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추천 DVD / 블루레이

올드보이(블루레이)

울프팩 2022. 1. 10. 00:47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에 빛나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2003년 나온 영화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음악, 연출, 연기, 영상 등 모든 것이 너무나도 훌륭했던 작품이다.

특히 설정이 기가 막혔다.
15년을 갇혀있다가 풀려난 오대수(최민식)의 복수극인 줄 알았으나 실상은 이우진(유지태)이 그린 더 큰 복수극이라는, 상자를 덮는 또 다른 상자 같은 설정부터 막판 충격적인 반전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내러티브를 갖춘 작품이다.

원작은 일본의 츠치야 가론이 그린 만화이지만 주인공이 오랜 시간 갇혀있다가 풀려난 것 외에 나머지는 새로운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르다.
박 감독은 이 작품에 신화적 요소를 많이 가미했다.

금기시된 관계 때문에 빚어지는 비극과 이로 인한 파국은 고대 비극적 신화에 흔히 등장하는 소재들이다.
하지만 이를 다양한 복선과 인물들 간에 얽히고설킨 관계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내 진부하지 않게 만들었다.

충격적인 소재 만큼이나 영상도 뛰어나다.
정정훈 촬영 감독이 카메라를 잡은 영상은 초반 아파트 옥상에서 시작되는 장면과 사설 감옥, 펜트하우스에서 자연스럽게 댐으로 넘어가는 장면 등 인상적인 부분이 많다.

특히 사설 감옥에서 최민식이 혼자서 망치를 들고 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길게 원테이크로 끌고 간 액션 장면이 압권이다.
날 것 그대로의 박력 넘치는 액션이 쉼 없이 이어지는 이 장면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만큼 긴장감이 폭풍처럼 몰아친다.
소재와 주제도 파격적이지만 다채로운 영상과 혼신을 다한 배우들의 연기, 어느 장면 하나 버릴 것 없이 깔끔하게 구성한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음악까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걸작이다.

그야말로 박 감독의 최고 작품으로 꼽을 만 하다.
이 작품의 블루레이는 여러 가지다.

미국의 타탄에서 내놓은 해외 판본이 있고, 국내 플레인에서 개봉 10주년을 맞아 출시한 완전판이 있다.
플레인 판본은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것과 부록을 늘려 3장으로 구성된 것 등 두 가지다.

플레인 타이틀은 마스터 포지티브 필름을 디지털 리마스터링해 잡티 등을 제거하고 콘트라스트와 색감 등을 박 감독 의도대로 최대한 살렸다.
과거 국내 출시됐던 FE판 DVD 타이틀이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에서 텔레시네한 영상을 보정해 담았지만 색감이 뜨고 콘트라스트가 무너지는 한계가 있는데, 블루레이는 마스터 포지티브 필름을 소스로 사용하고도 이런 점들을 확연하게 개선했다.

오리지널 네가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필름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다.

영화 '친구'처럼 당시 유행했던 블리치 바이 패스라는 현상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필름에 묻은 은 입자가 두드러지면서 그레인 또한 강조된 영상이다.
특히 어두운 장면에서 필름의 거친 입자감이 더 강조된다.

전체적으로 녹색 기운이 강조된 색감이 잘 살아있고, 콘트라스트도 비교적 자연스럽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적당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DVD 타이틀처럼 극장에서 묻혔던 초반 대사를 잘 살려냈다.
부록으로 감독과 배우들, 평론가 등이 참여한 6종의 음성 해설이 들어 있고 제작과정, 인터뷰, 삭제 장면, 프리 프로덕션과 미술 및 시각효과, 음악에 대한 설명, 칸영화제 영상, 박 감독의 단편 '심판' 등 다양한 내용이 들어 있다.

이 중에서 박 감독과 정정훈 촬영감독의 해설은 영화 제작에 관심 많은 사람이라면 알찬 내용이 많아 꼭 들어볼 만하다.
무엇보다 블루레이를 위해 새로 제작한 부록인 다큐멘터리 '올드 데이즈'가 훌륭하다.

감독과 배우들, 제작진이 촬영 현장을 둘러보며 제작 당시를 회고하는 내용인데 보고 들을 만한 소재들로 가득하다.
플레인은 훌륭하게도 두 번째 부록 디스크에도 한글 자막을 실었다.

