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2015/02 8

리플레이스먼트 (블루레이)

미식축구만큼 미국이라는 나라를 상징하는 스포츠는 없다. 미식축구 규칙을 보면 미국의 역사와 미국인의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4회의 공격 기회 동안 총 10야드를 전진하지 못하면 공격권이 넘어가고, 상대 엔드존까지 밀고 들어가야 득점이 인정된다. 이 같은 땅따먹기 룰은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했던 미국의 어두운 과거를 연상케 한다. 여기에 수비와 공격, 심지어 스페셜팀까지 철저하게 나눠져 있는 분업 구조는 전형적인 미국식 산업자본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결정적인 것은 득점을 위해 전진하거나 상대팀의 전진을 막으려면 철저하게 온 몸으로 부딪치는 육박전이 필수라는 점이다. 그만큼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미식축구의 정신은 세계 패권국의 구성원을 자임하는 미국인들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하워드 더..

무숙자2 (블루레이)

다미나오 다미아니 감독의 '무숙자2'(A Genius, Two Friends, and an Idiot, 1975년)는 기존 '무숙자'와 테렌스 힐의 인기에 편승한 작품이다. 전편과 연결지을 만한 고리는 테렌스 힐이 떠돌이 역할의 주인공을 맡았다는 점과 엔니오 모리코네의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흐른다는 점 뿐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3국이 합작해 만든 이 작품은 애석하게도 내용이나 배우들의 인지도 등이 전편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미 군대를 속여 빼돌린 돈을 인디언 보호를 위해 사용하려는 서부의 사기꾼들 이야기이다. 그러나 내용이 산만하고 황당하며 억지 웃음으로 일관해 몰입도를 떨어 뜨린다. 앉았다 일어났더니 의자에 금가루가 잔뜩 묻어 있는 것을 보고 황금에 눈이 먼 지휘관이 군대를 총출동시키는 설..

그을린 사랑(블루레이)

때로는 묻어 뒀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을 때, 진실의 무게는 더 없이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Incendies, 2010년)은 그런 영화다. 와이디 무아와드의 희곡을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가상의 중동 국가에서 일어난 일을 다뤘다. 어느날 느닷없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유언장을 집행하는 쌍둥이 남매가 그동안 몰랐던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겪게되는 이야기다. 그 과정은 참으로 무서우면서도 끔찍하고 가슴 아프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자란 아이들의 삶은 행복할까, 과연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의 남은 생은 평온할까 하는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더불어 어머니는 왜 이토록 비극적이고 끔찍한 과거를 굳이 자식들에게 알리려..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마크 밀러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Kingsman: The Secret Service, 2015년)는 참으로 유쾌한 영화다. 고전적인 스파이 영화의 서사 구조에 현대적 액션을 가미했다. 그만큼 첩보물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본' 시리즈나 '킬 빌' 같은 스타일리시한 액션이 통쾌함을 선사한다. 이 영화의 묘미는 신화와 고전 영화들의 결합이다. 영국인들에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전설인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를 차용한 킹스맨 집단이 펼치는 모험은 곳곳에 유명 영화들과 고전 영화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배치했다. 엄마가 화장실 문을 도끼로 때려부수는 장면은 스탠리 큐브릭의 유명한 영화 '샤이닝', 각국 정상들의 비상 회의 장면은 역시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악당의..

영화 2015.02.19

데어 윌 비 블러드(블루레이)

대학시절 읽었던 업톤 싱클레어의 소설 '정글'은 대단히 재미있으면서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1900년대 초반 미국 시카고의 가축 도축장 풍경을 마치 눈 앞에 펼쳐 놓는 듯 생생하게 묘사한 다큐멘터리 같은 소설이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이, 열악하고 고된 작업 환경 속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고기 분쇄기에 떨어져 소시지가 되는 장면이었다. 항상 사회고발적인 작품을 썼던 싱클레어는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글의 힘을 믿었다. 실제로 그가 쓴 '정글'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미국에서 식품의약품위생법 및 육류검역법을 만드는 단초가 됐다. 지금도 손꼽히는 명작인 이 소설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 2007년)는 바로 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