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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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안토니오

울프팩 2017. 1. 18. 21:00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국의 영화계는 새로운 조류가 등장했다.

전후 피폐해진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자는 목적으로 시작된 이 같은 흐름은 프랑스의 누벨바그,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브라질의 시네마노부 등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나타났지만 비슷한 성격이다.

 

공통적으로 나타난 것은 철저한 사실주의다.

서민들의 궁핍한 삶을 조망해 빈부 격차나 사회 문제 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사람들이 자각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쿠바혁명에서 영향을 받은 브라질의 시네마 노부도 마찬가지다.

민중들이 영화를 통해 비참한 처지를 깨닫고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글라우베 로샤 감독의 '죽음의 안토니오'(Antonio Das Mortes, 1969년)는 바로 시네마 노부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내용은 브라질 민담을 통해 전해 내려온 실존 인물인 안토니오라는 총잡이 얘기다.

 

1900년대 초반 부자들에 맞서 캉가세이로라는 도적떼가 등장했다.

총과 칼로 무장한 이들은 부자들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의적처럼 민중들의 추앙을 받았다.

 

하지만 유명한 캉가세이로였던 람피앙이 1938년에 사망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영화는 이들에 초점을 맞춰 부자가 고용한 용병인 안토니오가 캉가세이로의 잔당들을 토벌하는 내용이다.

 

안토니오는 자신의 임무에 성공하지만 오히려 캉가세이로를 돕던 성녀에게 감화돼 지주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다.

로샤 감독은 이를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변형된 서부극 장르로 전체적인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브라질 민중가요와 춤 등이 섞이면서 뮤지컬과 연극적인 요소가 가미됐다.

특히 칼과 칼이 맞부딪치는 싸움 장면이나 총을 맞고 죽는 장면은 연극적으로 과장해 묘사했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아주 촌스럽고 어색하지만 1960년대 브라질 민중의 계몽을 위해 극적 효과를 과장한 점을 감안하고 보면 오히려 이 작품의 독특한 개성으로 보인다.

특히 이 같은 극적 과장 및 춤과 노래의 배합은 반민중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일어서야 한다는 메시지 전달에 효과적으로 쓰였다.

 

그만큼 영화는 선동적이며 도발적이다.

할리우드의 상업 영화같은 재미와 볼거리는 없지만 1960년대 브라질의 변혁을 꿈 꾼 한 예술가의 혼을 고스란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품이다.

 

국내 출시된 DVD 타이틀은 화면비가 16 대 9로 표시됐으나 실제로 재생해 보면 4 대 3 화면비다.

그것도 위아래로 약간 길쭉하게 보인다.

 

화질도 좋지 않아서 디테일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더러 화면이 떨리며 오래된 필름에서 나타나는 세로 줄무늬까지 보인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과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전혀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로샤 감독은 이 작품으로 1969년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사람들의 노래에 맞춰 안토니오의 분홍색 스카프를 물고 칼싸움을 벌이는 안토니오와 캉가세이로. 연극적이면서도 과장된 몸짓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성녀를 연기한 브라질 여배우 로사 마리아 페나. 로샤 감독은 각본도 직접 썼다.

1938년생인 로샤 감독은 1981년 폐질환으로 43세 나이에 사망했다.

배우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옛날 영화에서는 금기시된 영화문법이다.

로샤 감독은 캉가세이로를 마치 예수처럼 묘사했다. 극적인 죽음과 이를 통해 현실을 깨닫게 되는 민중들, 그런 민중들의 분노를 통해 부활하듯 캉가세이로의 정신이 다시 계승된다.

"저 병균들을 끝장내라" 민중들을 병균에 비유한 지주의 외침은 역설적으로 안토니오나 캉가세이로의 메시지 못지 않게 도발적이고 선동적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배운 로샤 감독은 첫 천연색 장편영화인 이 작품을 찍은 뒤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 정권이 시민권을 제한하자 자이르 등에서 영화를 찍었다. 이후 그는 군사정권이 1970년 추방조치를 내리자 유럽 등지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76년 브라질로 돌아갔다.

유명한 엔딩 장면. 미국 거대자본의 상징인 쉘의 입간판이 멀리 보이는 길을 안토니오가 걸어간다. 이는 곧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와 또다른 싸움을 예고하는 상징이다.

꽃이 있는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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