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블루레이)

울프팩 2018. 10. 5. 06:56

발레 공연에 익숙한 사람들도 매튜 본의 무용극 '백조의 호수'(Matthew Bourne's Swan Lake, 2012년)를 보면 당혹스러울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그 공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공연은 한마디로 파격적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동일하게 사용하지만 기존 발레극의 모든 것을 뒤업는 파격을 통해 가치 전복을 시도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백조들이다.

이 공연의 백조들은 모두 근육이 우락부락한 남성들이다.

 

하늘하늘한 레이스가 달린 흰색 발레복을 입은 여성들이 차이코프스키의 곡에 맞춰 우아하게 무대 위를 수놓는 모습은 볼 수 없다.

대신 거친 남성들이 위압적이며 거칠고 폭력적인 백조를 연기한다.

 

때로는 그 모습이 기괴하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이 같은 백조의 변신은 출발부터 다른데서 시작됐다.

 

기존 발레극과 달리 이 공연에서는 외로움을 타는 왕자가 주인공이다.

왕자는 어머니인 왕비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정작 왕비는 남성들과 파티를 즐기는 것에만 관심 있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왕자는 천박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 또한 가식이었다.

그런 그에게 백조는 거칠게 몰아붙이는 위협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의 그를 구원해 줄 동아줄로 다가온다.

 

자살을 생각하는 왕자 앞에 나타난 백조의 우두머리는 상처받은 그를 위로하며 희망을 준다.

백조가 그를 위무하는 장면은 언뜻 브로맨스, 즉 동성애를 연상케 한다.


그 또한 발레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그러나 왕궁에서 열린 파티에 멋진 젊은이로 변신해 나타난 백조의 우두머리는 거꾸로 왕자의 여인들과 왕비까지 유혹하며 왕자를 비탄에 빠트린다.

 

결국 분노가 폭발하며 미쳐버린 왕자는 정신을 잃고 병실에 감금되고, 그 앞에 나타난 백조 떼는 그를 위협하며 죽음으로 내몬다.

그것이 왕자가 본 환상인지 현실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더 이상 백조는 그에게 구원이 되지 못한다.

 

마녀의 저주에 걸려 백조가 된 공주를 구하는 왕자가 등장하는 원작과 달리 백조의 도움을 받는 왕자의 이야기로 완전히 뒤집은 이 공연극은 구성 자체를 현대극으로 바꿔 재미있게 표현했다.

현대 복장을 하고 휴대폰을 든 무용수들은 발레뿐 아니라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맞춰 다양한 무용을 선보인다.

 

토슈즈 또한 신지 않았다.

대신 구두처럼 보이는 변형된 신발을 신고 공연을 한다.

 

굳이 발레 공연은 이래야 한다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한 점이 무엇보다 눈길을 끈다.

특히 영화의 픽처 인 픽처 형태로 발레극을 삽입한 점도 재미있다.

 

발레극을 보며 천방지축 행동을 하는 여인의 모습은 유머러스하다.

단연 압권은 백조로 분장한 발레리노들의 힘 있는 군무다.

 

공격적인 백조의 모습을 흉내 낸 이들의 무용은 같은 작품이 설정과 연출에 따라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워낙 파격적이고 기이해 눈길을 끌다 보니 2시간에 이르는 공연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빠져들게 된다.

 

새삼 매튜 본이라는 안무가가 왜 무용계의 피카소로 추앙받는지 알게 해준다.

영국에서 태어난 매튜 본은 22세 때 무용학교인 라반센터에 입학할 때까지 무용을 전혀 한 적이 없다.

 

하지만 BBC 기록보관소, 영국 국립극장에서 일하면서 숱한 영화와 문학 작품을 보며 탄탄한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한 기초를 다졌다.

이를 통해 그는 콘텐츠의 완성도란 기술보다 이야기 구성력에 있다는 점을 일찍부터 터득했다.


