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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블루레이)

울프팩 2023. 4. 16. 15:33

1985년은 세계 경제 사상 중요한 해였다.

1980년대 초반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던 미국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달러 발행을 축소하는 긴축통화 정책을 폈다.

 

그 바람에 물가를 잡았지만 달러 가치가 올라 심각한 무역 적자가 발생했다.

급기야 제조업이 나가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미국은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로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 G5 재무장관들을 불러 모았다.

 

1985년 플라자 합의가 바꾼 세계 경제

여기서 결정된 것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를 강제로 끌어올린 '플라자 합의'다.

그동안 일본 독일 등이 달러 가치 절상을 틈타 미국에 물건을 팔아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봤으니 이제 미국 물건을 수입하라는 압력이었다.

 

일본 독일이 미국 물건의 수입을 늘리려면 상대적으로 엔화와 마르크화의 가치를 달러보다 올려야 한다.

즉 엔화 가치를 1달러 당 100엔에서 50엔으로 올리면 과거 100엔에 수입하던 물건을 50엔에 수입할 수 있어 수입이 늘어난다.

 

반면 수출은 타격을 입는다.

1달러어치를 팔아 100엔을 벌었는데 이제 50엔 밖에 벌지 못하기 때문이다.

 

플라자합의 이후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개선됐으나 일본은 나중에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르는 암흑기로 접어드는 단초를 맞게 된다.

엔화 가치가 상승한 일본 기업과 개인은 미국과 일본의 부동산을 마구 사들였으나 1990년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부동산 버블을 겪으며 재산이 반토막 났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한국은 플라자 합의의 반사 이익을 봤다.

엔화 가치가 오르자 비싼 일본 제품 대신 상대적으로 화폐가치가 떨어져 값이 싼 한국 제품을 수입하는 바람에 우리 수출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 등 3저 호황으로 한국 경제는 제5공화국 시절 유례없는 고성장을 했다.

즉 정부 정책보다 외부 요인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한국 경제는 4년 연속 대규모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이때 증시도 폭발했다.

한국 기업들이 수출로 돈을 많이 버니 주가가 뛰는 것은 당연했다.

 

노태우 정권 때 국민주 갖기 운동까지 겹쳐 1985년 7조 원 규모였던 증시는 1989년 86조 원으로 대폭 뛰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달러 가치 하락으로 수입이 줄고 수출이 늘어 미국 제조업도 다시 살아났다.

덕분에 주식 거래가 활발해져 증시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미국을 강타한 정크 본드 스캔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

1980년대 미국 증권가는 금융당국의 규제가 지금처럼 꼼꼼하지 못해 불법이 판을 쳤다.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불법 주식 거래, 주가 조작과 고의로 기업가치를 떨어뜨려 싸게 인수합병(M&A) 한 뒤 비싸게 팔아먹는 행위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1986년 발생한 정크 본드(Junk Bond) 사건이다.

 

정크 본드란 쓰레기라는 뜻의 정크가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 말 그대로 쓰레기 같은 기업채권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려고 높은 이자를 주는 조건으로 발행한 기업채권이어서 그만큼 부도 위험이 크지만 만기 시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고위험 고수익 상품이다.

 

당시 미국 5위의 투자은행 드렉셀 번햄 램버트의 채권부장이었던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이 정크 본드라는 용어를 만든 장본인이자 정크 본드 스캔들의 주인공이다.

UC버클리와 미국 유명 경영대학원인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와튼스쿨을 나온 똑똑한 인재였던 밀켄은 1969년 드렉셀에 입사했을 때부터 채권에 집중했다.

 

와튼 스쿨의 브레독 히크만 교수가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은 위험하지만 수익률이 다른 채권들보다 높았다는 강의를 새겨들었던 밀켄은 일부러 정크 본드를 사들였다.

그렇지 않아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저신용 기업들은 당연히 밀켄에게 몰렸다.

 

이를 이용해 밀켄은 정크 본드를 사주는 대가로 기업들로부터 내부 정보를 입수해 주식을 사거나 M&A에 관여했다.

드렉셀은 '정크 본드의 황제'로 통하던 밀켄의 활약에 힘입어 사상 유례없는 수익을 올렸다.

 

덩달아 밀켄은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우리 돈으로 1조 원이 넘는 10억 달러 이상의 누적 연봉을 받았다.

1987년 한 해에만 5억5,000만 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밀켄의 연봉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렇게 잘 나갔던 밀켄은 1987년 10월 주가가 대폭락 한 블랙 먼데이로 종말을 맞았다.