그만큼 플레인의 정성과 노력을 느낄 수 있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초반부터 역광을 이용해 인물을 강조한 영상으로 강렬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블리치 바이 패스 기법을 이용해 전체적으로 은은한 질감을 살렸다. 블리치 바이 패스란 필름 현상 시 은입자를 씻어내는 표백 과정을 건너뛰는 방법으로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의 폭이 커져 콘트라스트가 강조된다. 박 감독은 처음에 너무 흔한 블리치 바이 패스를 반대했으나 약하게 하겠다는 정정훈 촬영감독의 의견을 채택했다.
라이트에 그린을 많이 얹어 전체적으로 녹색 기조가 강하다.
1년에 한 땀씩 손에 문신을 새기는 장면은 처음에 모형 손을 사용했으나 살이 밀리는 장면을 재현할 수 없어 최민식이 직접 연기했다.
최민식이 가방에서 나오는 장면은 서울 광나루 고수부지에서 촬영.
박 감독은 원작을 뛰어넘으려면 "왜 가뒀는지가 아니라 왜 풀어줬는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네 불량배들과 싸우는 장면은 부산대역 근처에서 촬영. 이 장면은 개각도 변환과 속도 변화를 같이 주는 RCU라는 장치를 카메라에 부착해 촬영. 이를 이용하면 한 테이크 내에서 빨라졌다가 느려지는 등 속도를 바꿀 수 있다.
부산 온천동의 일식집 고젠에서 촬영한 장면. 강혜정의 옷은 스페인의 명품 브랜드다. 얹은머리는 가발. 작고한 미국의 유명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산낙지 먹는 장면을 동물 학대라고 비난했다.
개미의 더듬이는 나무로 깎아 만든 실물. 여기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털을 그려 넣었다.
만두 파동 때 최대 피해자는 오대수라는 농담이 돌 정도로 유명했던 군만두 장면. 원작자 츠치야 가론은 10년간 감금당한 사람에게 체력 유지를 위해 가장 좋은 음식이 만두라고 생각했다. 이 장면의 얼굴과 손은 따로 찍어 CG로 합성했다.
용이 감독이 중국집 배달부로 카메오 출연.
분장사가 최민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갈기머리를 제안. 쿠킹호일로 일일이 머리카락을 말아서 3시간 동안 분장하는 호일 펌이라는 방법을 썼다.
생이빨을 뽑는 끔찍한 장면. 망치는 스티로폼으로 만든 모형이다. 사설 감옥으로 나온 곳은 서울 무교동의 남강빌딩이다.
한 테이크 장면으로 화제가 된 유명한 장도리 액션. 그러나 실제로는 17번 재촬영 했다. 칸 영화제에서 서극 감독이 물었다는 최민식 등에 꽂힌 칼은 CG로 그려 넣은 것. 칸 영화제 시사 때 이 장면 말미에 박수가 터졌다.
'메뚜기 요가'로 불린 장면은 유지태의 다리에 와이어를 묶어 들어 올렸다. 광각렌즈로 천천히 조여들어가는 카메라 움직임이 일품이다.
박 감독은 다른 배우에게 이우진 역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해 유지태에게 맡겼다.
강혜정은 오디션때 근처 일식집에서 횟칼을 빌려와 연기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오대수가 유리창에 날아가 부딪치는 장면은 최민수 대신 스턴트맨 지중현이 연기했다. 그는 머리부터 떨어져 치아가 부러졌다. 훗날 그는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촬영차 중국에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32세 나이에 고인이 됐다.
오대수가 들고 있는 가위는 은으로 만든 소품이다. 펜트하우스로 올라가는 승강기 장면은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촬영.
이 작품에 처음 출연해 주목받은 신인 윤진서. 그는 이 장면 때문에 30분 만에 자전거를 배웠다. 회상 장면인 이 부분은 아날로그 색감을 위해 풀링 과정을 거쳤다. 풀링이란 노출 과다로 촬영해 현상 때 한 스텝 올리는 방법. 콘트라스트와 채도가 약해진다. 고교 장면은 경남 산청에 위치한 송계고(현 경남간호고)에서 촬영.
댐 장면은 합천댐에서 촬영. 유연석이 유지태의 어린 시절을 연기. 초반 아파트 자살남을 오대수가 붙잡는 장면과 막판 댐 장면이 수미쌍관처럼 연결된다.
눈 덮인 막판 장면은 뉴질랜드에서 촬영. 카메라 렌즈 일부와 출연진 의상 가방이 사라져 일부 의상을 현지에서 조달했다.
이 작품은 전국에서 327만명이 관람했고 칸영화제 수상 후 전세계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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