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 맥캐리 감독의 '어페어 투 리멤버'(An Affair To Remember, 1957년)는 미국인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가장 사랑받는 순애보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두 번이나 리메이크됐고 아예 이 작품에 대한 오마주로 제작된 영화가 있다는 점만 봐도 이 영화가 미국인들, 그것도 미국 여성들 사이에 얼마나 인기 있는 작품인지 가늠할 수 있다.
원래 이 작품은 맥캐리 감독이 1939년에 아이린 던과 찰스 보이어를 주연배우로 삼아 '러브 어페어'라는 제목으로 처음 만들었다.
워낙 이 작품에 애착을 갖고 있었던 그는 이 작품을 제목을 바꿔 다시 만들었다.
제목을 바꾼 이유는 원제목이 상표 등록된 바람에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우연히 유럽행 유람선에서 만난 두 남녀가 사랑이 싹트는 이야기다.
서로 애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두 남녀는 끌렸고 급기야 선상 여행이 끝날 무렵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약속 장소로 달려가던 여인은 교통사고를 당해 가지 못하고 애타게 여인을 기다리던 남성은 버림받았다고 생각해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두 사람은 본의 아니게 이별을 해서 각자 연인과 만나면서도 항상 마음 한편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리워한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고 뒤늦게 사랑을 다시 꿈꾸게 된다.
언뜻 보기에도 여성들의 눈물 콧물을 빼기 좋은 달달하면서도 가슴 시린 순애보다.
그래서 처음 작품이 등장한 1939년에도 인기를 끌었는데, 1957년에 다시 만든 리메이크작은 오히려 원작보다 더 큰 인기를 끌었다.
비결은 주연을 맡은 남녀 배우인 캐리 그랜트와 데보라 카 덕분이다.
매력적인 선남선녀인 두 사람이 스크린에서 보여준 호흡이 완벽해 보는 사람이 절로 빠져들게 만들었기 때문.
여러 작품에서 온화한 미소와 유머러스한 면을 동시에 보여준 캐리 그랜트는 이 작품에서도 여성을 배려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능청스러운 신사 연기를 똑 떨어지게 소화했다.
우아하면서도 따뜻해 보이는 데보라 카 역시 남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매력적인 여성 역할에 잘 어울렸다.
여기에 영화 뒤에서 벌어진 두 배우의 실제 스캔들 때문에 영화는 개봉 당시보다 오히려 훗날 더 주목을 받았다.
당시 캐리 그랜트는 부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의 글래머 스타인 소피아 로렌과 염문을 뿌렸다.
캐리 그랜트는 이혼을 해서라도 소피아 로렌과 맺어지기를 바랐으나 정작 소피아 로렌 쪽에서 사랑이 식어 제작자인 카를로 폰티와 결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리 그랜트는 소피아 로렌을 오랫동안 잊지 못해 힘들어했고 나중에 가장 뜨거웠던 사랑의 상대로 소피아 로렌을 꼽았다.
캐리 그랜트의 이 같은 상황은 영화 속 남자 주인공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데보라 카도 마찬가지.
당시 결혼 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데보라 카도 우연히 만난 시나리오 작가 피터 비어텔과 사랑에 빠져 오랜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훗날 재혼했다.
결국 영화가 다룬 혼외정사라는 사연이 두 배우의 스캔들과 겹쳐 보는 사람들의 상상을 더욱 자극한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인물에 초점을 맞춘 타이트한 영상과 완급 조절을 잘한 구성으로 드라마에 빠져 들게 만든 맥캐리 감독의 연출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TV 드라마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배우들의 대사, 반전을 거듭한 구성만으로 보는 사람이 결코 화면 앞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그만큼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 그의 연출력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순애보적인 스토리는 지금도 미국 여성들 사이에 화제다.
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노라 애프론 감독의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을 연기한 멕 라이언은 극 중 '어페어 투 리멤버'를 보고 눈물을 쏟으며 순애보의 주인공이 되기를 꿈꾼다.
여주인공은 영화처럼 달달한 로맨스 가이인 톰 행크스를 만나고 두 사람은 훗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재회하기를 약속한다.
막판 재회 장면은 영락없이 '어페어 투 리멤버'의 판박이다.
그만큼 노라 애프론 감독은 '어페어 투 리멤버'에 대한 미국 여성들의 애정을 알기에 존경과 사랑을 담은 오마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글렌 고든 카슨 감독도 마찬가지.
