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박쥐

울프팩 2009. 5. 5. 09:46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그런 작품이다.
박 감독이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공동경비구역 JSA' 등 전작들에서 보여준 연출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칸 영화제 진출 소식과 박 감독이 스스로 자신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작품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사람마다 갈리겠지만 전작들에서 보여준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짜임새 있는 화면 구성 등을 이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쓰리'도 그랬지만, 약간 비현실적인 판타지풍이 박 감독과 잘 안맞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는 철저한 이중성을 이야기한다.
성직자이면서 악마의 상징인 흡혈귀로 살아가는 남자와 성적 욕망에 몸부림치는 유부녀가 벌이는 욕망에 대한 탐구는 연쇄살인의 파노라마로 치닫는다.

박 감독은 이중성이라는 모순으로 가득찬 우리네 사회를 흡혈귀라는 지극히 현실적이지 않은 존재를 대입해 풍자했다.
살인을 원치 않는 흡혈귀나 욕망에 젖어 밤거리를 질주하며 거짓말을 일삼는 유부녀는 물론이고 이들이 살아가는 공간까지 온통 비현실적이다.
하루 종일 뽕짝을 들으며 친구들을 불러 마작을 즐기는 가족들의 모습은 마치 홍콩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질적이다.

이처럼 낯설고 이질적인 풍경은 특이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영화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그렇다보니 상영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불편하기까지 하다.

아울러 김옥빈의 연기에 대해서도 진정성 측면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왠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

박 감독의 메시지 캐치에 실패한 탓일 수도 있지만 이번 작품은 흔히 회색 분자의 상징인 박쥐라는 동물만큼이나 어정쩡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차라리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황혼에서 새벽까지'나 '플래닛 테러'처럼 아예 작정하고 B급 영화를 만드는게 더 나았을 수도 있다.
결코 송강호의 성기 노출이나 박찬욱의 명성이 보탬이 되지 않는 작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잘 알지도 못하면서  (8) 2009.05.17
7급 공무원  (8) 2009.05.10
똥파리  (4) 2009.04.18
그림자 살인  (2) 2009.04.11
말리와 나  (6) 2009.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