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비긴 어게인

울프팩 2014. 10. 4. 22:47

'원스'를 만든 존 카니 감독의 '비긴 어게인'(Begin Again, 2013년)은 두 남녀의 애잔한 사랑과 음악 이야기로 감동을 준 '원스'(http://wolfpack.tistory.com/entry/원스-SE)의 후속작 같은 영화다.

인물과 이야기는 다르지만 음악을 매개로 맺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점이 닮았다.

 

내용은 뉴욕의 대도시 한 복판에서 이제는 퇴락한 음반 프로듀서와 무명의 가수가 의기투합해 음반을 만드는 이야기다.

'원스' 만큼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이나 진중한 느낌은 덜하지만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든 캐릭터와 음악이 '원스'와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작품이다.

 

한때 음반 작업을 했던 존 카니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잘 녹여내 꽤나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여기에는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와 뉴욕 그 자체에 녹아든 맛깔스런 음악의 공이 컸다.

 

특히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 아주 괜찮은 노래 솜씨를 들려준 키이라 나이틀리와 수수한 매력이 돋보이는 마크 러팔로, 노래 실력 못지 않게 연기도 훌륭했던 마룬5의 보컬 애덤 리바인 등 배역 설정이 훌륭했다.

더불어 처음 도입부에 대해 시간을 되돌려 보여주는 설정도 독특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정작 인상 깊었던 것은 소품처럼 등장하거나 툭툭 던지는 대사와 음악 속에서 빛나는 지나간 것들에 대한 향수다.

우선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 대한 추억이다.

 

극장 자막에는 아버지가 야한 딸의 옷차림에 대해 "날 잡아가슈 하는 옷차림"이라고 번역해 놓았지만 대사를 들어보면 "택시드라이버의 조디 포스터 꼴"이라고 나온다.

즉, 어린 창녀 같다는 소리다.

 

또 길거리 밴드에 흑인이 연주하는 베이스 기타는 폴 매카트니가 비틀즈 시절 자주 들고 나왔던 호프너 베이스기타다.

남녀 주인공이 헤드셋을 나눠 끼고 듣는 옛 영화음악은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추억이 서린 '카사블랑카'의 주제가 'as time goes by'다.

 

더불어 LP들까지 방 한 켠에 꽂혀 있는 것을 보면 이제는 잊혀져가는 추억에 가슴이 아련하다.

막판 주인공들은 독특한 방식의 음반 판매를 기획하는데, 그 과정 또한 문 닫은 타워레코드가 상징하듯 이제는 음반을 사지 않는 시대에 대한 송가처럼 느껴진다.

 

그런 기억들을 일깨워 준 덕분에 아련하고 따뜻하게 다가온 작품이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제시장  (4) 2015.01.15
나를 찾아줘  (6) 2014.11.14
명량  (8) 2014.08.15
군도  (3) 2014.07.27
겨울왕국  (0) 2014.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