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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람들(블루레이)

울프팩 2016. 5. 25. 21:00

그 날은 국민학교 6학년 가을 소풍 날이었다.
신나서 김밥을 싸들고 학교로 갔지만 소풍을 갈 수 없었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한참을 지루하게 교실에 앉아있어야 했다.
나중에야 뒤늦게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충격이기는 했지만 '대통령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파악하기에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나이였다.
나라의 가장 큰 어른 대접을 받던 대통령이 죽었다는 소리에 여학생들은 울고 불고 난리였다.


대통령 사망 다음날인 1979년 10월27일은 그렇게 흘러갔다.
10.26을 떠올리면 포승에 묶인 김재규가 상 앞에 앉아 권총을 쏘는 시늉을 하며 현장 재현을 하는 사진과 대통령 장례식날 주저앉아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던 할머니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당시 박전희 전 대통령은 곧잘 국민의 아버지로 비유되곤 했다.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2004년)은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 즉 10.26 사태를 블랙코미디로 처리한 영화다.

 

워낙 사안이 민감하고 미궁에 싸여있는 사건인지라 코미디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코미디이기는 하지만 사건의 흐름은 사실에 충실한 편이다.

영화는 무시무시한 사건의 주모자들을 철저하게 한 인간으로만 그린다.
비록 역사를 뒤바꾼 사건이지만 그 속에 휩쓸려 들어간 사람들의 나약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역사가 뒤바꾼 사람들의 가엾은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역사적 분수령이 된 큰 사건을 지나치게 희화화하고 가볍게 처리하긴 했지만 부조리한 권력층의 뒤틀린 모습을 적절하게 잘 꼬집었다.
특히 권력자들을 아주 우스꽝스럽게 묘사했다.

 

사건의 실체와 파장을 다루지 못한 한계는 있지만 한석규, 백윤식 등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 재치있는 대사와 독특한 영상 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블루레이 타이틀이 반가운 점은 극장 상영과 DVD 타이틀에서 암전 처리된 시작과 끝 부분을 비롯해 잘려나간 3분50초 분량이 온전하게 복원된 점이다.

 

뿐만 아니라 중간에 군데 군데 들어낸 장면들도 고스란히 추가돼 감독이 의도한 영상을 제대로 볼 수 있어 반갑다.

타이틀 케이스에 보면 상영 시간이 DVD 타이틀과 동일하게 적혀 있으나 실제로 감상해 보면 삭제 장면들이 모두 복원됐다.

 

1080p 풀HD의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평범한 화질이다.

물론 DVD 타이틀 보다는 좋지만 블루레이 치고는 일부 장면의 디테일이 떨어진다.

 

DTS 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는 편이다.
두 편의 음성해설, 제작과정, 배우인터뷰 등 DVD 타이틀과 동일한 부록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극장 상영본과 DVD 타이틀은 시작 부분에서 부마항쟁 진압 기록 사진과 김윤아의 내레이션이 통채로 잘렸다. 박 전 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씨가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제기해 법원에서 일부 장면을 삭제하면 상영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법원 명령으로 일부 장면이 삭제된 우리 영화는 이 작품이 최초다.

1979년 10월26일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했다.

김재규 역은 백윤식이 맡았다. 김재규 주치의로 등장하는 의사가 임상수 감독이다.

이 영화의 영상은 독특하다. 철문의 틈 사이로 카메라가 쭉 들어가 내부로 이어지는 장면은 이노비전 렌즈를 사용한 것. 문에 렌즈가 들어갈 정도로 구멍을 낸 뒤 카메라 렌즈가 들어가며 촬영.

전반적인 나레이션을 여성인 윤여정이 맡은 이유는 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남자들의 마초이즘과 권력을 비웃기 위한 것이라고 임 감독은 설명한다.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은 정원중이 연기. 영화에서 차지철은 군복에 집착하는 등 마치 나치의 헤르만 괴링을 연상케 한다.

마지막 만찬에 가수 심수봉과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학생이었던 신재순이 참여했다. 심수봉 역은 김윤아, 신재순 역은 조은지가 연기.

이 영화는 슈퍼35미리로 촬영. 슈퍼35미리는 35미리 일반렌즈로 촬영후 현상과정에서 광학적으로 압축한 뒤 상영시 정상크기로 복원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현상소에서 영상 압축시 화질이 열화되는 문제점이 있다.

