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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그라드 900일간의 전쟁

울프팩 2017. 1. 9. 21:14

제 2차 세계대전사에 있어서 독소전은 전쟁의 향배를 갈랐다.

잇따라 서유럽 국가를 정복하며 승승장구하던 독일이 구 소련을 침공하면서 동과 서 양쪽에서 전쟁을 벌여야했고, 결과적으로 자원이 한정된 상태에서 전력의 배분은 독일의 패배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양수겹장의 악수를 둔 셈이다.

독일은 소련을 침공하면서 또다시 전력을 두 개로 나누었다.

 

모스크바 등을 겨냥한 주공과 함께 레닌그라드 방면의 보조 공격을 통해 소련군을 양분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독일이 레닌그라드, 즉 지금의 상트페테르스부르그를 노린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소련의 북서 항구를 일제히 봉쇄해 고립시키겠다는 전략이었고, 반대로 독일은 이를 통해 원활하게 보급을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1941년 9월부터 일어난 레닌그라드 포위전이다.

 

독일은 폰 레프 원수가 이끄는 북부집단군이 연전연승을 하며 소련군의 34개 사단을 몰아붙였다.

그런데 쾌속 질주가 문제가 됐다.

 

보급선이 길어지며 보급에 어려움을 겪게 됐고 북부집단군이 혹처럼 툭 튀어나오는 바람에 측면을 위협받게 됐다.

이에 독일은 진격을 멈추고 소위 보름간 숨고르기를 했다.

 

이때 소련은 일부러 후퇴해 레닌그라드 사수를 위해 전열을 재배치했다.

그로부터 장장 약 900일간의 걸친 레닌그라드 전투는 참혹했다.

 

전장에서 총부리를 맞댄 병사들의 사상이야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민간인들 또한 상상 이상의 고통을 겪었다.

독일군은 레닌그라드에 포격과 폭격을 한 것은 물론이고 도시로 통하는 모든 길을 틀어 막았다.

 

이렇게 봉쇄된 레닌그라드에서 시민들은 서서히 굶어 죽었다.

전쟁이 나면 군인들에게 우선 보급을 실시하다 보니 민간인들은 자연 뒤로 밀릴 수 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독일군의 봉쇄로 식량과 필요 물자를 공급할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개, 닭, 말 등 기르던 가축은 물론이고 쥐까지 잡아 먹었고 급기야 인육을 먹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마저도 먹을 수 있다면 나은 상황이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벽지를 핥고 지하실의 흙을 퍼다가 국을 끓였다.

 

독일군의 882일간에 걸친 포위로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150만명이 숨졌다.

처음 포위가 시작됐을 때 레닌그라드 시에 300만명이 살았던 점을 감안하면 절반이 숨진 셈이다.

 

알렉산드르 브라프스키 감독의 '레닌그라드 900일간의 전쟁'(Leningrad, 2009년)은 바로 이 같은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겪은 고통과 인고의 시간들을 담았다.

레닌그라드 전투를 취재하기 위해 찾아간 영국의 여기자가 독일군의 공습으로 고립된 뒤 시에 남아 시민들과 고통을 함께 겪는 이야기다.

 

당연히 전투 장면보다는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드라마에 초점을 맞췄다.

따라서 제목을 보고 전쟁 영화를 기대한다면 빈약한 전투 장면에 실망할 수 있다.

 

당시 시민들의 고통을 힘들게 보여주기는 하지만 봉쇄 과정과 배경에 대한 설명이 없다보니 레닌그라드 전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다면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다.

그저 전쟁이 나서 힘들 것이라는 추측이나 소련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절반의 실패인 셈이다.

상황 설명이 충분치 않은 과정에서 시민들의 고통과 생존의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레닌그라드 전투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영웅적인 항쟁의 기록이지만 여타 외국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제작진이 간과한 듯 싶다.

그만큼 아쉬움이 큰 작품이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약간 바랜듯한 색감과 디테일이 떨어진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전혀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흔히 러시아에서 만든 제 2차 세계대전 영화들은 구 소련군의 영웅적인 싸움을 묘사하는데 주력하는데 반해 이 영화는 영국과 합작 작품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전투보다 시민들의 고통에 치중했다.

레닌그라드의 여경찰 니나를 연기한 올가 수투로바는 지금은 옛 이름인 상트 페테르스부르그로 돌아간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대단한 것은 시체를 뜯어먹는 비참한 상황에서도 무기 공장을 쉬지 않고 돌려 대포와 포탄 등을 계속 생산했다는 점이다.

스탈린은 끝까지 항거한 레닌그라드에 영웅도시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영국 여기자를 연기한 미라 소르비노는 하버드대에서 동양학을 전공해 중국어를 곧잘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리플레이스먼트 킬러'에서 주윤발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전쟁 중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교항곡 제 7번 레닌그라드를 작곡해 1942년 8월 레닌그라드에서 볼쇼이 오케스트라 연주로 공연했다.

레닌그라드 사람들이 겨우 연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의 길'로 불린 라도가 호수 덕분이었다. 겨울이 되자 호수가 얼어붙어 이 위로 썰매들이 오가며 보급품을 실어 날랐다. 1941년 9월 시작된 레닌그라드의 포위는 1944년 1월 독일군이 철수하면서 풀렸다.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레닌그라드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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