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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보수(블루레이)

울프팩 2018. 6. 18. 17:57

프랑스의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에게 세상은 정글처럼 보였나 보다.

그가 만든 걸작 '공포의 보수'(Le Salaire De La Peur, 1953년)는 살아남기 위해 물고 뜯고 목숨을 걸며 허망한 싸움을 벌여야 하는 인간 군상들을 다뤘다.

 

내용은 볼리비아의 작은 도시 라스 피에도라스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보기에도 황량하고 열악한 이 작은 마을에 더 이상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랑자부터 전직 갱단원까지 굴러 들어와 살기 위해 일자리를 찾는다.

워낙 헐벗고 못 사는 곳이어서 마땅한 일자리는 석유 채굴을 위해 들어온 미국 석유회사뿐이다.

 

마침 유전에 거대한 화재가 발생해 실업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석유회사에서는 불길이 거대하다 보니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끄기 힘들어 폭약을 터뜨려 유전을 덮으려 하는데, 이를 위해 폭약을 운반할 트럭 운전사를 모집한다.

 

언뜻 들으면 간단해 보이지만 조금만 흔들리거나 충격을 줘도 바로 폭발하는 니트로글리세린을 잔뜩 싣고 험한 산길을 달려가야 하는 위험한 일이다.

한마디로 목숨을 걸고 공포의 보수를 벌어야 한다.

 

여기 자원한 네 사람이 겪는 과정을 클루조 감독은 아슬아슬하게 묘사했다.

이 과정에서 일행은 서로 다투거나 의심하기도 하고 험한 난관 앞에서 살기 위해 달아나기도 한다.

 

극한 상황이 아니면 보여주기 힘든 삶의 밑천을 다 드러내는 것이다.

마치 위기 상황을 헤쳐나가는 게임 주인공들처럼 일행이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은 숨조차 크게 쉬기 힘든 긴장의 연속이다.

 

이를 위해 감독은 교차하는 다양한 이미지 컷과 클로즈업, 때로는 멀리서 잡은 원경으로 상황이 주는 긴박감을 중계방송처럼 전달한다.

더불어 돈을 차지하기 위해 아웅다웅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정글 속 야수들의 다툼이나 다름없다.

 

클루조 감독의 이런 시각에는 그의 험난했던 삶도 일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결핵에 걸려 죽을 뻔했고 폭압적인 나치 치하에서 암울했던 한때를 보내며 영화를 만들었으나 전후 부역자로 몰려 시체처럼 지내기도 했다.

 

그에게 세상은 고난의 연속이며 험난한 미로 같았을 수 있다.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힘든 환경과 투쟁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클루조 감독은 지독한 비관주의자였다.

순탄치 않았던 그의 삶이 남긴 흔적이다.

 

이 작품에도 그런 경향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힘든 사투를 거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선물은 마치 그런 삶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생에 대한 냉소와 허무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위대하다.

위기의 상황을 엮어서 더 할 수 없이 긴장감을 유발하는 뛰어난 스릴러이자 서스펜스물이다.

 

그 속에는 버디물의 흔적과 어드벤처,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들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다.

덕분에 알프레드 히치콕, 샘 페킨파, 윌리엄 프리드킨 등 다양한 감독들이 이 작품을 참조했다.

 

클루조라는 감독의 역량과 이 작품의 영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의 블루레이 타이틀은 국내에 출시되지 않았다.

 

미국 크라이테리온에서 내놓은 블루레이 타이틀은 한글 자막을 지원하지 않는다.

1080p 풀 HD의 1.33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의 화질은 괜찮다.

 

HD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친 흑백 영상은 필름 손상 흔적이나 잡티가 거의 없다.

물론 70년 전 영화인 만큼 간혹 필름의 때와 얼룩, 세로 줄무늬가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제작연도를 감안하면 상당히 훌륭한 화질이다.

음향은 비압축 방식의 모노를 지원한다.

 

부록으로 클루조 감독에 대한 다큐와 마이클 로마노프 인터뷰, 미국에 소개된 기사들, 마크 고든과 이브 몽땅의 인터뷰 등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초반 소년이 바퀴벌레를 묶어 괴롭히는 장면은 나중에 샘 페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의 벌레 장면에 영향을 미쳤다.

술집 여급으로 나온 베라 클루조는 감독의 아내다. 남자 주인공은 수동적 존재인 여급을 가학적으로 다루는데 이는 훗날 성애 영화 'O의 이야기'에도 영향을 끼쳤다.

전직 갱단원 조를 연기한 샤를 버넬. 원래 장 가방이 이 역할을 제의받았으나 팬들이 겁쟁이처럼 보이는 것을 용납하지 못할 것이라며 거절했다.

감독은 이국적인 스페인에서 영화를 찍고 싶었다. 그러나 주연 배우인 이브 몽땅과 아내 시몬 시뇨레가 독재자 프랑코가 통치하는 스페인에서 영화를 찍을 수 없다고 거부해 스페인 촬영이 무산됐다.

말이 필요 없는 프랑스의 국민배우 이브 몽땅이 주연을 맡았다. 원작은 조르주 아르노가 쓴 동명 소설.

감독은 남프랑스 생질의 한 마을을 남미처럼 꾸며 영화를 찍었다.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카메라가 쓰러지고 세트가 망가졌으며 감독은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감독의 아내 베라 클루조도 병에 걸렸다.

클루조 감독은 1907년 니오르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서점을 한 덕분에 어려서 1,000권이 넘는 책을 읽은 클루조는 그만큼 영화의 서사 구성이 탁월했다.

클루조는 1930년대 독일 영화제작자 아돌프 오소에게 발탁돼 독일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때 빛과 그림자를 강조한 무르나우 등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클루조는 결핵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4년간 요양소 생활을 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에서 독일 협조 영화를 만든 것 때문에 나중에 나치 부역 혐의로 2년간 활동 정지당했다.

감독의 아내 베라는 촬영 당시 악조건 때문에 병에 걸렸고 건강을 해쳐 훗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클루조는 아내를 몽마르트르 묘지에 묻은 뒤 타히티에 가서 살기도 했다.

이 작품은 흥행에 크게 성공하며 칸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다.

클루조 감독은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인공조명이 아닌 자연광으로 촬영했다.

트럭에 가득 실린 니트로 글리세린. 이 작품은 날씨와 계절적 요인 등이 겹쳐 제작기간이 길어지면서 5억 프랑이라는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니트로글리세린으로 길을 가로막은 바위를 날려 보내는 장면. 이 장면도 아슬아슬하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은 1977년에 '소서러'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을 다시 만들었다.

기름 구덩이 장면은 아주 처참하고 끔찍하다. 클루조는 피카소, 카라얀 등 유명 예술인과 작업을 함께 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싸이코' 제작 당시 '디아볼릭'의 영향을 받았고, 제레미아 체칙은 이 작품을 같은 제목으로 다시 만들었다.

클루조 감독은 1977년 사망해 몽마르트르 묘지의 부인 옆에 묻혔다.

공포의 보수 Wages of Fear
앙리 조르주 클루조
The Wages Of Fear) (공포의 보수) (The Criterion Collection) (한글무자막)(Blu-ray) (1953)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예스24 | 애드온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