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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 블루레이

국두 (블루레이)

울프팩 2017. 5. 9. 20:16

장예모(장이머우) 감독은 '영웅' 이후 작품들로 정치색 논란에 휩싸였지만 이전 작품들에선 인간성 탐구라는 주제를 중국 전통문화와 훌륭하게 접목시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국두'(菊豆, 1990년)도 그런 작품이다.

 

내용은 1920년대 염색공방의 늙은 주인이 대를 잇기 위해 헐값에 사들인 젊은 처자 국두의 삶을 다뤘다.

늙은 남편의 성적 학대 속에 힘든 나날을 보내던 국두는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지자 염색공방에서 일하던 젊은 일꾼과 사랑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태어난 염색공방의 대를 이을 아들은 남편이 아닌 일꾼의 아이다.

정작 국두는 모든 것을 접고 일꾼과 사랑에 빠지고 싶지만 철저한 유교적 가풍과 관습에 억눌려 이를 숨긴채 살아간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은 아슬아슬하면서도 가슴아픈 사랑을 이어가다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

감독은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불륜, 근친살해, 도덕적 순결을 목숨처럼 중하게 여기는 유교적 관습과 가부장적인 지배구조에 칼날을 들이댔다.

 

비록 인습의 틀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인간 본성에 내재된 사랑에 대한 갈구와 욕망은 칼날이 제도와 틀을 뚫고 나온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는 곧 인간성 회복과도 연결된다.

 

젊은 아내를 물건이나 노예 다루듯 하는 남편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억압된 체제에 대한 저항의 몸짓으로 불 수 있고, 학대 당하는 여인을 위해 칼날을 들고서도 정작 내려치지 못하는 젊은 일꾼을 통해 체제 순응의 무기력함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죽음을 무릅쓰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들에게는 해방이자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인 셈이다.

 

자극적인 소재와 무거운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감독의 독특한 영상 감각 덕분이다.

이 영화는 서양의 오래된 고전 영화나 사진처럼 4 대 3 화면비로 제작됐다.

 

할리우드의 와이드스크린 화면비에 익숙한 눈으로 보면 옛날 TV 브라운관을 연상케 하는 4 대 3 화면비가 답답해 보일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4 대 3 화면비의 장점은 와이드스크린보다 세로 비율, 즉 높이를 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장예모 감독은 이를 십분 활용해 힘차게 그어 내린 붓글씨처럼 길게 뻗은 기둥들과 염색을 하기 위해 길게 널어 놓은 천들을 통해 세로 비율이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 냈다.

특히 이 같은 세로비를 강조한 화면은 세로 쓰기가 익숙한 한자 문화권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한국, 일본, 중국 등 한자 문화권은 붓글씨처럼 원래 세로쓰기의 전통을 갖고 있다.

길게 늘어진 천과 쭉 뻗은 기둥, 이 사이로 스며드는 빛살들은 새삼 세로로 쓴 아름다운 붓글씨를 보는 것 같다.

 

여기에 색을 잘 다루는 장예모 감독답게 피처럼 번지는 염색 물감 등 전체적으로 붉은색과 황색을 강조해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준다.

아울러 사진에 빠졌던 감독의 과거 경험이 안정적인 구도의 영상을 만들어 냈다.

 

따라서 중첩된 지붕과 벽들, 공간을 가득 메운 기와지붕 등의 영상을 보면 미장센이 훌륭한 서양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서양영화들이 각종 소품을 동원해 공간을 가득 채운 반면 장예모 감독은 있는 구성요소의 구도를 잘 살렸다는 점이다.

 

더불어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장예모의 연인이었던 공리(궁리)는 빨아 들이는 듯한 눈빛이 살아 있는 연기로 가슴을 흔든다.

 

한마디로 장예모 감독의 탁월한 영상 감각과 고장위의 뛰어난 촬영, 혼신을 다한 배우들의 연기가 잘 조화를 이룬 수작이다.

정치색 논란을 떠나 장예모 감독이 얼마나 뛰어난 예술 감각을 갖고 있는 지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1080p 풀HD의 1.33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최신작과 비교하면 화질이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입자감이 두드러진 영상은 전체적으로 약간 뿌연 편이다.