그는 1939년 원작의 제목을 그대로 따서 1994년에 리메이크작을 만들었다.
이 작품의 주연은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이 맡았다.
그러나 원작은 물론이고 '어페어 투 리멤버' 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세월의 흔적이 많이 보이는 화질이다.
지글거림이 두드러지고 윤곽선도 두터운 편.
그나마 필름 손상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점이 다행이다.
음향은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지만 서라운드 효과는 미미하다.
부록으로 음성해설, 데보라 카와 캐리 그랜트, 맥캐리 감독에 대한 회상, 제작자 제리 월드에 대한 회상과 영화의 특징, 할리우드 뒷얘기와 선상 시사회 등 재미있고 다양한 내용이 풍성하게 들어 있다.
음성해설을 제외하고 모두 한글 자막을 지원한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초반 벌어지는 중요한 에피소드는 미국에서 유럽을 향하는 유람선을 무대로 하고 있다. 선상 경험을 위해 실제 유럽행 유람선까지 탔던 캐리 그랜트는 촬영 또한 유람선에서 하기를 원했으나 맥캐리 감독이 선상 장면을 스튜디오에서 세트 촬영하는 바람에 의견 충돌을 빚었다.
본명이 아치볼드 리치인 캐리 그랜트는 영국 런던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배우가 됐다. 여성 편력이 심해 촬영 당시 세 번째 결혼을 한 그는 아내인 배우 베치 드레이크와 불화를 겪었다.
데보라 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파일럿으로 활약한 전쟁 영웅 앤서니 바틀리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촬영 당시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아 어려움을 겪던 중 이혼한 시나리오 작가 피터 비어텔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훗날 재혼해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
리오 맥캐리 감독은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무려 36회나 올라 3회 수상했다. 그는 UCLA 법대를 나와 변호사가 됐으나 재능이 없어 한 번도 승소하지 못해 친구 권유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리오 맥캐리 감독은 스크루볼 코미디에 강한 장점을 보였다. 할리우드의 유명한 뚱뚱이와 홀쭉이 콤비를 비롯해 막스 형제들의 히트 영화도 그가 만들었다.
비용을 아끼려던 제작사는 유럽 장면도 스튜디오에서 찍었다. 맥캐리 감독도 현지 촬영보다 통제가 쉬운 스튜디오 촬영을 원했다. 그 바람에 현지 촬영을 원한 캐리 그랜트는 제작사와 감독에게 화가 나 촬영 내내 자주 부닥쳤다.
극 중 가수로 나온 데보라 카가 부른 노래는 가수 마니 닉슨이 대신 불렀다. 마니는 영화 '왕과 나'에서도 데보라 카의 노래를 대신했다.
멀리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인다. 원경 또한 사진이다. 맥캐리 감독은 뉴욕 장면을 샌프란시스코로 장소를 바꿨다가 캐리 그랜트의 강한 반발 때문에 다시 뉴욕으로 고쳤다.
이 영화는 극 중 외관이 잠깐 나오는 유람선 컨스티튜선호가 뉴욕에 정박했을 때 선상 시사회를 했다.
데보라 카는 파킨슨씨병에 걸려 사망했다. 그는 복용하던 파킨슨씨병 치료제가 운동 장애를 유발해 말년에 잘 걷지 못했다.
캐리 그랜트가 소피아 로렌을 잊지 못해 너무 힘들어하자 부인 배치 드레이크의 제의로 신약을 복용하는 실험적 심리치료를 받았다. 캐리 그랜트는 신약 복용 후 마음의 안정을 찾는 등 매우 만족했다. 그가 100회가량 치료받으며 복용한 신약은 바로 요즘 마약으로 분류되는 환각제 LSD다.
제작자 제리 월드는 여주인공으로 잉그리드 버그만을 섭외했으나 그가 고사하는 바람에 데보라 카가 맡게 됐다.
맥캐리 감독은 이 작품 촬영 전까지 5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아 촬영 당시 자신감이 결여돼 있었고 건강도 악화돼 몹시 힘들어했다. 개봉 후 이듬해 맥캐리 감독은 자동차 사고로 죽을 뻔 한 뒤 알코올 중독에 빠져 고생하다가 1969년 폐기종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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