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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블루레이)

울프팩 2018. 10. 20. 14:37

홍상수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그 후'(2017년)는 마치 감독과 김민희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다.

내용은 출판사 사장과 여직원의 불륜 관계를 다뤘다.


아내와 딸이 있는 출판사 사장 봉완(권해효)은 여직원 창숙(김새벽)과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봉완의 아내 몰래 밀회를 즐기지만 창숙이 관계에 부담을 느껴 출판사를 그만두면서 끝난다.


그의 빈자리를 새로 뽑은 여직원 아름(김민희)이 메운다.

하지만 아름은 출근 첫날 사장의 아내와 맞닥뜨리며 봉변을 당한다.


아름을 사장의 내연녀로 오해한 사장의 아내는 아름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폭력을 행사한 것.

봉완은 아내를 만나 오해라고 항변했지만 아내는 믿지 않는다.


그런데 출판사를 떠났던 창숙이 봉완을 잊지 못해 돌아오면서 관계가 꼬이기 시작한다.

홍 감독은 한마디로 아수라장 같은 인간관계를 현재와 과거가 오가는 교차 편집을 통해 풀어냈다.


황당하고 당돌한 이야기는 마침 홍 감독과 김민희의 관계 때문에 그럴듯하게 보인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범상치 않은 대화가 더더욱 실제 관계를 투영하게 만든다.


내연녀가 출판사 사장을 다그치며 내뱉는 "비겁하다"는 대사와 자신은 "비겁하지 않다"며 강하게 항변하는 봉완의 모습은 여러모로 두 사람의 스캔들을 떠올리게 한다.

홍 감독은 특이하게도 이 작품을 흑백 영화로 만들었다.


흑백은 세상의 모든 색깔을 흰색과 검은색 두 가지로 묻어버린다.

미묘한 그러데이션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표적인 색은 두 가지다.


마치 진실과 거짓, 선과 악 두 가지의 대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듯한 흑백 영상은 그래서 메시지를 뚜렷하게 부각하며 강조하는 힘이 있다.

더불어 배경의 모든 것을 어둠이나 그림자에 묻어 버리며 인물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그런 점에서 홍 감독이 흑백 영상을 선택한 점이 흥미롭다.

영화를 보고 나면 마지막에 홍 감독은 과연 집으로 돌아갈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봉완은 영화 속에서 "내 인생을 포기하자, 애 하나만 보고 살자"는 대사를 내뱉는다.

그것이 홍 감독의 생각인지, 세상에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도덕률을 전한 것인지 궁금하다.


흔히 홍 감독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난해하다거나 허무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마 느닷없이 끝나는 결말이나 범상치 않은 대화, 특별한 내러티브가 없는 진행 방식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 홍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을 꺼렸다면 이 영화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홍 감독의 영화 중 비교적 줄거리가 뚜렷한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영상도 신경을 쓴 듯 김민희도 예쁘게 나온다.

더불어 김민희는 동정이 가는 배역을 맡아 그런지 측은하게 보인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다.

흑백 영상이어서 특별히 흠잡을 만한 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음향은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지만 크게 의미 없다.

영화의 성격상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부록도 전혀 없다.

아쉬운 점은 한글 자막에 '뭐라 실지'를 '뭐래실지'로 표기하는 등 소소한 오자가 보인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극 중 권해효의 아내 역할로 나온 조윤희는 실제 권해효의 부인이다. 홍 감독의 전형적인 투샷이 자주 등장.

내연녀는 김새벽이 연기. 촬영 장소는 경기 고양시이며 18일 동인 찍었다.

홍 감독의 21번째 영화인 이 작품은 2017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홍 감독은 처음부터 권해효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홍 감독은 출판사 사장을 따라다니며 이야기를 구상했다. 이 영화는 배터리를 사용한 LED 조명 3개로 찍었다.

홍 감독은 "눈 앞에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게 진실"이라며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 느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은 극 중 봉완의 "진실이란 실체가 없다"는 대사로 표현됐다.

촬영은 홍 감독과 7편의 영화를 같이 만든 김형구 촬영감독이 담당. 촬영은 오랫동안 홍 감독 영화에 카메라를 협찬한 소니의 PMW-F5 카메라를 사용. 렌즈는 밝고 해상력이 좋은 알루라 18-80mm다. 김 감독에 따르면 소니 카메라는 조명이 부족한 야간 촬영에 강점이 있다.

김민희가 택시를 타고 갈 때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것은 실제 상황이다. 기주봉이 택시 운전사 목소리로만 출연.

제목은 홍 감독이 좋아하는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그 후'에서 따왔다. 극 중 봉완이 아름에게 건네는 책도 소세키의 소설이다.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그 후 (1Disc) : 블루레이
홍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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