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굿바이 보이

울프팩 2011. 6. 16. 06:44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지난 추억들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즐겁거나 괴로웠던 경험들을 하나씩 둘씩 떠나보내며 소년은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

그 과정을 사람들은 성장통이라고 부른다.
노홍진 감독의 영화 '굿바이 보이'(2011년)는 그런 성장통을 다뤘다.

성장통을 다룬 모든 영화가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개인의 기억에 시대의 흔적이 진하게 배어 있다.
시위 도중 달아나던 여대생이 막다른 골목에서 백골단이 휘두른 무자비한 곤봉에 피범벅이 돼서 끌려가던 모습과 민정당원으로 선거에 목을 매는 아버지의 모습 등 거창한 정치적 상황부터 아버지가 기타를 튕기며 부르는 이문세의 '소녀', 지금은 조간으로 바뀐 당시 어느 석간 신문의 보급소 풍경 등 소소한 일상까지 소년의 추억은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과 교감한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오래된 앨범을 들여다보는 것 처럼 슬며시 웃음이 난다.
하지만 마냥 웃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이, 영화 속 삶이 너무 패악적이고 궁핍하기 때문이다.

권위적이지만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 자식들 때문에 술집으로 내몰린 어머니, 가난 때문에 거리에서  폭력과 탈선 등 거리의 법칙을 먼저 배우는 아이들의 모습은 떠올리기 싫은 기억처럼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하지만 어쩌랴, 그 또한 88올림픽 시절 가림막으로 애써 감추고 싶어한 풍경처럼 외면할 수는 있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삶의 흔적들이다.

노 감독은 한 가족의 삶 속에 이렇게 지난했던 우리 과거의 편린들을 꿰어 맞췄다.
그래서 이 영화 속에는 얼핏 다른 영화의 흔적들이 보인다.

원제가 '개같은 인생' 때문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개 같은 내 인생'과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잘 만든 작품이다.

구성이 탄탄해 이야기 전개에 무리가 없다.
안내상, 류현경, 김소희, 연준석, 김동영 등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도 좋았다.
다만 미장센에 좀 더 공을 들였더라면 영상에 더 빠져들 수 있을 것이란 아쉬움이 들지만, 내용이나 설정을 보면 한계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고 나면 답답할 정도로 가슴을 누르는 무게감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다.
아마도 그것이 과거를 떠나보내며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 지나간 시대를 애써 외면하지 말라고 던지는 감독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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