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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 블루레이

살로 소돔의 120일(블루레이)

울프팩 2016. 4. 12. 22:19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9월8일, 독일과 같은 편이었던 이탈리아가 연합군에 항복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그보다 앞서 파시스트의 기원을 이룬 파시스트당의 당수인 베니토 무솔리니를 실각시키고, 그랑삿소 산장에 연금시켰다.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입장에서는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든든한 우방은 아니었지만, 상실할 경우 연합군에게 아랫배를 걷어차이는 심각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히틀러는 이를 막고자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 친위대의 오토 스코르체니 소령을 급파했다.

독일의 정예 공수대원들과 함께 그랑삿소 산장에 침투한 스코르체니는 뭇솔리니 구출에 성공했다.
히틀러의 품에 안긴 무솔리니는 1943년 9월23일 나치 독일이 장악하고 있던 이탈리아 북부에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RSI)을 세웠다.

RSI는 말이 국가일 뿐, 실권은 별로 없는 나치 독일의 꼭두각시 정부였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유태인 절멸 및 파시스트에 대항하던 이탈리아 빨치산과 무솔리니 반대파 숙청에만 골몰하던 이 공포의 왕국을, 마을 이름을 따서 살로 공화국이라고 불렀다.

충격과 공포로 얼룩진 금기시된 명작

피에르 파울로 파졸리니 감독이 만든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Salo, Or The 120 Days Of Sodom, 1975년)은 바로 이 살로 공화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살로 공화국의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을의 소년 소녀들을 잡아다가 감금해 놓고 온갖 성적 학대를 일삼는 이야기다.

약 10년 전 영국 출장 길에 구해 온 DVD 타이틀로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 어떻게 이런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강간은 물론이고 동성애, 집단 난교, 배설물을 먹이고 혀를 자르거나 머리 가죽을 벗기는 등 포르노에서도 쉽게 보기 힘들만큼 추악하고 변태적이며 잔혹한 행위들이 시종일관 스크린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당연히 국내에서는 개봉 불가이며, 외국에서도 논란이 많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문제작이자 걸작으로 꼽힌다.

그람시의 문화적 헤게모니에 입각한 작품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에는 눈에 보이는 영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파졸리니의 사회를 통찰하는 역사관과 철학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좌파 감독이었던 파졸리니는 18개월 간 실존했던 살로 공화국의 참상을 통해 인간의 삐뚫어진 욕망과 집단 광기에 사로잡힌 파시즘이라는 잘못된 권력을 고발하고 있다.
파졸리니는 파시즘이 당시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민중의 잘못된 선택이 어떤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 지를 영상으로 꼬집었다.

그는 영화 제작 당시 유럽을 휩쓸던 신자본주의 물결을 보며 파시즘 처럼 민중들의 잘못된 선택이 되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단은 전적으로 파졸리니가 깊이 빠져있던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시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화적 헤게모니 이론에 기초한다.

파시즘 치하에서 살다가 죽은 그람시는 마르크스나 레닌과 달리 자본주의가 내부 모순 때문에 붕괴해 사회주의로 기계적인 진화를 하지 않고 더 오래 갈 것이라고 봤다.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국가는 경제 뿐 아니라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적극 개입해 민중의 의식과 활동을 지배하며 권력, 즉 헤게모니를 공고히 하기 때문이다.

즉, 역사가 하부 구조에 기대어 법칙처럼 변하지 않고 인간의 의식과 선택이라는 상부 구조에 따라 달라진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그람시는 민중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예술가 등 지식인의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여기서 파졸리니는 민중들의 눈높이에 맞춘 대중 예술을 지향해 가장 알기 쉽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민중이 잘못 선택한 파시즘을 고발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살로'는 바로 그런 영화다.

민중이 의식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신자본주의 또한 파시즘의 재래가 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이기도 하다.
하지만 파졸리니의 비판적인 메시지는 대중들보다 권력이 먼저 읽었다.

파졸리니의 처참한 최후

영화 개봉 후 몇 달 뒤인 1975년 11월, 파졸리니는 로마 근처 오스티아라는 해변 마을에서 처참한 시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17세 소년 주세페 펠로시를 범인으로 잡아들였다.

경찰에 따르면 소년은 자신을 유혹하던 파졸리니를 죽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지식인들은 이 말을 믿지 않고 정치적 타살로 봤다.

