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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 블루레이

시민 케인(4K)

울프팩 2021. 12. 25. 11:38

오손 웰즈(Orson Welles) 감독의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년)은 따로 말이 필요 없는 교과서 같은 영화다.
전 세계 주요 영화 관련 단체 등에서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로 늘 꼽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천재로 일컬어지는 웰즈가 불과 25세 나이에 영화 데뷔작으로 내놓았다.
내용은 수많은 언론사를 장악해 언론 황제가 됐던 찰스 케인이 죽는 순간 남긴 '로즈버드'라는 유언을 풀어가는 이야기다.

교과서 같은 영화
주인공인 찰스 케인은 당시 퓰리처와 함께 옐로 저널리즘 바람을 일으켰던 언론 황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를 모델로 한 인물로, 실화와 허구가 섞이면서 막강한 힘을 가졌던 허스트를 정면으로 비판해 화제가 됐다.
케인은 거대한 성 같은 저택을 가질 정도로 막강한 부를 축적했지만 종국에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언론사를 같이 일으켰던 친구는 변해가는 그의 모습에 실망해 떠났고 두 번의 결혼도 행복하지 못했다.
결국 유언이 된 로즈버드는 케인이 살면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나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회상, 즉 인생무상으로 귀결된다.

영화를 보노라면 한 인물의 굴곡진 거대한 인생사를 물 흐르듯 매끄럽게 풀어낸 웰즈 감독의 연출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는 연출뿐 아니라 직접 주인공 케인 역할을 맡아 뛰어난 연기로 배우로서도 훌륭한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 영화가 높이 추앙받는 이유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오늘날 영화의 주요 촬영기법이 이 영화를 통해 정립됐기 때문이다.
불세출의 천재였던 웰즈는 촬영 감독 그레그 톨랜드(Gregg Toland)와 함께 딥 포커스, 디졸브, 극단적인 로우앵글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법들을 이 작품에서 선보였다.

지금 다시 보면 후대의 영화들이 워낙 많이 따라한 기법이라 별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이 작품 이후에 나온 영화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본다면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테크닉이 뛰어나다.
그만큼 이 작품은 많은 영화인들에게 제작 방법을 제시한 전범이 됐다.

하지만 그 때문에 지나치게 기술적인 면으로만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금 다시 봐도 놀라울 정도로 영상 테크닉과 이야기 전개 방법이 뛰어난 이 작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에는 흥행에 실패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보지 못했기 때문.
이유는 허스트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철저하게 상영을 막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을 거쳐 뒤늦게 개봉했지만 상영관도 몇 개 되지 않았고 제대로 알려지지 못해서 개봉이 10여 년이 지난 1958년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지 못해서 제대로 된 평가 또한 받지 못했다.
뒤늦게나마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영화 종사자뿐만 아니라 영화를 깊이 있게 보고자 한다면 영어 공부를 위해 알파벳을 익히는 것처럼 반드시 봐야 할 명작이다.
국내 출시된 4K 타이틀은 블루레이 디스크 없이 오로지 4K 디스크 한 장으로 구성됐다.

DVD에 비해 아쉬운 부록
블루레이 타이틀이 국내 출시되지 않은 만큼 이번 4K에 블루레이가 함께 수록됐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2160p UHD의 1.37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흑백 영상을 깔끔하게 잘 담아냈다.

80년 전 작품인 만큼 입자가 굵고 윤곽선이 두터운 편이지만 잡티나 손상 흔적 하나 없이 깨끗하게 복원됐다.
하지만 오래전 흑백 영화여서 4K 타이틀의 진가를 눈으로 확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오래전 국내 출시된 DVD 타이틀과 비교하면 화질이 월등 좋다.
음향은 70주년 기념판과 동일한 DTS HD MA 모노를 지원한다.

실망스러운 것은 부록이다.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Roger Ebert)의 해설과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의 해설, 인터뷰 등이 들어 있는데 인터뷰를 제외하고 한글자막이 들어있지 않다.

예전 리스비전에서 국내 출시한 3장짜리 DVD 타이틀은 구성이 훌륭했다.
특히 부록이 뛰어났다.

로저 에버트의 해설과 작품 제작에 얽힌 2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 작품 제작기를 다룬 영화 'RKO 281'등이 수록됐으며 모두 한글자막을 지원한다.
DVD 타이틀의 부록 가운데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 로저 에버트의 음성해설이다.

