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비추천 DVD / 블루레이

지구 최후의 밤(블루레이)

울프팩 2021. 10. 17. 14:20

중국의 비간 감독이 만든 '지구 최후의 밤'(地球最后的夜晚, 2018년)은 참으로 난해하고 불친절한 영화다.

딱히 이렇다 할 줄거리 없이 전개되는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시도 때도 없이 오갈 뿐 아니라 현실과 꿈속 이야기가 마구 뒤섞여 종잡을 수 없다.

 

현실의 등장인물이 꿈속에도 그대로 등장하며 심지어 탕웨이의 경우 1인 2역을 맡아 서로 다른 존재를 연기하다 보니 더더욱 헷갈린다.

내용은 기억 속 여인 완치원(탕웨이)을 쫓아 과거의 행적을 되짚는 남자 뤄홍우(황각)의 이야기다.

 

기본적인 토대는 그렇지만 실제로 인물들의 인과 관계와 이야기의 맥락을 이해하기 아주 힘들다.

감독은 그저 무의식의 흐름처럼 맥락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길게 롱 테이크로 따라갈 뿐이다.

 

그렇다 보니 감독이 강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딱히 알 수 없다.

술에 취한 듯 흥에 겨워 장면들을 이어 붙인 것인지, 플롯의 파괴를 통해 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려는 것인지 의도를 짐작하기 힘들다.

 

기억에 남는 것은 몽환적인 영상과 아련한 음악뿐이다.

영상도 아름답거나 충격적인 것이 아니라 녹회색조의 어둡고 침침한 조명 속에 마치 물속처럼 가라앉은 그림들이다.

 

특이한 것은 영화의 구성이다.

블루레이에서는 알 수 없지만 이 영화는 1시간이 넘는 시점부터 3D로 전환된다.

 

심지어 영화 제목마저 1시간 11분이 지나서 3D로 바뀐 뒤에 나온다.

특이한 것은 이 작품의 3D는 일반적인 3D 영화와 반대로 구성된 점이다.

 

보통 3D는 화면에서 튀어나와 입체 효과를 노리지만 이 영화는 반대로 화면 속을 향해 거슬러 들어간다.

마치 깊이감을 강조하듯 거슬러 들어가는 독특한 방식의 3D는 보는 사람까지 빨려 들어가며 감상 공간마저 영화의 프레임이 확장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3D 효과를 제대로 느끼기 힘든 방식이어서 굳이 왜 이런 방식을 택했는지 의문이다.

그렇다 보니 이 작품은 국내에서는 3D 부분을 생략한 채 2D로만 개봉했다.

 

유일하게 좋았다고 느낀 것은 음악이다.

아주 좋아하는 가수인 나카지마 미유키의 노래 'アザミ嬢のララバイ'(Azami jo no lullaby)가 여러 군데 등장한다.

 

이 노래는 뤄홍우가 자동차를 고치는 장면과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완치원이 눈물을 흘리며 자몽을 먹는 장면,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에 나온다.

허스키하면서 중성적인 미유키의 보컬과 꿈결처럼 흔들리는 선율이 잘 어울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노래다.

 

의식의 흐름을 좇는 듯한 이 영화는 굳이 줄거리나 사건의 인과 관계를 이해하려 애를 쓸 필요가 없다.

특별한 서사 없이 몽환적 영상과 음악, 분위기로 기억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마치 유럽의 어느 도시 골목을 한가롭게 흐느적거리며 걷는 듯한 작품이다.

유독 길게 느껴지는 2시간 18분의 상영 시간이 끝나고 나면 마치 장자의 호접몽에서 깨어난 듯한 느낌이다.

 

1080p 풀 HD의 1.78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괜찮은 화질이다.

감독의 의도 때문에 전체적으로 영상이 어두운 것이 흠이지만 색감이 적절하게 잘 살아 있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적당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몽환적인 음악이 리어 채널에 배음처럼 깔린다.

 

부록으로 이동진 평론가의 해설, 비간 감독과 배우 황각 인터뷰, 예고편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중국 8세대 영화감독으로 꼽히는 비간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여주인공을 맡은 탕웨이가 1인 2역으로 등장.
이 작품은 중국 개봉 당시 로맨스물로 홍보해 욕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다.
낯선 배우 황각이 주인공 뤄홍우를 연기.
비간 감독은 고향인 카이리(개리)를 배경으로 영화를 촬영. 광산촌인 카이리는 중국 남쪽 구이저우성(귀주성) 내 먀오족(묘족) 자치구에 있다.
감독은 대사를 모두 카이리 사투리로 녹음했다. 시인이기도 한 감독은 사투리가 시적으로 들린다고 생각한다.
탁구 장면에서 황각의 상대역으로 나온 배우는 비간 감독의 동생이다.
영화 속에서 극장에 들어간 뤄홍안이 3D 안경을 쓰는 순간 영화도 3D로 전환된다. 이 작품은 이 장면처럼 화면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 안을 향해 들어가는 방식으로 3D를 구현했다.
주성치 영화를 즐겨 본 비간 감독은 주성치 영화 중 '쿵푸허슬'을 가장 좋아한다.
이 작품은 전반부를 2D, 후반부를 3D로 구성했다. 3D 장면은 드론 촬영과 디지털 합성으로 만들었다. 길게 이어지는 롱테이크는 한 번에 찍은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나눠 찍은 뒤 '1917'처럼 편집 부분을 관객이 모르게 감췄다.
횃불을 든 실비아 창은 손에 기름이 떨어져 화상을 입는 바람에 지문이 손상되면서 대만 공항 입국때 지문 인식이 안돼 어려움을 겪었다.
비간 감독은 특이하다. 중국 감독이면서 야마구치 모모에나 나카지마 미유키 등 일본 배우와 가수를 좋아한다. 또 일본의 '위닝 일레븐' 등 콘솔 게임을 즐긴다.
비간 감독은 대본을 쓰면서 매들린과 주디의 1인2역이 나오는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을 참고했다. 영어 제목 'Long Day's Journey Into Night'은 유진 오닐의 1939년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따왔다.

'비추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더월드 블러드 워(4K)  (0) 2021.11.07
언더월드 라이칸의 반란(4K)  (4) 2021.10.31
캐시트럭(블루레이)  (0) 2021.10.04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블루레이)  (0) 2021.09.13
청설(블루레이)  (4) 2021.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