부터 흑인들을 지키기 위해 1965년 흑표당을 결성했다. 이후 말콤 엑스의 추종자 엘드리지 클리버가 1966년 당을 이끌면서 과격해졌다.
1960년대 흑인들에 대한 미국 경찰의 폭력은 도를 넘었다. 흑인들을 때리기 위해 경찰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권을 무시한 폭력이 난무했다.
프레드 햄프턴은 백인과 히스패닉 지역까지 찾아가 무지개 연합을 만들어 정치적 연대를 꾀했다.
주먹 쥔 손을 치켜들며 혁명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흑표당의 몸짓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때 시상대에 선 육상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칼로스 때문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당시 두 선수는 시상대에서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들어올린 흑표당의 정치적 행동으로 메달을 박탈당했다.
햄프턴의 아파트를 급습한 경찰은 99발의 총탄을 퍼부었다. 반면 흑표당원은 1발을 응사했다.
영화 말미에 실제 윌리엄 오닐이 영상이 나온다. PBS에서 1990년 1월15일 방영한 다큐 영상이다.
실제 햄프턴의 아내 데보라 존슨과 아들 프레드 햄프턴 주니어. 데보라는 남편이 총맞아 죽고 나서 25일 뒤 아들을 출산했다.
영화 말미에 나오는 실제 프레드 햄프턴의 모습. 그의 죽음은 1970년 열린 재판에서 경찰의 과잉 대응에 의한 살인으로 인정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