매튜 본은 1985년 라반센터 졸업 후 영상과 연극 등을 통해 터득한 이야기 구성력을 무용에 접목시키기 위한 갖가지 실험을 했다.

그만의 공연단을 만들어 발레에 영화, 뮤지컬, 각종 현대 무용 등을 섞은 다양한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의 이런 시도는 소위 댄스 뮤지컬 혹은 댄스 시어터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1995년 처음 선보인 이 작품도 마찬가지.


기존 발레극을 완전히 뒤집는 그만의 해석과 구성력으로 파장을 일으키며 댄스 시어터의 교과서가 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은 2011년 영국 런던의 새들러스 웰스 극장 공연 실황을 담았다.


연출은 매튜 본이 직접 했으며 공연 때부터 촬영을 염두에 두고 카메라를 배치해 공연에서 볼 수 없는  무용수들의 섬세한 표정 연기 등을 볼 수 있다.

물론 해당 장면에서 무대 전체를 조망하는 장면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매튜 본이 연출을 직접 한 만큼 오히려 영상이 강조해야 할 부분을 잘 반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은 국내용으로 따로 출시된 것은 아니고 지역 코드가 없는 해외판이 수입됐다.


1080i의 1.78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을 보여준다.

1080p가 아닌 만큼 디테일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다.


윤곽선도 깔끔하지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색조는 잘 살아 있다.

음향은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데 전방에 사운드가 집중됐다.


부록은 전혀 없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몇 차례 공연된 적이 있는데 매번 전회 모든 좌석이 매진됐다. 그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이다.

왕자는 어린 시절부터 굉장히 선병질적이고 심약하며 섬세한 존재로 묘사됐다.

매튜 본은 1987년 어드벤처스 인 모션 픽처스(AMP)를 창단해 다양한 공연을 선보였다. 이후 매튜 본은 2002년 AMP를 나와 뉴 어드벤처스 공연단을 새로 만들었다.

마치 영화의 픽처 인 픽처 방식처럼 극 중 발레극이 들어갔다.

이 작품의 특징은 이야기를 완전히 바꾸고 카바레가 등장하는 등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점이다.

무용수가 마치 물 위에 떠있는 백조처럼 천천히 무대 위를 미끄러지며 등장하는 장면은 무용계에 새로운 반란과 파격을 알린 명장면이다. 그야말로 혁신의 대두다.

백조 역은 리처드 윈저가 맡았다. 매튜 본은 영국인 중에 처음으로 미국 토니상에서 안무상과 연출상을 동시에 받았다.

공연은 총 2막으로 구성됐으며 모두 120분간 진행된다.

3대 백조로 등장한 리처드 윈저는 영화 '스트리트 댄서 3D'에 주연으로도 출연했다.

니나 골드먼이 여왕으로 출연.

매튜 본이 파격적 실험을 처음 선보인 작품은 1992년 공연한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이다. 그는 이 작품을 런던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내용으로 완전히 바꿔서 화제가 됐다.

현대적 세트로 구성된 무대 배경 또한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다.

매튜 본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다분히 동성애적 코드로 읽힐 만한 장면들이 보인다. 왕자 역할은 도미닉 노스가 연기.

병원이 주는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등장인물들의 흰 옷과 위압적인 검은 그림자를 통해 잘 표현했다.

초연 때 백조를 맡은 아담 쿠퍼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발레리노가 된 빌리를 연기했다.

매튜 본은 새롭게 해석한 댄스 뮤지컬 작품들로 무용에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 극장으로 끌어들이며 무용의 대중화에 크게 공헌했다. 영국 왕실은 그의 이런 공로를 인정해 훈작사 작위를 수여했다.

차이코프스키 : 백조의 호수 - 매튜 본 SE (DVD CD 스프링노트 한정반)
Richard Winsor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2010년 리차드 윈저 주연 버전] (Matthew Bourne's Swan Lake: Newly Recorded in High Definition)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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