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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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태와 영자

울프팩 2012. 6. 1. 18:26
하길종 감독의 '병태와 영자'(1979년)는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청춘들의 송가다.
이제는 나이 지긋한 중년들이 됐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 참 순진하고 풋풋한 청춘들이 떠오른다.

하 감독이 최인호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만든 '바보들의 행진'의 속편 격인 이 작품은 주인공 병태가 군대 다녀와 영자와 사랑을 싹 틔우는 내용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여대생들에게 갓 복학한 남자친구는 참 암울한 존재였다.

마땅한 직업 없이 학교를 다녀야 하니 보장할 만한 미래라는 것이 없다.
그 사이 여자는 대학을 졸업해 취직을 하고, 사회에서 능력있는 남자들을 만나면 흔들리게 된다.

영화는 이런 시대상을 담아 오랜 세월 테마로 남아 있는 이수일과 심순애식 사랑을 그렸다.
그래도 하길종과 각본을 쓴 최인호는 사랑의 힘을 믿은 모양이다.

지금보면 어색하고 촌스러울 수 있는 이야기와 구성이지만 영상과 음악 등을 통해 1970년대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품이다.
특히 사랑과평화의 '한동안 뜸했었지', 보니M의 'Rivers of Babylon', 바카라의 'Yes ser, I Can Boogie', 송창식의 '날이 갈수록', 리차드 클라이더만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등 기억이 새로운 가요와 팝, 경음악 등이 삽입곡으로 쓰여 반갑다.

4 대 3 풀스크린의 DVD 타이틀 영상은 화질이 아주 좋지 않다.
필름 손상 흔적이 곳곳에 보이고 화소는 마구 뭉개져 원경에서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
음향은 돌비디지털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전혀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주연인 병태 역을 맡은 손정환은 출연 당시 연대 응원단장이었다. 연고전을 구경갔던 하 감독이 그의 응원모습을 보고 섭외했다.
손정환은 영화 내용처럼 촬영 당시 입대를 3개월 앞둔 상황이었다. 그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바로 군대를 갔고, 제대 후 복학해서 'F학점의 천재들'이란 영화에도 출연했으나, 배우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사회학과 졸업 후 광고회사 오리콤에 입사했다. 그후 유명한 자동차광고와 신용카드 광고등을 제작했다.
영자를 연기한 이영옥은 1967년 신상옥 감독의 '꿈'으로 데뷔한 아역배우 출신이다. 1975년 '바보들의 행진'에서 영자 역을 맡아 스타가 됐고 '속 병태와 영자'에도 출연했다.
낯익은 배우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팔씨름꾼으로 나와 대사 한마디없이 얼굴만 잠깐 비춘 조춘.
병태의 매형으로 나온 김희라도 마찬가지로 대사 한 줄 없다. 백일섭은 형으로 출연.
얄개로 유명한 이승현이 동생으로 나와 기타를 치며 '얼굴'을 불렀다.
졸지에 김중배가 된 한진희. 참으로 앳되다.
"영자는 좋겠다. 시집가서 좋겠다" "영자는 좋겠다. 돈도 많이 벌고.." 처럼 다소 부러움이 섞인 자조성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일부 장면은 한국판 '졸업'을 연상케 한다.
천재소리를 듣던 하길종 감독은 서울대 불문과를 나와 미국 UCLA 영화과를 졸업해 한국에서 몇 편의 작품을 만들었으나 79년 38세 나이로 요절했다. 그는 배우 겸 감독인 하명중의 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