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와이키키 브라더스(블루레이)

울프팩 2018. 10. 17. 00:00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년)는 보고 나면 가슴이 짠한 영화다.

그토록 좋아했던 음악을 위해 노력하는 일행이 현실적인 삶의 장벽에 가로막혀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다뤘다.


나이가 먹고 나서 다시 보니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이 영화를 처음 본 30대 때에는 비록 힘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젊은이들의 패기가 보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다시 보니 결코 패기와 용기만으로 넘기 힘든 생활의 어려움이 보인다.

아마도 2001년이 IMF 이후이기는 하지만 취업이나 경쟁 상황 등 피부로 느끼는 삶의 여건이 지금보다 덜 각박했던 때문인가 보다.


비록 기술이나 물질은 지금이 그때보다 더 발전했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공평하지 않은 탓일 수도 있다.

소위 말하는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더 심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자신의 꿈을 좇는 예술인들에게 그런 차이가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이를 가장 함축적으로 드러낸 것이 고향 친구가 오랜만에 찾아온 밴드 활동을 하는 친구에게 던지는 "너 하고 싶은 일하니 행복하냐"라는 대사다.


이 질문은 비단 영화 속 밴드 멤버들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똑같이 던지는 질문일 수 있다.

영화를 보며 질문을 곱씹자니 더더욱 극 중 인물들의 심정에 공감하는 바가 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영화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 활동을 하지만 소득이 이에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본 소득의 도입이 절실하다.

오스트리아의 사회철학자였던 요제프 포퍼 린케우스는 이를 예견하듯 '일반 보건 요론'이라는 책에서 기본 소득의 도입을 주장하며 "최소한의 여흥도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저소득층을 포함할 누구에게나 예술 활동을 향유할 기본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뜻으로,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예술가들 또한 경제적 생존권을 보장받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새삼 우리 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굳이 이런 무겁고 심각한 메시지를 안고 보지 않더라도 어렵게 사는 3류 밴드의 모습 자체가 애잔하면서도 흥미롭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각각의 캐릭터가 개성을 빛내며 살아 있다.


이를 위해 임 감독은 다양한 음악 활동 종사자를 만나 취재하며 들은 사례들을 풍성하게 에피소드로 녹여냈다.

여기에 황정민 류승범 박원상 오지혜 오광록 등 지금은 한가락하는 배우들이 각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더불어 밴드를 소재로 다룬 작품답게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 송골매의 '세상만사', 조안 제트& 블랙하트의 'I Love R&R', 옥슨80의 '불놀이야', 제이 게일스 밴드의 'Come Back' 등 1970~90년대 유명 대중음악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의 곡들을 배우들이 직접 부른 만큼 이들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무난하다.

초반 화질은 윤곽선도 두껍고 필름 잡티와 플리커링이 보이며 이목구비가 선명하지 않는 등 디테일이 떨어져 실망스럽지만 뒤로 갈수록 안정된다.


비록 중경 원경의 디테일이 떨어지고 바랜듯한 색감은 아쉽지만 윤곽선도 깔끔하고 괜찮은 편이다.

다만 45분 18초 가량 경과한 부분에서 영상이 깨지는 현상이 보였는데, 갖고 있는 블루레이 플레이어의 문제인 지 타이틀 문제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음향은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데,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다.

부록으로 임 감독과 이얼, 황정민의 음성해설, 다양한 예고편, 임 감독의 단편 '우중산책', 배우와 감독 인터뷰 등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 배우와 감독 인터뷰 등 일부 영상은 블루레이 출시를 앞두고 만들어서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초반과 이후 영상은 화질 편차가 있어서 초반 화질이 많이 떨어진다. 주인공을 맡은 이얼은 기타를 칠 줄 몰라서 흉내만 냈다. 오광록도 촬영 당시 색소폰을 불 줄 몰랐다.