 

보스키 데이의 파국

블랙 먼데이 이후 주가 폭락으로 정크 본드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보자 금융당국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밀켄은 블랙 먼데이 이전 1986년 11월 기업 사냥꾼으로 통하던 이반 보스키(Ivan Boesky)가 내부 정보를 이용한 주식 부당 거래로 체포될 때부터 수사 당국의 주목을 받았다.

 

지금도 그가 체포된 날을 '보스키 데이'라고 부를 정도로 커다란 물의를 일으킨 보스키는 기업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산 뒤 M&A 등으로 비싸게 되팔아 막대한 차익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잘 나가는 기업을 비싸게 받으려고 강제로 쪼개 팔아 수많은 직원들을 길거리에 나앉게 하는 등 비정한 짓을 벌였다.

 

보스키는 이런 작업을 밀켄과 주도했다.

검찰에 체포된 보스키는 감형을 대가로 몸에 녹음기를 몰래 붙이고 밀켄을 찾아가 내부자 정보를 완전히 없애겠다는 밀켄의 말을 녹음해 증거로 제출했다.

 

보스키는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밀켄은 1990년 벌금 6억 달러와 1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수사를 맡은 루돌프 줄리아니 연방검찰 검사는 이 공적을 발판 삼아 훗날 뉴욕시장에 당선됐다.

 

잘 나갔던 투자은행 드렉셀도 정크 본드 스캔들로 신용이 추락해 1990년 파산했다.

밀켄은 약 2년가량 옥살이 한 뒤 증권업계 재취업 금지 조건으로 가석방 됐다.

 

지금도 수십 억 달러를 보유해 세계 500대 부자에 드는 밀켄은 출옥 후 전립선 암에 걸려 투병하면서 자선 사업가가 됐다.

그는 5억 달러를 출연해 자선 기금을 만들어 암 치료와 어린이 교육 등에 쓰고 있다.

 

올리버 스톤의 승부수 "쉽게 벌려고 하지 마라"

'플래툰'으로 유명한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감독이 만든 '월스트리트'(Wall Street, 1987)는 바로 밀켄의 정크 본드 스캔들을 모티브로 했다.

내용은 미국 증권거래소가 있는 증권의 상징 월스트리트에서 증권사 직원으로 일하며 성공을 꿈꾸는 버드 폭스(찰리 쉰 Charlie Sheen)가 유명 투자 전문가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라스 Michael Douglas)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폭스는 게코에게 인정받아 성공하려고 아버지(마틴 쉰 Martin Sheen)가 노조원으로 있는 블루스타 항공사의 내부 정보를 빼내 게코에게 전달한다.

덕분에 폭스는 게코와 함께 큰돈을 벌어 맨해튼의 고급 아파트도 사고 미녀(대릴 한나 Daryl Hannah)와 동거한다.

 

하지만 게코는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직원들이 쫓겨나든 말든 블루스타 항공사를 쪼개 파는 음모를 꾸민다.

폭스는 이를 막으려고 주가 조작 등 범죄 사실을 인정해 수사를 받으면서까지 게코와 맞붙는다.

 

스톤 감독이 전문적이고 어려운 금융 스캔들을 영화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월가에서 34년간 증권사 직원으로 일한 아버지 덕분이다.

그는 생전에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증권가 이야기와 당시 인기를 끌던 정크 본드 및 마침 보스키가 체포된 사건을 주목해 이 작품의 대본을 썼다.

 

마이클 더글라스가 연기한 게코는 마이클 밀켄과 이반 보스키를 합친 인물이다.

언제나 사전 조사에 철저한 스톤 감독답게 복잡한 이야기를 치밀하게 구성했다.

 

찰리 쉰과 마이클 더글라스도 배역을 적절하게 소화하며 부귀영화를 쫓는 비정한 캐릭터를 잘 연기했다.

그러나 문제는 배경 사건과 기업 자금 조달의 문제점 등 전문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들 만큼 내용이 어렵다.

 

배우들의 연기는 눈으로 좇을 수 있으나 핵심 사건과 메시지를 머리로 이해하기에는 개봉 당시 정크 본드 스캔들과 보스키 사건이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배경 지식이 있으면 흥미롭게 볼 수도 있지만 따로 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제대로 이야기를 따라가기 힘든 작품이다.

