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첨밀밀 (블루레이)

울프팩 2017. 3. 25. 17:45

진가신 감독의 '첨밀밀'(甛蜜蜜, 1996년)은 홍콩 영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은 영화다.

이전까지 홍콩영화라면 '영웅본색' 같은 홍콩느와르나 '취권' '외팔이' 시리즈 같은 무협물을 우선 떠올렸다.

 

그러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홍콩영화도 잘 만든 드라마로 승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1986년부터 1996년까지 10년 동안 홍콩과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일을 다룬 이 작품은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을 다뤘다.

 

개방화 물결이 밀려든 중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홍콩으로 건너간 남자가 우연히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남자에게는 중국 본토에 결혼을 약속한 여인이 있고, 홍콩서 만난 또다른 여인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결코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둘의 사랑은 화선지에 스며든 물처럼 조용이 번져간다.

진가신 감독은 이 과정을 과장이나 격정적으로 그리지 않고 잔잔하며 차분한 영상으로 담아 냈다.

 

여기에 한 몫하는 것은 제목이 말해주듯 등려군의 노래다.

시작과 끝을 비롯해 주요한 분기점마다 등려군의 노래가 마치 내레이션처럼 흐른다.

 

등려군 또한 맥도날드 햄버거처럼 중국 사람들에게는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세상이요,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1980년대 중국 정부는 대만가수인 등려군의 노래를 금지했지만 중국 사람들은 불법복제 테이프를 통해 꿀처럼 달콤한 그의 목소리에 취했다.

 

영화 속에서 등려군이 부른 '꿀처럼 달콤하다'는 뜻의 노래 '첨밀밀'은 주인공(여명)이 취했던 자본주의의 맛이면서 홍콩서 만난 여인(장만옥)과 나눈 사랑의 밀어이기도 하다.

꿈처럼 흐르는 그의 노래가 때로는 달콤하게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아프게 들리기도 하는 것은 영상과 기가 막히게 연결한 진가신 감독의 연출 솜씨 덕분이다.

 

힘을 뺀 감독의 연출만큼이나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도 좋았다.

더불어 연가(戀歌) 사이로 개방화의 물결에 부평초처럼 휩쓸린 1980년대 중국 사람들의 불안한 정서를 잘 녹여낸 진 감독의 연출과 구성력은 다시 한 번 칭찬할 만 하다.

 

1080p 풀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괜찮은 화질이다.

윤곽선이 예리하거나 디테일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입자감이 느껴지는 영상이 오히려 영화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져 1990년대 필름 영화를 보는 흥취를 자아낸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배경음악이 리어에서 흘러 나오는 등 각 채널을 잘 활용해 적절한 서라운드 사운드를 들려준다.

부록이 전혀 없는 점이 아쉽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초반 흑백 화면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엔딩 흑백화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만큼 전체 구성이 좋다.
진가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인연과 믿음이다.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믿기 힘들만큼 질긴 인연의 끈이 홍콩과 뉴욕, 1980년대와 90년대의 시공간을 넘나든다.
영화 제목 '첨밀밀'은 등려군((鄧麗君, Teresa Teng)이 부른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대만에서 태어난 등려군은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등지에서 활동했다. 특히 일본에서 활동할 때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번안해 불러 유명하다.
촬영은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주로 찍은 크리스토퍼 도일과 마초성이 함께 했다.
주연을 맡은 여명과 장만옥.
중국 정부는 1980년대 등려군의 노래를 중국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등려군이 대만 출신이고 일본에서 활동한 점 등이 문제였다. 등려군은 나중에 천안문 사태 때 중국의 강경진압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했다.
양공여(왼쪽에서 두번째)가 여명의 아내, 증지위가 장만옥의 뒤를 봐주는 갱단원으로 나온다. 양공여는 '중화영웅' '풍운' 등에도 출연했다.
촬영 감독인 크리스토퍼 도일이 태국 출신 창녀와 사랑에 빠지는 영어 선생으로 등장.
등려군의 싸인을 받고 돌아서 가던 여명이 다시 돌아와 장만옥과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서정적인 부감샷으로 촬영. 이때 흐르는 노래가 등려군의 '再見, 我的愛人'이다.
등려군은 1995년 5월 태국 치앙마이의 메이핀호텔에서 천식 발작으로 42세에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은 국장에 버금갈 만큼 성대하게 치러졌고 아시아에서 3만여명의 팬이 참석했다.
등려군과 함께 영화에 등장하는 또다른 스타는 윌리엄 홀든이다. 그는 '모정'을 찍기 위해 홍콩에 들렀다가 주인공의 고모와 사랑을 나누었다는 설정이다. 그 역시 등려군의 노래처럼 달콤한 사랑의 추억을 상징한다.
1990년대로 접어들어 영화는 뉴욕으로 건너 뛴다. 진가신 감독의 또다른 영화로는 '무협' '명장' 등이 있다.
등려군의 사망 소식과 함께 두 사람이 나오는 장면에 다시 '첨밀밀'이 흐른다. 엔딩에 흐르는 노래는 여명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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