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퐁네프의 연인들(블루레이)

울프팩 2016. 5. 28. 16:31

레오 카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Les Amants Du Pont-Neuf, 1991년)은 파리에 대한 환상을 심어 준 영화다.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는 가운데 연인들은 다리 위를 달리며 왈츠에 맞춰 춤을 추고, 수상 스키로 센 강을 누빌 때 마치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듯 양쪽에서 불꽃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이런 그림들만 보면 파리는 더 할 수 없는 낭만의 도시이며 사랑의 도시이다.

물론 실제 파리에 가보면 사랑스러운 장소지만 영화처럼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곳은 아니다.

 

이는 모두 조작된 이미지다.

이 영화는 이미지에 공을 들인 레오 카락스 감독이 자신이 추구했던 누벨 이마주의 끝물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대중영화와 경계선에 서 있다.

 

레오 카락스는 장 자크 베네, 뤽 베송과 더불어 누벨 이마주를 주도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1980년대 프랑스 영화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누벨 이마주는 새로운 이미지라는 뜻으로 메시지 보다는 빼어난 영상과 화려한 색감, 영상과 소리의 조화를 추구했다.

 

누벨 이마주 감독들은 이 같은 예술적인 이미지로 할리우드의 상업 영화를 극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기는 너무 짧았다.

 

젊은이들이 반기기는 했지만 메시지나 스토리보다 이미지에 치중한 그들의 작품은 누벨바그처럼 시대의 사조가 되지는 못하고 결국 대중영화에 밀려 묻혀 버렸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어찌보면 레오 카락스의 마지막 누벨 이마주를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드니 라방과 줄리엣 비노쉬가 맡은 영화 속 주인공들은 더 할 수 없이 지저분한 파리의 노숙자들이다.

하지만 레오 카락스 감독은 퐁네프 다리에서 기거하는 지저분한 주인공들을 통해 처절하게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그렇게 보일 수 있었던 것은 퐁네프 다리를 단장하고 파리의 밤하늘을 그럴듯 하게 꾸민 이미지의 힘이다.

심지어 연인의 앞길을 막으면서까지 붙잡기 위해 벌이는 파리 지하철 역의 방화 행각까지도 마치 주인공 청년의 불쇼처럼 아름답게 묘사했다.

 

이 같은 영상으로 졸탄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가 장중하게 흐른다.

두 연인의 테마처럼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이 음악은 비장하고 무거운 선율로 영상과 조화를 이뤘다.

 

흔치 않은 이야기도 이야기이지만 레오 카락스 특유의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1080p 풀HD의 16 대 9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오래전 작품이어서 그런지 입자도 거칠고 색감도 탁하다.

DTS 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도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고 치찰음이 귀에 거슬린다.

 

부록은 있으나 마나 한 로빈 인터뷰와 10cm의 '스토커' 뮤직비디오가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화질과 음향은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헤어 누드까지 그대로 등장하는 무삭제 판이라는 점이 반갑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드니 라방이 맡은 알렉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곳은 세바스토폴 거리다.

영화 도입부 및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한 미셀이 첼로 소리를 듣고 옛 연인을 찾아 헤매는 장면, 수상스키 장면 등에 흐르는 음악은 코다이가 헝가리 민요 등을 소재로 1915년에 작곡한 '무반주 첼로 소나타'이다.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퐁네프 다리는 센 강의 다리 가운데 최초의 석조 다리다. 그래서 새로운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셀이 올라타고 총을 쏜 기마상의 주인공은 이 다리를 만든 앙리 4세다.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는 연주하기 힘든 곡으로 유명하다. 5옥타브 이상 올라갈 정도로 음폭이 넓은데 활로 줄을 두드리는 스타카토와 줄을 튕기는 피치카토 등 각종 기교를 총동원해야 한다.

레오 카락스 감독의 예전 인터뷰를 보면 "중요한 것은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빛과 소리와 색채가 어우러진 이미지 그 자체"라는 말이 나온다. 이게 곧 누벨이마주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설명이다.

극 중 퐁네프 다리는 실물크기의 세트다. 파리시청에서 촬영 허가를 내주지 않아 남프랑스 몽펠리에 인근 호수 주변에 길이 100미터, 폭 15미터의 퐁네프 다리와 주변 건물을 실물 크기로 만들었다.

퐁네프 다리 세트는 2만여명이 1년 7개월 동안 제작했다.

촬영은 '나쁜 피' '소년 소녀를 만나다' 등 레오 카락스의 작품들과 '굿 윌 헌팅' '휴먼 스테인' 등을 찍은 장 이브 에스코피어가 맡았다.

마치 불꽃아치처럼 묘사한 지하철 방화 장면. 사랑에 대한 열정과 욕망이 타오르는 듯 하다.

지금은 사라진 콩코르드 광장의 전망차도 등장.

레오 카락스 감독은 16세때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불로뉴 숲의 여인들'을 보고 영화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후 다니던 학교를 그만 두고 독학으로 영화 공부를 한다.

레오 카락스 감독이 영화를 배운 곳은 파리의 시네마테크이다. 그는 이곳에서 거의 매일 수 많은 고전 영화들을 보며 혼자서 영화를 배웠다.

퐁네프의 연인들
레오 까락스, 에디뜨 스콥, 줄리엣 비노쉬, 드니 라방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퐁네프의 연인들 (700장 풀슬립 넘버링 한정판) : 블루레이
예스24 | 애드온2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암살 (블루레이)  (0) 2016.06.04
크리드 (블루레이)  (2) 2016.05.29
엑스맨2 (블루레이)  (2) 2016.05.27
그때 그사람들(블루레이)  (14) 2016.05.25
비밀 (블루레이)  (0) 2016.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