 

즐기려고 보는 영화를 굳이 공부까지 하면서 봐야 하는지 의문이라면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은 작품이다.

다만 이 영화의 메시지를 농축한 "쉽게 벌지 말고 생산적인 일을 하라"는 폭스 아버지의 대사 한마디는 누구나 공감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스톤 감독이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디테일이 떨어지고 샤프니스가 높지 않아 윤곽선이 예리하지 않다.

지글거리는 현상도 두드러진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간헐적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일부 생활 소음이 리어 채널 등에서 들린다.

 

부록으로 스톤 감독의 음성해설, 제작 과정, 월가 증권맨들의 회고, 삭제 장면과 NG 장면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1980년대 뉴욕 증권맨들은 투자자에게 살만한 주식을 적극 권유하기 위해 전화를 거는 것이 일이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플래툰' 이후 다시 찰리 쉰과 호흡을 맞췄다. 감독은 플래툰으로 아카데미상을 탄 뒤 무력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빨리 다음 작품으로 이 영화를 선택했다.
정크 본드 등 채권지식이나 1980년대 미국의 주식 스캔들을 모르면 지루할 수 있다.
스톤 감독은 자유의 여신상을 맨 손으로 도전해 성공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봤다. 지금은 사라진 뉴욕의 쌍둥이 빌딩인 무역센터가 보인다.
마이클 더글라스가 연기한 게코는 "정보없이 주식 사는 것은 위험한 짓"이라며 폭스(찰리 쉰)에게 끊임없이 정보를 가져올 것을 요구한다. 결국 주식은 정보전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좀처럼 촬영허가를 하지 않는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45분간 촬영했다. 실제 장이 한창 열렸을때 찍어서 실제 주식중개인들이 등장한다.
올리버 스톤 감독도 카메오 출연. 감독의 아버지는 34년간 증권사 직원으로 월스트리트에서 일했다. 스톤 감독도 18세때 아버지 친구의 소개로 파리 증권거래소에서 보조로 일한 적이 있다.
이 작품에서 대릴 한나는 그다지 빛나지 않았다. 한나는 창녀처럼 보이는 역할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배우들도 한나의 불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스톤 감독은 "그가 왜 이 역할을 맡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나는 이 역할로 골든라즈베리 최악의 여우조연상에 선정됐다.
'블레이드 런너'에 출연한 숀 영(검은 옷)은 대릴 한나의 역할을 하고 싶어했다.
1980년대 부의 상징이었던 벽돌만한 휴대폰이 나온다. 스톤 감독은 처음에 리처드 기어에게 게코 역할을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이후 마이클 더글라스에게 게코 역할이 돌아갔다. 더글라스는 이 역할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탔다.
영화 초반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르는 'Fly Me To The Moon'이 나온다. 정크 본드 스캔들의 주인공 마이클 밀켄은 매년 정크 본드 관련 컨퍼런스를 열었다. 1,000여명이 몰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끈 행사였는데 이때 프랭크 시나트라가 등장해 45분간 노래를 불렀다. 개봉 당시 국내 관객들은 알 수 없는 내용이어서 스톤 감독이 노래를 사용한 이유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부자지간인 마틴 쉰과 찰리 쉰이 극 중에서도 부자관계로 나온다.
부잣집 장면은 스톤 감독이 누구의 집인지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친구의 집을 빌려 촬영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기자가 감독 인터뷰를 하면서 이 얘기를 쓰는 바람에 친구 관계가 끊어졌다.
마이클 더글라스가 안고 있는 아이는 당시 4세였던 스톤 감독의 아들이다.
연필깎이통처럼 돌리면 초밥용 밥을 뭉쳐주는 기계.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와 스탄 게츠의 'Desafinado', 케니지의 'Midnight Motion' 등이 삽입됐다.
주총장에서 게코가 말한 "욕심은 좋은 것이다. 욕심은 옳은 것이고 동기를 부여한다"라는 대사가 아주 유명하다. 스톤 감독은 각본에도 참여했다.
톰 크루즈는 스톤 감독에게 전화해 찰리 쉰이 연기한 폭스 역할을 원했다. 그러나 감독이 찰리 쉰에게 배역을 약속해 거절하고 대신 '7월4일생' 주인공을 크루즈에게 줬다.
워렌 비티도 게코 역할로 물망에 올랐다. 배우들은 베어스턴스 투자은행에 가서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견학했다. 베어스턴스는 2007년 금융위기때 파산 직전까지 몰려 JP모건체이스가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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