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블루레이)

울프팩 2022. 10. 15. 00:36

대만의 구파도(九把刀) 감독이 만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那些年, 我們一起追的女孩, 2011년)는 고교 시절 첫사랑에 대한 감독의 고백 같은 영화다.

실제로 구파도 감독은 고교 시절 좋아했던 소녀를 잊지 못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실제 좋아했던 소녀의 이름이 실명 그대로 영화 속 여주인공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는 2005년 고교 시절 사랑했던 연인의 결혼식에 다녀온 뒤 옛 기억을 더듬어 2006년 아픈 사랑 이야기를 소설로 펴냈다.

 

이후 영화 제작을 꾀했으나 마땅한 제작사와 감독을 찾지 못해 2010년 직접 만들었다.

그는 연출뿐만 아니라 대본도 쓰고 제작까지 맡았다.

 

한 번도 영화를 만든 적이 없는 풋내기에게 어떤 제작사도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용감한 제작자와 감독이 사비를 털어 영화를 찍었다.

 

그런 만큼 영화는 현실적인 사랑의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내용은 우등생 션자이(천옌시 陳姸希)를 좋아하는 말썽쟁이 커징텅(가진동 柯震東)이라는 남학생의 이야기다.

 

성향이 맞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가까워진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커징텅이 연인에게 잘 보이려고 한 짓이 되려 멀어지게 만들면서 두 사람은 어이없게 헤어진다.

해명이나 고백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15년의 세월이 지나 커징텅은 션자이의 결혼 소식을 듣고 예식장으로 달려간다.

 

하이틴 로맨스 같은 이야기이지만 감독이 실제로 겪은 순애보여서 마냥 달달한 로맨스로 흐르거나 눈물을 쥐어짜는 신파조로 빠지지 않고 현실적인 사랑을 풀어놓는다.

그래서 보다 보면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이나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숙맥들의 쾌거다.

구파도 감독을 비롯해 제작진 대부분이 영화를 처음 찍었다.

 

배우들도 남자 주연배우 가진동은 이 작품이 데뷔작이며, 여자 주연배우 천옌시도 여러 편의 작품을 찍었지만 이렇다 할 성공작이 없어 사실상 데뷔작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꽤나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우선 서정적인 영상이 눈길을 끈다.

대만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영상은 필터링된 색감을 통해 아련한 느낌을 자아낸다.

 

특히 천옌시가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클로즈업 장면들에서 조명을 잘 활용했다.

아울러 천옌시와 기진동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몰입도를 높였다.

 

구파도 감독은 사랑과 영화 촬영에 서툴렀지만 숙맥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성공적으로 잘 만들었다.

아마도 그의 진정성이 통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다.

은은한 발색이 잘 살아 있고 샤프니스가 높아서 윤곽선이 깔끔하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잔잔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부록으로 제작과정, 삭제 장면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각본을 직접 쓴 구파도 감독은 고향인 대만 장화현의 모교인 친쳉고교에서 학생들이 없는 여름방학 동안 촬영했다. 이 학교는 주걸륜이 출연한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찍은 곳이다.
이소룡과 왕조현 등 1980년대 추억의 아이템들이 등장한다. 촬영은 '반교'를 찍은 주의현이 맡았다.
가진동의 아버지가 극중 아버지 역으로 등장. 대만이 더워서 영화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홀딱 벗고 식사를 자주 했다고 한다.
감독은 대본 완성 후 제작진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는데 그때 들린 천옌시가 눈에 띄어 여주인공으로 발탁했다.
가진동은 영화에서도 실명 그대로 커징텅으로 출연. 체육교육학과를 나온 그는 키가 183cm로 큰 편이다.
가진동은 데뷔작인 이 작품으로 제48회 대만 금마장영화제 신인배우상을 받았다. 그는 2014년 성룡 아들 방조명과 대마초를 피웠다가 체포돼 자숙기간을 가진 뒤 2016년 영화계에 복귀했다.
국민당의 오랜 독재를 겪은 대만도 우리의 군사독재시절처럼 고교에 군인 출신 교련 교사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퇴역 부사관이나 장교 출신의 교련교사가 흔히 학생주임을 겸해 아이들을 단속했으며 교련 시간에 제식훈련과 남고에서 총검술, 여고에서 간호법 등을 가르쳤다.
감독은 고교 시절 퇴짜맞을까봐 두려워 션자이에게 변변한 고백을 못했고 손 한번 못잡았다.
바닷가 장면은 대만 바이샤완에서 촬영. '말할 수 없는 비밀'도 일부 장면을 여기서 찍었다.
이 영화는 대만에서 5개월 동안 상영됐다. 구파도 감독의 원작 소설도 2011년 대만 문학 분야 판매 도서 1위에 올랐다.
만화 '슬램덩크'를 좋아한 감독은 촬영기간 제작진과 배우들을 만화처럼 '상북고 농구팀'이라고 불렀다. 감독이 워낙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슬램덩크' 대사나 만화책 '드래곤볼'이 소품으로 등장한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장면은 핑시에서 촬영. 대만은 가을학기제여서 6월에 졸업하고 9월에 입학한다. 대입 시험은 7월에 치른다.
감독은 영화처럼 대학시절 싸움대회에 나갔다가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할 만큼 크게 다쳐 션자이와 헤어졌다. 감독이 태권도를 좋아해 싸움 상대가 태권도부 학생으로 나온다. 대만에서 태권도는 인기가 높다.
수업 중에 자위 시합을 하거나 야한 동영상을 보는 등 섹스 코미디 같은 내용들이 있어서 국내 개봉시 3분 가량 잘렸다. 블루레이는 이런 부분이 그대로 나온다.
1983년생인 천옌시는 가진동보다 여덟 살이 많다. 그는 미국에서 파슨스 디자인스쿨과 USC를 다녔다.
실제 션자이는 국립타이베이대학을 나와 타이중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극 중 삽입곡 일부는 감독이 작곡했고 한 곡은 천옌시가 작곡했다. 주걸륜이 작곡한 노래도 나온다.
영화처럼 실제 션자이도 8세 연상의 남자와 2005년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션자이는 감독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영화 제작을 응원했다.
감독은 촬영 내내 천옌시를 션자이로 불렀다. 그는 핑시에서 등을 날리는 장면을 찍은 뒤 모두 물러나게 하고 천옌시만 홀로 놔둔채 과거에 션자이에게 하지 못한 사랑 고백을 대신했다. 천옌시도 션자이를 대신해 고백을 들어줬다.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카닉(블루레이)  (4) 2022.10.22
여름날 우리(블루레이)  (0) 2022.10.17
너의 이름은(4K)  (0) 2022.10.11
글루미 선데이(블루레이)  (0) 2022.10.09
스타트렉 비욘드(블루레이)  (0) 2022.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