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2015/03 9

블루맨그룹-how to be a megastar live(블루레이)

머리에 온통 푸른 물감을 뒤집어 쓴 세 남자가 무대에 오른다. 이어서 커다란 흰 색 파이프를 들고 나와 두드리기 시작하자 훌륭한 음악이 연주된다. 신기하게도 굵기와 길이가 제각각인 파이프들은 어떻게 두드리냐에 따라 음계를 만들어 낸다. 블루맨 그룹, 세 명의 친구가 모여 만든 이들의 공연은 아주 독특하다. 다양한 음악에 맞춰 드럼과 파이프를 두드리고 허공에 긴 채찍을 휘두르기도 한다. 언뜻보면 난타같은 공연을 연상케 하지만 꼭 타악기 연주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허공에서 껌을 받아먹는 묘기를 부리기도 하고 백남준처럼 여러가지 비디오 아트를 동원해 이색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들의 공연은 무대 위 작은 서커스다. 블루맨 그룹이란 이름은 의상을 제외하고 밖으로 노출된 피부가 온통 파랗기 때문이..

스물

"누가 스무살이 좋을 때래?" 영화 속 동우(준호)가 내뱉는 대사가 이병헌 감독의 '스물'이 어떤 영화인 지 말해 준다. "그때가 좋은 때"라고 지나가듯 말하는 어른들의 얘기에 과연 그런지 반문하듯 전개되는 영화다. 그런데 그 내용이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배꼽빠지게 웃기고 재미있다. 고교 친구인 치호(김우빈), 경재(김하늘), 동우(준호) 세 친구가 맞는 스무살은 어른들이 생각하듯 마냥 푸르고 즐겁지 많은 않다. 연애는 뜻대로 되지 않고 꿈을 향한 길은 멀다. 그렇게 좌충우돌 깨지고 부딪치며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이 웃기면서도 안타깝다. 그럼에도 절대 심각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Y담을 섞어 자조하며 넘기는 것도 어찌보면 청춘이기에 가능하다. 버디 무비의 형식을 띠면서도 이들이 빚어내는 갖가지 에..

영화 2015.03.27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블루레이)

김석윤 감독의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년)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코믹 추리영화다. 왕의 밀명을 받고 사라진 열녀에 대한 조사를 맡은 탐정이 악당들과 대결을 벌이는 내용이다. 초반에 그럴듯한 자막을 끼워 넣어 마치 조선시대 탐정이 실존했던 것처럼 묘사하지만, 모두 허구다. 원작은 작가 김탁환의 역사 추리소설 '백탑파'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인 '열녀문의 비밀'이다. 하지만 원작에서 뼈대만 빌려 왔을 뿐 내용은 소설과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영화는 추리물을 표방하고 있지만,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유머가 가미된 액션활극에 가깝다. 문제는 유머코드가 그다지 웃기지 않다는 점이다. 등에 화살이 꽂힌 채 뛰는 장면이나 총 쏘는 시늉으로 개가 죽은 것처럼 꾸미는 장면 등 일부 코믹 장면은 억지에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블루레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년)는 독특한 영화다. 6년 동안 잘 키운 아이가 갑자기 내 자식이 아니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 부모가 겪는 이야기다. 갈등은 그 이후부터 시작된다. 병원의 잘못으로 아이가 바뀐 것을 알았지만 이제 와서 과연 친자식을 데려올 것인 지, 지금까지 잘 기른 아이와 남남처럼 냉정하게 헤어져야 하는 지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친자식을 모른 체 할 수도 없고, 낳은 정 못지 않게 기른 정도 크다는데 이를 떼는 것도 쉽지 않다. 감독은 부모가 겪는 갈등을 통해 여러가지를 묻는다. 우선 핏줄이 당긴다는 말이 무색하게 친자식인지 아닌 지도 모르고 6년을 보낸 부모를 통해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명제가 과연 맞는 말인 지 되묻고 있다. 아울러..

케빈에 대하여(블루레이)

린 램지 감독의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년)는 잔잔한 가족영화이면서 더 할 수 없이 무서운 공포물이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사이가 좋지 않은 아들과 어떻게든 관계를 개선해 보려는 엄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갈수록 두 사람의 관계가 꼬이면서 영화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치닫고, 급기야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반전으로 휘몰아 친다. 린 램지 감독은 이 과정을 시침 뚝떼고 냉정하게 묘사한다. 그렇기에 보는 사람은 그저 어느 가족의 평범한 드라마 같은 일상에 무심코 빠져들었다가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구분없이 플래시백을 마구 섞어 시간을 흩어 놓았다. 과거의 시간이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