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감독의 '한공주'(2013년)는 치유와 아픔의 영화다. 성폭행을 당한 여주인공이 이를 극복하고 다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렸다. 어찌보면 자극적인 소재일 수 있는데 원인이 된 사건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황이 워낙 끔찍하기에 드러내놓고 묘사하지 않아도 그 뒷부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서 보는 내내 참으로 고통스럽다. 내용을 보면 2004년 발생한 밀양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떠오른다. 감독은 직접적으로 해당 사건을 언급하지 않지만 가해학생들이 집단으로 장기간에 걸쳐 여학생 두 명을 번갈아 성폭행하고 사건이 드러난 뒤에 가해자들의 부모들이 피해학생을 핍박한 정황, 경찰에서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모멸감을 준 일 등이 영화 내용과 흡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