합숙 장면은 임 감독이 세트 촬영을 싫어해서 수안보의 오래된 여관에서 찍었다. 오광록은 이 작품이 첫 영화 출연작이다.

박원상은 대학가요제 출신이어서 노래를 잘한다. 그는 1993년 숭실대 밴드 '블루스' 멤버로 참여해 '아무 말도 말아요'라는 노래로 은상을 탔다. 그 해에 배기성, 김동률 등이 나와 상을 받았다.

필름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아주 오래된 영화처럼 색감이 바래서 뿌옇게 보인다. 극 중 가요와 팝 등 30곡 이상이 나오는데 일부는 저작권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단역으로 나온 주진모도 이 작품이 첫 영화 출연작이다.

영화의 주요 무대가 된 수안보의 와이키키 호텔에서 촬영. 원래 이 영화는 개봉 후 2주 만에 종영했으나 팬들의 요구로 씨네코어를 빌려 재상영하면서 역주행하게 됐다.

나훈아 못지않게 밤무대에서 인기를 누린 모창 가수 너훈아가 출연. 그는 2014년에 간암으로 사망했다.

박해일이 주인공의 고교 시절 역할로 출연. 그는 기타를 잘 쳤다. 밴드 멤버로 함께 출연한 배우들도 악기를 다룰 줄 알아 직접 연주했다.

오지혜의 고교 시절 역할로 나온 문혜원은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해 노래를 잘 불렀다. 반주를 해준 여고생 밴드는 실제 경희고의 유겐트라는 밴드다.

임 감독은 연극 '청춘예찬'에 출연한 박해일을 보고 섭외했다. 박해일은 '세상만사' '불놀이야' 'Come Back' 등의 노래를 직접 불렀다.

연포해수욕장의 간이 나이트 장면에 출연한 밴드는 오르가즘 브라더스라는 실제 밴드다. 이들은 나중에 밴드명을 오브라더스로 바꿨다.

연포 해수욕장에서 바닷가 장면을 촬영. 배우들이 실제 누드로 해변을 달렸다.

원래 드러머 역할은 다른 배우가 할 예정이었으나 사정이 생겨 출연하지 못하면서 황정민에게 돌아갔다. 노래를 잘하는 황정민은 이 작품에서 김현식의 '골목길' '사랑 사랑 사랑'을 직접 불렀다.

임 감독은 다른 사람이 쓴 이 작품의 시놉시스를 보고 잘 안될 것아서 영화로 만들지 말라고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감독직을 제의받고 고민하다가 받아들인 뒤 열심히 취재해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오지혜도 노래를 잘해 극 중에서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불렀다. 촬영 당시 그는 임신 중이었다.

밤무대에서 이영자를 흉내 낸 이엉자도 출연. 그의 본명은 정낙송이다.

이얼은 촬영 2개월 전부터 노래 연습을 했으나 음치에 박치여서 결국 김진석이 대신 불렀다. 출연 배우 중 이얼만 다른 사람이 대신 노래했다.

질퍽한 룸살롱 장면 때문에 19금 판정을 받았다. 기타리스트 최훈이 이 작품의 실제 모델이다. 그러나 그는 영화처럼 3류 밴드 멤버가 아니라 국내에서 손꼽히는 기타리스트이다.

당시 류승범은 배우에 대한 확신이 없어 고민을 하던 중 이 작품에 출연해 보고 배우를 계속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그는 '아가씨' 를 맛깔스럽게 부르고 능청스러운 연기로 호평을 받아 배우를 계속하게 됐다.

막판 장면은 장안동 나이트클럽에서 촬영. 임 감독은 원래 이 장면에서 다른 노래를 사용하려고 했으나 오지혜가 즐겨 부르는 노래로 '사랑밖에 난 몰라'를 꼽아서 이를 부르게 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와이키키 브라더스 (1Disc 풀슬립 1000장 넘버링 한정판) : 블루레이
임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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