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추천 DVD / 블루레이

악어

울프팩 2015. 1. 16. 23:29

1996년, 우연히 비디오가게에서 독특한 표지에 끌려 집어든 비디오 테이프 '악어'(1996년)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신선하면서도 놀라운 이야기, 특이한 영상과 캐릭터를 보여준 그 작품은 김기덕이라는 감독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우선 김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가 시선을 끈 것은 머구리라는 독특한 소재였다.

머구리란, 잠수부를 뜻하는 옛말이다.

 

단순히 물 속에 들어가 일하는 잠수부가 아니라 물 밑바닥까지 내려가 난파선 인양이나 시신을 건져내는 궂은 일을 한다.

김 감독이 '악어'에서 그린 머구리는 그 중에서도 시체 인양을 전문으로 한다.

 

한강다리에서 투신한 사람들의 시신을 뒤져 금품을 가로채거나 유족들에게 돈을 받고 시신을 건져 올린다.

그야말로 험하디 험한 삶을 사는 주인공 앞에 한 여인이 투신하며 야만적인 그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소재와 더불어 이 작품을 빛낸 매력은 위악적인 캐릭터다.

조재현이 맡은 주인공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상대에게 상스러운 욕지거리와 주먹질을 거침없이 해대는 난폭한 인물이다.

 

특히 김 감독 작품에서 여지없이 되풀이되는 여성에 대한 가혹한 폭력은 섬뜩할 정도다.

오죽했으면 어떤 영화평론가는 이 작품을 '강간 영화'라고 평했다.

 

어쩌면 영화 속 등장인물의 거침없는 폭력과 야만적 삶 속에 김 감독 개인의 체험도 녹아있을 테고, 수 많은 사람들의 가려진 본성이 내재돼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불편하면서도 시선을 잡아 끄는 힘이 있다.

 

여기에는 배우의 연기와 미술도 톡톡히 한 몫을 했다.

광기에 젖어 번들거리는 조재현의 연기는 감독의 의도를 충실히 표현했다.

 

더불어 한강다리 밑부터 수중 풍경까지 모든 것을 직접 설계하고 만든 김 감독의 미술 솜씨 또한 놀랍다.

이 작품의 인상이 어찌나 강렬했던 지, 이후 김 감독 영화는 극장이나 비디오테이프로 열심히 찾아보게 만들었다.

 

그때마다 매번 김 감독은 강렬한 충격으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 충격의 시작은 '악어'였다.

 

16 대 9 레터박스 포맷의 DVD는 DVD 타이틀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화질이 형편 없다.

비디오테이프 중에서도 닳고 닳은 테이프를 소스로 삼은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만큼 영상이 뭉개진다.

 

당연히 색상도 번져서 제 색깔이 안나오고 암부 디테일은 완전히 묻혀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스테레오 음향은 더 심각하다.

 

잡음이 너무 많아 대사가 빈번하게 묻힌다.

한글 자막이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그마저 없으니 여러 모로 불편하다.

 

부록도 전무하다.

한마디로, 작품 값에 비해 너무 떨어지는 타이틀이다.

 

훌륭한 영화인데도 영상과 음향이 조악해 빛이 바랜 느낌이어서 안타깝다.

좋은 화질의 영상으로 다시 복원돼 블루레이로 나왔으면 좋겠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김 감독은 제 1 한강대교를 건너다가 자살하거나 자살을 포기한 사람들이 남긴 유서같은 낙서를 보고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김 감독은 시체를 건져 살아가는 머구리에 대한 자료를 모았고, 마침 다리 밑에서 부랑자들이 여자를 집단으로 강간해 살해한 사건이 터져 이를 영화에 접목하기도 했다. 

주인공은 어린애와 노인이 있는 옆에서 여인을 난폭하게 범한다. 김 감독이 각본도 쓰고 연출, 미술까지 겸한 이 작품의 처음 제목은 '한강'이었다. 

주인공 역은 처음에 최재성이 맡으려고 했으나 출연료를 선불로 요구해 무산됐고, 박상민도 5,000만원의 개런티를 불러 불발됐다. 결국 조재현이 맡게 됐는데, 당시 그는 방송국 카메라기자였던 형이 사고로 죽은 직후여서 일부러 악독한 역을 맡아 슬픔을 잊으려고 했다. 

영화 현장이나 연출부 경험이 전혀 없던 김 감독은 이 작품을 찍으면서 영화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됐다. 조재현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술과 담배를 전혀 못하는 김 감독을 데리고 다니며 술을 가르쳤단다. 

김 감독은 제작자에게 매를 맞기도 했다. 오전 8시에 촬영하기로 해서 제작자와 스태프가 미리 나와 기다렸는데, 김 감독은 수중 촬영 장소를 알아보고 오느라 낮 12시에 나타났다. 화가 난 제작자는 스태프들이 보는 앞에서 김 감독을 때렸다. 김 감독은 눈물을 펑펑 훌리면서도 김밥을 먹고 영화를 찍었다. 

여주인공을 맡은 우윤경. 인하공전 비서학과 출신인 그는 SBS 4기 공채 탤런트 출신이다. 드라마 '장희빈'에도 출연했고 아시아나항공 CF를 찍기도 했다. 특이하게도 중학교때 사격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김 감독은 20미터 한강다리 교각에 직접 색칠을 하고 그림을 그렸으며, 수중세트도 직접 만들었다. 

촬영 중 제작사가 세 번이나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김 감독은 "해병대 제대 후 그냥 맞는게 이기는 거라고 믿어 싸움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누군가에게 화가나면 주체할 수 없는 살의로 두 번인가 사람을 죽일 뻔 하기도 했다. 직접 만든 권총을 한동안 갖고 다닐 만큼 그의 젊은 날은 분노로 가득했다. 

수중 풍경은 올림픽 수영장의 5미터 풀을 빌려서 바닥에 모래를 깐 뒤 수중 세트를 만들어 촬영했다. 한강다리 촬영 당시 3명이 투신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 중 1명은 죽었고 2명은 구조됐다.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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