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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굿바이 레닌(블루레이)

울프팩 2016. 11. 16. 20:47

독일인들 사이에 오스탤지어(ostalgia)라는 말이 있다.

동쪽을 뜻하는 오스트와 향수를 뜻하는 노스탤지어의 합성어로, 동독 시절 문물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말이다.

 

독일이 통일된 후 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동독인들이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이 말이 퍼지게 됐다.

동과 서로 분리됐던 독일은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통일이 됐다.

 

서독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렵게 살던 동독 사람들은 통일이 되면서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그러나 행복 지수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통일 당시 서독의 33%에 불과했던 GDP는 2014년 66%까지 올라갔지만 여전히 옛 동독 사람들은 옛 서독 사람들보다 못살다보니 상대적 박탈감이 큰 모양이다.

2015년 한겨레신문이 개최한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에 참가한 독일 오스나부뤼크대의 기외르기 스첼 명예교수에 따르면 옛 동독 지역은 실업률이 옛 서독 지역보다 두 배 높고, 생활비가 더 비싼데도 불구하고 임금이 서독 지역보다 평균 30% 낮다.

 

여기에 병원, 학교, 탁아소 등의 사회시스템도 무너지면서 출산율을 끌어 내렸다.

특히 여성들은 취업을 포기하고 전업 주부로 돌아섰다.

 

그렇다 보니 과거 동독 공산당과 같은 기치를 내건 정당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형국이다.

문제는 독일의 통일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통일 이후 2,60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붓고 있는 동독 재건 사업은 2019년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그 바람에 독일은 통일 후 10년 동안 막대한 비용 때문에 경제 위기로까지 내몰렸다.

 

지금은 이를 극복하고 유럽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했지만 독일 내부에서는 통일 후유증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내부의 증오와 분노는 결국 이민자 등 외부에게로 향하면서 인종차별이나 외국인 혐오 등의 보수반동적인 움직임을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독일의 움직임은 남의 일 같지 않다.

남과 북이 갈린 분단 국가로서 통일이라는 절대적인 지상 명제를 우리 또한 안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이 같은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가 바로 볼프강 벡커 감독의 '굿바이 레닌'(Good Bye, Lenin!, 2003년)이다.

그렇다고 마냥 심각한 정치 드라마가 아니라 오히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블랙코미디다.

 

영화는 통일을 앞둔 동독에서 열렬한 국가주의자였던 어머니가 오랜 시간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으나 갑자기 변한 세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사망할까봐 우려한 아들이 가짜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다.

영화 감독을 꿈꾸는 친구를 이용해 가짜 TV방송을 만들고 동네 주민들과 아이들을 꼬여서 시간을 과거로 되돌린다.

 

그 와중에 언뜻 언뜻 비치는 화폐 교환이나 일자리 문제 등의 사회상은 통일 후 동독 사람들이 겪은 혼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 문제까지 끌어낸 벡커 감독의 연출력이 만만찮다.

 

특히 철거된 레닌 동상이 헬기에 실려 하늘을 가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눈에 보이는 베를린 장벽과 더불어 눈에 보이지 않는 또다른 철의 장막이 붕괴된 점을 암시하는 이 장면은 단순히 외형적 변화 뿐 아니라 오랜 세월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겪게 될 가치관과 생활상의 혼란을 상징하는 명장면이다.

 

영화 '아멜리에' 음악을 담당한 얀 티르젠이 음악을 맡아서 같은 멜로디가 흘러 나오는 점도 특이하다.

1080p 풀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전체적으로 괜찮은 화질이지만 장면에 따라 편차가 있다.

 

클로즈업 등은 볼 만 하나 중경이나 원경은 윤곽선이 명료하지 못하고 거친 입자가 보인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리어를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적당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부록으로 감독 음성해설, 배우들 음성해설, 제작과정, 삭제영상, 과거 동독 관련 영상, 극 중 TV 방송 영상, 뮤직비디오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주인공을 맡은 다니엘 브릴은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이 작품으로 유러피언필름어워드 남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악당 역을 비롯해 '우먼 인 골드' '러시 더 라이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본 얼티메이텀' 등에 출연했다.

동독 건국 40주년을 기념해 칼마르크스 거리에서 벌어진 군사행진을 재현한 장면. 벡커 감독은 동독 소년단 출신이다.

1987년 10월7일 베를린의 쇤하우저가에 위치한 옛 동독 공화국 궁전 앞에서 벌어진 시위를 재현. 당시 수천 명이 참가한 시위는 10월9일 독일 통일의 단초가 된  라이프치히의 월요 시위로 이어졌다. 제작진은 쇤하우저 거리가 혼잡해 에카트링크 거리에서 촬영했다.

통일 후 동독에 무섭게 파고든 것은 바로 포르노 사업이었다.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서 포르노 잡지를 사거나 비디오테이프를 빌렸다.

주인공의 애인을 연기한 러시아 배우 슐판 하마토바. 우리에게는 '루나 파파'와 '투발루'에 주연을 맡아 알려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나서 동독 사람들은 썰물처럼 서독으로 빠져나갔다. 가구까지 고스란히 놔둔 채 비운 집들이 많아 이런 곳에서 생활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반면 서독 사람들은 빠르게 동독으로 들어와 식당, 보험, 중고차 판매 등 프랜차이즈 사업을 장악했다. 특히 위성TV가 당시 월드컵 시즌이어서 빠르게 퍼졌다.

얼마남지 않은 옛 동독의 구급차를 구해서 촬영.

러시아 소설가 올가 슬라브니코바가 쓴 소설 '베스메르트냐'와 이야기가 비슷하다. 소설은 제 2차 세계대전 후 딸이 아버지를 위해 구 소련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꾸미는 내용이다.

벡커 감독은 길을 가다가 얀 타르젠 음악 감독의 공연 안내 포스터를 보고 공연장을 찾았다가 영화 음악을 맡기게 됐다. 그 바람에 얀 타르젠이 음악을 맡은 '아멜리에'와 음악이 같아서 표절 논란이 일기도 했다. 

슐판 하마토바는 촬영 당시 임신중이었다. 그는 독일어를 하지 못해서 대사의 단어 하나 하나를 배워 따라하며 촬영했다.

군용 Mi-8 헬기가 해체된 레닌 동상을 나르는 유명한 장면. 1991년 11월에 철거된 실제 레닌 동상은 너무 커서 헬기로 머리 부분을 끌어 내린 뒤 트럭으로 옮겼다. 극 중에서는 CG로 레닌 동상을 만들었다.

벡커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극 중 주인공의 어머니는 골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동독을 좋아했던 국가주의자였다. 어머니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하면서도 자본주의에 흡수되는 것을 우려했다.

구 소련의 우주탐사계획에 참여했던 동독 최초의 우주비행사였던 지그문트 옌은 동독의 영웅이었다. 실제 옌은 영화 출연을 꺼려 배우가 4시간에 걸쳐 분장을 하고 대신 연기했다.

일부 영상은 통일 당시 촬영된 자료 화면을 썼고 일부는 16미리 카메라로 촬영해 예전 기록 필름 느낌을 살렸다.

하늘로 날아가는 어머니는 과연 아들의 눈물겨운 거짓말을 끝까지 몰랐을까. 오히려 속은 것은 아들이 아닐까. 그것이 벡커 감독이 말하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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