만찬 장면에서 엔카를 부른 김윤아의 노래는 너무 훌륭했다. 그가 부른 노래는 코가 마사오의 '가나시이 사케'와 고바야시 아세이의 '기타노 야도카리' 등 2곡이다. 원래 심수봉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좋아한 자신의 히트곡 '그때 그사람'과 김정구의 '눈물젖은 두만강'을 불렀다. 이를 임 감독이 엔카로 바꾼 이유는 심수봉의 자서전에 "엔카를 잘불러 당시 고관대작들의 연회에 자주 참석했다"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 그리고 만주 군관학교를 나와 일본강점기 시절 일본군 장교였던 박 전 대통령은 일본 노래를 좋아했다.

만찬장면은 영상크기가 천천히 변한다. 이유는 배리어블 프레임 렌즈를 장착한 2대의 카메라로 촬영했기 때문. 이 렌즈는 3개의 닷렌즈로 구성돼 있는데 16~105미리 줌까지 조정이 가능하다. 신재순은 영화에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부른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사랑해 당신을'을 불렀다.

차지철이 동정을 받지 못한 이유는 경호실장이 권총을 휴대하지도 않았고 총을 맞자 대통령을 버려둔채 바로 화장실로 숨었기 때문이다.

사건에 가담한 중정요원들 5명은 사형당했다. 맨 오른쪽의 김재규 수행비서 박흥주 대령 역할은 김응수가 연기. 박흥주는 현역 군인이어서 항소심 없이 단심 군사재판에서 바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한석규가 연기한 중정 의전과장 박선호는 영화처럼 대기실에서 경호실의 정인형 경호처장과 안재송 경호부처장을 총으로 겨눴다. 박선호는 해병대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인 정인형을 죽이기 싫어 총으로 겨누고만 있었으나 안재송이 권총을 빼들어 두 사람 모두 사살했다. 박선호도 사형당했다.

영화처럼 김재규는 권총이 고장나자 밖으로 뛰어나와 박선호의 권총을 받아든 뒤 다시 들어가 차지철을 사살하고 박 전 대통령을 확인사살했다.

궁정동 안가는 사고 후 '무궁화동산'으로 바뀌었다.

확인사살을 맡은 중정요원 김태원도 사형당했다.

법원에서 일부 장면을 삭제하는 조건으로 상영해도 좋다는 판결이 나온 뒤 온전한 영화를 보기 힘들게 됐으나 제 1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삭제 장면을 복구해 상영한 적이 있다.

의전과장 박선호는 김재규가 대륜중학교 교사를 지낸 시절의 제자였고, 수행비서 박흥주는 김재규가 6사단장을 지내던 시절 그의 부관이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는 '범죄의 재구성' '도둑들', '암살' 등을 만든 최동훈 감독이다. 이밖에 개그맨 홍록기, 배우 봉태규, 배장수 전 경향신문 기자 등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김재규는 1946년 육사 2기로 졸업, 6사단장, 방첩부대장을 거쳐 국영기업 호비 사장, 9대 국회의원, 건설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직후인 1980년 5월23일 아침 7시 서울구치소에서 사형당했다.

뚫어진 양말, 벌거벗은 나신 등 이 영화는 권력자에 대한 조롱이 계속 이어진다. 김재규는 사건 직후 남산 중앙정보부로 향하다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말을 듣고 용산 육군본부로 차를 돌렸다. 김재규의 결정적 실수였던 운명의 U턴으로 김재규는 정국을 장악하지 못하고 체포된다.

김재규 체포 사실을 알게 된 박흥주는 한강변으로 도주해 숨어있다가 자수했다.

영화는 법원 판결로 엔딩 장면도 잘렸다. 잘린 장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 기록 화면. 임 감독은 박근혜 대통령 얼굴이 나오기 때문에 삭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은 김수환 추기경은 "인간 박정희가 신 앞에 누워있다"는 유명한 말로 시작했다. 당시 '인간 박정희' 운운은 대단한 충격이었다. 그만큼 독재의 서슬이 시퍼랬다.


고바야시 아세이-'기타노 야도카리'('그때 그사람들' 만찬장면에서 김윤아가 부른 노래. 김윤아가 더 잘 불렀다)

그때 그사람들
임상수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그때 그사람들 (1000장 넘버링 풀슬립 한정판) : 블루레이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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