그는 이 작품의 A부터 Z까지 친절하고 세세하게 설명을 해줘서 훌륭한 강의를 듣는 것 같다.
아울러 허스트와 웰즈의 대결을 다룬 2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 또한 이 작품에 얽힌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볼 만하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음악 미술 글쓰기 연설 심지어 마술까지 다방면에 소질 있던 오손 웰즈는 라디오 드라마 '우주전쟁' 등으로 큰 명성을 얻어 영화계에 진출했다. 당시 제작사 RKO라디오 픽처스는 웰즈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는 파격적 계약을 맺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
공포물처럼 음산하게 등장하는 케인의 성은 실제 허스트가 캘리포니아 로드아일랜드에 갖고 있던 성 '제너두'를 모델로 했다. 로드아일랜드의 절반 크기였던 허스트의 거대한 성에는 코끼리 사자 호랑이 등 온갖 동물을 가둔 동물원도 있었다. 영화 속 멀리 보이는 성은 그림이다.
초반 빠르게 지나가는 기록영상은 1940년대 미국 극장에서 영화 시작 전 상영한 '타임뉴스'를&amp;nbsp; 흉내 낸 &amp;nbsp;것. 우리의 '대한뉴스'같은 기록물로, 허스트가 벌였던 일들을 담았다. 편집자는 기록물이 오래된 것처럼 보이도록 필름을 바닥에 질질 끌고 다녀 일부러 세로 줄무늬 등 손상 흔적을 남겼다.
웰즈가 연기한 케인을 인터뷰하는 리포터로 나온 사람이 바로 뛰어난 촬영감독 그레그 톨랜드다. 웰즈의 아이디어를 뒷받침한 딥 포커스, 이중 조명 등 획기적 촬영이 톨랜드의 아이디어다. 당시 유명 촬영감독이던 그는 먼저 웰즈를 찾아가 영화를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이 영화로 유명해진 딥 포커스. 전경과 후경에 골고루 초점이 맞는 딥 포커스는 그레그 톨랜드가 이전 작품에서 실험한 뒤 이 작품에 본격 사용했다. 딥 포커스 촬영을 하려면 많은 빛이 필요해 엄청난 조명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톨랜드는 군대용 특수조명을 개조해 2중 아크 조명을 만들었다.
이 장면의 카메라 움직임이 환상적이다. 창가에서 뒤로 물러나는 카메라는 테이블을 관통해 인물들을 잡는다. 웰즈는 카메라가 테이블을 관통하도록 테이블을 자르고 카메라가 지나간 뒤 잽싸게 붙였다. 덕분에 신비로운 카메라 움직임이 가능했다. 이 영화에 쓰인 많은 가구들이 카메라가 지나갈 수 있도록 분리 가능하게 제작됐다.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기억과 꿈이 담긴 썰매. 로즈버드의 열쇠를 푸는 중요한 도구다. 실제로 로즈버드라는 말은 허스트가 그의 정부(情婦) 메리온 데이비스와 단 둘이 있을 때 메리온을 부르던 애칭이다. 극본을 쓴 메리온의 인척 허먼 멘케비츠가 이 얘기를 우연히 듣고 작품에 인용했다. 썰매는 2개가 제작됐으며 나머지 하나는 1982년 경매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6만여 달러에 팔렸다.
딥 포커스와 원근법을 이용한 영상. 가까이 있던 거대한 웰즈가 창가로 걸어가며 작아지는 모습을 통해 말년의 초라한 웰즈를 표현했다.
원래 이 장면은 케인이 기자들을 데리고 사창가를 가는 장면이었으나 삭제하고 무희들과 어울리는 장면으로 바꿨다.
사진이 실사로 바뀌는 환상적인 장면. 지금은 많이 쓰이지만 그때는 프레임을 정교하게 이어 붙이는 방법으로 구현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10여 개 언론사를 거느린 미국의 언론 황제였다. 허스트가 이 작품을 보고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고 화를 내자 웰즈는 케인의 모델이 허스트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연설 장면의 군중은 모두 미니어처다. 조명을 깜빡이는 방법을 활용해 마치 군중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웰즈는 허스트와 자신의 과거를 섞어 케인을 만들었다. 웰즈는 6세 때 부모가 이혼했고 8세 때 어머니가 사망했다. 15세 때 아버지가 죽고나서 후계자인 번스타인 밑에서 자랐다. 영화 속 케인의 성장 사에는 웰즈의 경험이 녹아있다.
딥 포커스와 더불어 유명한 로우앵글의 낮은 천장 장면. 당시 영화들은 조명과 마이크 설치를 이유로 천장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웰즈는 천장을 낮춘 뒤 천장 위에 마이크를 설치하고 조명을 밑에서 비추는 방법으로 획기적 앵글을 선보였다. 극단적 로우앵글을 위해 웰즈는 바닥을 파낸 뒤 카메라를 설치했다.
술 취한 케인의 친구 로랜드가 칼럼을 펑크 내 해고되는 장면은 이 작품의 작가인 허먼 멘케비츠의 &amp;nbsp;실화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였던 멘케비츠는 술 취해 잠들었다가 칼럼을 펑크 냈고, 그를 싫어한 허스트에게 해고당했다.
케인과 로랜드가 대화하는 장면은 각각 따로 찍어 합성했다. 그런데도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출연진은 대부분 웰즈가 만든 머큐리 라디오 극단 배우들인데, 유일한 외부인이 케인의 정부(情婦) 수잔을 연기한 도로시 커밍고어다. 웰즈는 찰리 채플린이 발탁한 도로시를 기용했다.
케인의 정부 수잔은 허스트의 정부 메리온 데비이스가 모델이다. 채플린의 자서전이나 여러 사람의 증언을 보면 메리온은 웰즈가 이 작품에서 표현한 것처럼 무능한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었다. 미인이며 쾌활했던 그는 여러 재능이 많았으나 허스트 때문에 제대로 표출하지 못했다.
느닷없이 눈이 뻥 뚫린 앵무새가 나오는 장면은 편집 실수로 들어간 옥에 티다.
거울을 이용해 케인을 여러 명으로 표현한 장면도 인상적. 허스트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을 불러들여 이 작품의 필름을 모두 수거해 태우도록 종용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무수한 케인의 수집품들은 어떤 한 가지로 한 인간을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허스트는 1951년 사망했으며, 말년이 불운했던 천재 웰즈는 1985년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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