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추천 DVD / 블루레이

비포 선셋(블루레이)

울프팩 2017. 11. 23. 17:34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셋'(Before Sunset, 2004년)은 전편인 '비포 선라이즈'에서 하룻밤의 애달픈 사랑을 하고 헤어진 뒤 9년 만에 재회하는 이야기를 담은 속편이다.

풋풋한 미국 청년(에단 호크)은 유명 소설가가 됐고 파리 처녀는 열혈 환경운동가로 변신했다.

 

속편이 등장하기까지 9년이 흐른 시간은 영화 속 내용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팽팽했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얼굴에 주름이 보이고 앳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서로를 갈망하면서도 이어지지 못한 둘의 애달픈 사랑은 변함없다.

외모만큼이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서로의 처지다.

 

그새 남자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뒀고 여인은 사귀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행복하지 않다.

 

생활에 떠밀려 흘러온 세월이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던 듯, 두 사람은 지나간 시절에 대한 반추와 함께 후회, 원망을 언뜻언뜻 내비친다.

압권은 차를 타고 가면서 그 짧은 시간에 두 사람이 티격태격 다투는 장면이다.

 

여인은 결코 만족스럽지 못한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남자의 머리를 만질 듯 말 듯 손을 뻗치다가 거둔다.

그 작은 움직임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함축돼 녹아 있다.

 

여전히 사랑은 찻잔 바닥에 가라앉은 분말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는데 현실은 이를 수용하기 힘들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세 편의 '비포' 시리즈 가운데 이 작품이 가장 좋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사랑의 아픔을 낭만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1시간 20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홍상수 영화처럼 쉼 없이 떠드는 두 사람의 대화에도 많은 내용이 들어있지만 미처 말하지 못한 안타까움은 두 배우의 몸짓과 표정, 웃음에 녹아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모두 동원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아낌없이 쏟아낸 작품이다.

 

더불어 속편의 무대인 파리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비엔나만큼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며 다양한 그림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센강을 비롯해 파리 뒷골목과 이 작품 때문에 유명한 서점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등 비엔나와 다른 느낌의 풍경을 보여준다.

 

1편의 정서를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업그레이드된 이야기로 잘 마무리하고 3편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을 갖게 만드는 수작이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아쉽다.

 

제목처럼 늦은 오후 시간대에 촬영을 하다 보니 햇살이 쨍쨍하지 않아 디테일이 떨어진다.

심지어 전체적으로 화면이 약간 뿌옇게 보이고 색감도 탁하게 다가온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도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부록으로 감독과 배우, 제작자가 털어놓는 제작 과정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 때문에 주목을 받은 파리의 유명 서점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출판사 겸 서점을 만든 실비아 비치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를 처음 출판한 사람이기도 하다.

소설가가 된 남자는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독자와 대화 시간을 갖는다. 그가 쓴 책은 9년 전 '비포 선라이즈' 영화 내용이다. 남자는 그동안 만나지 못한 여인이 이 책을 보고 다시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남자의 소망은 현실이 됐다. 단 앳되고 파릇파릇한 아가씨는 원숙한 여인이 됐다.

여인이 미국에서 살 때 경관이 오래 살고 싶으면 권총을 구입하라고 조언했다는 에피소드는 줄리 델피가 겪었던 실화다.

전편처럼 컷 없이 길게 이어지는 대사가 변함없이 등장한다. 최장 롱테이크는 무려 11분 동안 이어진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에단 호크, 줄리 델피는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영화 줄거리와 대사 등을 구성했다.

이 작품은 15일 만에 촬영이 끝났다. 촬영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감독의 친구인 리 대니얼이 담당.

유람선을 탄 두 사람은 멀리 보이는 노트르담 성당을 향한 채 대화를 나눈다.

회한이 가득한 표정으로 지난 일을 말하는 남자의 머리를 향해 안타깝고 슬픈 표정의 여자가 만질 듯 말 듯 손을 뻗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다.

여인의 아파트 내부는 배역을 맡은 줄리 델피의 의견을 반영해 꾸몄다.

극 중 환경운동가를 연기한 줄리 델피는 실제로 정치가를 꿈꾸다가 배우가 됐다.

남자가 아파트에서 트는 음악은 니나 시몬의 CD 음반 '토마토 컬렉션'에 실린 'just in time'이라는 노래다.

줄리 델피가 아파트 뜰에서 대화를 나눈 남녀는 실제 그의 부모인 알버트 델피와 마리 필레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박스세트 (2disc)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비포 선셋 (1Disc) :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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