 

하지만 과거 DVD 타이틀과 비교하면 화질이 아주 많이 좋아졌다.

LPCM 2.0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우렁찬 소리를 들려준다.

 

전체적으로 음량이 큰 편이며 특히 고역이 날카롭다.

부록으로 예고편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마을을 내려다 보는 영상. 양봉량이 공동 연출로 이름을 올렸지만 장예모 감독의 작품이나 마찬가지다.
염색공방으로 나오는 곳은 중국 안휘성의 남병마을에 위치한 엽씨집안 사당이다. 과거 남병마을의 부자들은 각자 사당을 지어 명성을 높였는데, 7개 사당 중에서 엽씨집안 사당이 가장 높다.
입 구(口), 우물 정(井) 등 한자를 연상케 하는 지붕 구조가 인상적이다. 이 또한 필름의 프레임을 연상케 하는 구도다.
동양의 수묵화처럼 어둠과 빛의 명암대비를 잘 살린 영상.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 역시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위에서 쏟아지는 빛과 길게 늘어진 천이 더 할 수 없이 4 대 3 화면비에 잘 어울린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영상이다.
장예모 감독은 아버지가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군 장교여서 1966~76년 진행된 문화대혁명때 혹독한 비판과 함께 베이징에서 쫓겨나 촌으로 하방을 갔다. 3년간 정신개조 교육을 받은 그는 1971년부터 1978년까지 센양의 염색공장에서 중노동을 했다.
젊은 일꾼을 연기한 이보전. 장예모는 염색공장 시절에 가혹한 노동과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피를 빨아 카메라를 살 정도로 사진에 빠졌다.
영상에 빠진 장예모는 1977년 27세 나이로 베이징영화학교에 입학시험을 봤으나 나이가 많아 낙방했다. 그러자 그는 40개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베이징 문화부장관에게 보내 겨우 촬영학과에 입학했다.
'붉은 수수밭'에 출연하며 장예모 감독과 인연을 맺은 공리는 연인으로 발전해 8년간 함께 지냈다. 당시 공리는 유부남이었던 장예모 감독이 이혼하고 결혼해 주기를 원했으나 장예모 감독의 큰딸이자 배우인 장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장예모는 훗날 이혼했으나 공리하고도 헤어졌다.
높은 벽과 좁디 좁은 골목이 인상적인 마을은 안휘성의 남병이다. 1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작은 마을은 ' 와호장룡 '의 촬영지 중 하나로 유명하다.
장예모는 원래 촬영감독으로 영화일을 시작했다. 영화학교 동문인 첸카이거 감독이나 장쥔자오 감독의 영화를 찍었고 1988년 감독 데뷔작인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받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흰 벽과 회색빛 지붕들이 물결치듯 이어지는 남병마을 풍경을 잡은 영상은 고장위 촬영감독의 솜씨다. 중국 배우 장원리의 남편인 그는 '붉은 수수밭' '패왕별희' '현 위의 인생' 등 아름다운 영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촬영했다.
장예모 감독은 2013년에 30세 연하의 배우 천팅을 비롯해 4명의 여성 사이에서 7명의 자녀를 낳은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중국 정부의 1자녀법 위반이어서 1억6,000만위안(당시 한화 288억원)의 벌금을 내야할 처지였으나 법 집행이 계속 미뤄졌다.
장예모는 스캔들이 터지기 전인 2012년 여배우 천팅과 재혼했다. 천팅은 장예모 감독의 영화 '행복시대'의 주연선발에 참가해 인연을 맺었으며 19세때 장예모 감독의 아들을 낳았다.
장예모 감독은 공리가 떠난 뒤 영화 '집으로 가는길'에 주연 여배우로 공리와 비슷한 분위기를 지닌 장쯔이를 기용했다. 장쯔이도 '연인' '영웅' 등 장예모 감독의 작품에 주연으로 잇따라 출연하면서 스캔들이 났다.
장예모 감독은 '영웅'이후 개인보다는 전체를 강조하는 등 친정부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개, 폐회식 행사 총감독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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