타살을 주장한 사람들은 파졸리니의 사체에 여러 명이 난타한 흔적이 있고, 심지어 사체 사진에 나타난 자동차로 깔아뭉개 처참하게 짓이겨진 얼굴 등으로 미뤄 단독 범행은 아니라고 봤다.
문제의식이 뚜렷한 시인이자 작가 겸 언론인이고 당대 뛰어난 영화감독이었던 파졸리니의 처참한 죽음 만큼이나 안타까운 것은 혼신을 다해 만든 마지막 작품 '살로'가 워낙 충격적이다보니 대중에게 진의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영국에서 출시됐다.
문제는 코드 프리가 아닌 지역코드 B여서 코드 프리가 돼 있지 않은 국내 블루레이 플레이어에서는 볼 수 없다.

블루레이는 소장 중인 DVD와 마찬가지로 영국영화연구소(BFI)에서 제작했는데, 화질이 잡티와 지글거림이 보이는 등 최신작에 비하면 떨어지지만 DVD와 비교하면 뛰어나다.
본편과 2번째 부록 디스크의 일부 내용에 영어 자막이 들어 있다.
부록으로 촬영 모습과 파졸리니 감독 인터뷰,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 죽음에 얽힌 의문점 등을 소개한 내용들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캡처 장면 선택이 아주 힘들다. 지뢰밭 한 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온통 충격적인 장면 투성이다. 

살로는 이탈리아 북부 가르다 호수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중세 시대부터 휴양지로 이름 높은 이 곳은 무솔리니가 마지막 권력을 잡았던 곳으로 오명을 떨쳤다. 

무솔리니와 그를 추종하던 파시스트, 검은 셔츠단은 히틀러가 보낸 친위대의 비호 아래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파졸리니는 파시스트들이 소년 소녀들을 잡아들여 벌이는 성적 악행을 사드 후작이 쓴 '소돔 120일'을 빗대어 묘사했다.

파시스트들은 매춘부들을 동원해 감금한 소년 소녀들에게 마네킹을 이용해 성적 기교를 가르친다. 

배설물을 먹이는 장면은 어떻게 찍었는 지 의문이 들 만큼 구역질이 난다. 

1922년 생인 파졸리니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그는 보수적이고 완고한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싫어하고 어머니만 따르면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경향을 보였다. 

파졸리니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립자인 그람시의 영향을 받아 공산당에 입당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그의 형과 마찬가지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으며 한때 고교 교사도 했다. 

그러나 파졸리니는 1949년에 학생과 벌인 동성애가 문제가 돼서 공산당에서 쫓겨났다. 이후 시와 칼럼 등을 매체에 기고하던 그는 유럽을 휩쓸었던 68혁명 당시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한때는 파졸리니의 과격한 좌파적 성향 때문에 이탈리아의 테러 단체 붉은 여단에 가담했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본인은 부인했다.

파시스트들은 성적으로 학대하던 소년 소녀들을 불로 지지고 혀를 자르거나 머리 가죽을 벗기는 등 고문을 가하며 즐거워 한다. 

파졸리니는 이 장면을 파시스트들이 망원경으로 멀리서 지켜보는 모습으로 묘사해 인간의 관음증적 욕망을 다뤘다. 뜰에서 벌이는 이 장면은 커다란 세트에서 촬영. 천장 가득 조명을 달아 뜰처럼 보이도록 했다. 

파졸리니는 75년 11월 로마 인근 오스티아 해변 마을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당시 그의 붉은 색 알파로메오 차량을 운전하던 17세 소년 주세페 펠로시를 범인으로 체포했다. 경찰은 사건 당일 밤에 파졸리니가 해변을 걷던 소년을 차에 태워 동성애를 나누던 중 소년이 파졸리니의 머리를 돌로 때려 쓰러트린 뒤 지갑이 든 옷과 자동차를 가져갔다고 발표했다. 이후 동성애를 혐오한 마을 청년 여럿이 그를 난타했고, 펠로시가 차를 후진시켜 그를 깔아뭉갰다는게 경찰 설명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좌파 지식인이었던 그의 영향력을 우려해 정치권에서 암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파졸리니는 생전에 단편을 포함해 '마태복음' '데카메론' '아라비안 나이트' 등 23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데카메론' 등 일부 작품에 직접 출연도 했다. 

영화에도 동성애가 적나라하게 나온다. 영화에 흐르는 아름다운 음악은 엔니오 모리코네 작품이다. 그는 훗날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음악을 맡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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