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여관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여관’(1935년)은 쉽게 보기 힘든 일본의 무성영화다.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 등 서양 무성 영화는 많지만 동양 무성영화는 상대적으로 흔치 않다.

그만큼 이 작품은 오래됐다.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와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3대 감독 중 하나인 오즈 야스지로는 어려서부터 학교를 가지 않고 영화를 보러 다녔다.

그 바람에 촬영 감독 조수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그는 1927년부터 감독이 돼서 죽기 전 해인 1962년까지 55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그 가운데 비교적 그의 무성영화 후기작에 해당된다.

아내가 달아난 뒤 홀로된 가장이 두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도쿄를 떠돌며 일자리를 구하는 내용.
이 과정에 역시 딸아이를 데리고 홀로 떠도는 여인을 만난 가장은 어렵사리 구한 일자리를 팽개치고 여인을 돕기 위해 나선다.

오즈 야스지로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 작품 역시 인간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담겨 있다.
비록 환경은 어렵고 힘들지만 매 순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가장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환경은 결코 주인공의 편이 아니다.
숙련공이지만 일자리는 쉽게 나지 않고, 변변한 먹을 것 조차 없어 두 아이를 굶긴다.

여기에는 군국주의로 세력팽창에만 골몰해 정작 내치에는 소홀했던 일본의 1930년대 시대상이 담겨 있다.
“개는 마지막 식량”이라는 대사와 허공에서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 손짓을 하며 끼니를 달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이 같은 일본 사회의 문제점과 건강한데도 불구하고 일할 수 없는 자의 비애를 차분하고 정적인 영상으로 조용히 풀어 놓았다.
주변 사물을 통해 분위기를 표현하는 인서트 컷이나 아웃포커스로 흐리게 처리된 영상은 마치 오래된 정물화나 풍경화를 보는 것 처럼 예술적인 느낌과 함께 묘한 슬픔을 전달한다.

영상과 더불어 함축적인 자막 또한 인생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사람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렸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대사에서 삶에 지친 사람의 고통이 고스란히 묻어 난다.

이 영화가 나온 지 80년 가까이 흘렀지만 세상은 나아졌는가.
여전히 높은 실업률, 자녀들을 키우기 힘든 환경,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도 내 집 마련조차 쉽지 않은 여건 등을 감안하면 결코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는 80년 전보다 쉽게 좋아졌다는 말을 하기 힘들다.

4 대 3 풀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좋지 않다.
온갖 잡티와 스크래치가 난무하고 필름 열화 흔적이 역력하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모노이며 부록은 전혀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두 아이를 데리고 떠도는 가장은 사카모토 타케시가 연기. 촬영은 시게하라 히데오가 맡았다.

주인공은 떠도는 개를 붙잡아 모자와 바꾼 아이들에게 "개는 식량"이라고 야단친다. 아마도 1930년대 일본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은 개를 먹었던 모양.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시늉을 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찡하다.

아이를 데리고 떠도는 여인을 연기한 오카다 요시코.

고무손잡이를 꾹꾹 눌러 바람을 불어 넣으면 움직이는 장난감은 우리도 1970년대 많이 갖고 놀았다. 당시 유행한 장난감은 손잡이를 누르면 말이 달리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다다미 샷은 아니지만 그의 카메라 앵글은 항상 등장인물들의 눈높이 보다 낮아서 바닦과 함께 잡는다.

훗날 오즈 야스지로의 페르소나가 되는 류 치슈가 젊었을 때 순경으로 잠깐 등장.

초점을 벗어나 멀어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채플린의 떠돌이를 다룬 무성영화와 빗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도둑' 등 전후 네오 리얼리즘 영화들처럼 삶에 지친 주인공의 비애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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