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피아니스트 SE

울프팩 2017. 4. 1. 14:36

지난 3월31일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을 비판하는 희곡이 미국에서 낭독돼 외신에 보도되는 등 화제가 됐다.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Elfriede Jelinek)다.

 

그가 쓴 희곡 '왕도에서: 시민의 왕'은 지난 3월27일 미국 뉴욕의 마틴 E 시걸 극장에서 열린 대본 낭독회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됐다.

내용은 앞을 보지 못하는 돼지 인형 미스 피기가 트럼프의 이상한 행동을 애써 이해하려 드는 이야기다.

 

작가 옐리네크는 트럼프를 "트위터에 갇혀 과거와 미래를 파괴하는 인물"로 비판했다.

그의 희곡을 영어로 번역해 미국에 소개한 기타 호네거는 "트럼프의 당선은 나치의 등장에 비유할 만큼 충격적"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호네거는 옐리네크의 희곡에 나오는 "우리는 이제 왕이 유죄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 우리도 책임이 있다"라는 대사가 트럼프 지지자 뿐 아니라 히틀러를 지지한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들을 향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희곡은 10월 독일에서 연극으로 공연될 예정이다.

작가 옐리네크는 1974년부터 20년간 오스트리아 공산당원으로 활동했으며, 2004년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바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영화로 만든 것이 미카엘 하네케(Michael Haneke) 감독의 '피아니스트'(La Pianiste, 2001년)다.

이 영화는 음악원 여교수 에리카(이자벨 위페르 Isabelle Huppert)와 젊은 제자 월터(브느와 마지멜 Benoit Magimel)사이에 벌어지는 비뚫어진 사랑을 다뤘다.

 

여교수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어머니는 그런 여교수를 여전히 애처럼 강압적으로 다루며 삶을 속박한다.

 

여교수에게 도피처는 섹스숍을 돌며 사람들을 훔쳐보는 등 관음적 행태와 스스로 학대하는 피학적 변태 성욕이다.

당연히 제자와 나누는 사랑이 정상적일 수 없다.

 

처음에 여교수에게 집착하던 젊은 제자도 변태적 사랑에 질려 마음이 돌아선다.

질투와 사랑에 눈이 먼 여교수의 사랑은 처절하다.

 

그는 피아노를 치는 다른 여제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제자와 놀아난다고 생각해 여제자의 호주머니에 깨진 유리컵 조각을 넣고 칼을 품은 채 공연장으로 향하기도 한다.

영화의 내용만 보면 무엇을 말하려는 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난해하다.

 

정작 작가는 오스트리아 예술가들의 전통을 고집하는 빈 음악계에 대한 비판을 자기 파괴적이고 강압적인 두 사람의 사랑으로 표현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오스트리아 음악계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으면 그저 기이하고 괴상한 영화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2001년 제 54회 칸영화제에서 6개 부문 중 그랑프리, 여우주연, 남우주연상 등 3개 부문상을 휩쓸었다.

주최측은 이 작품이 상을 휩쓸자 이후 한 작품이 동시에 남녀 주연상을 받지 못하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칸영화제 시상방침을 바꿀 만큼 평단에서는 이 작품을 획기적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평단은 내면에 폭발적 분노를 감추고 있으면서도 꽉 닫힌 여성을 연기한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와 숨 막힐듯한 긴장감을 음악에 실어 영상을 만든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연출력을 높이 샀다.

 

비록 내용이 어렵고 되풀이해서 보기 힘들 만큼 불편한 작품이지만 위페르의 연기와 하네케 감독의 화면 구성은 눈여겨 볼 만 한 작품이다.

특히 삽입된 클래식 음악들이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암시하는 메타포로 쓰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름다운 선율의 클래식이 이 영화에서 만큼은 고통스럽고 섬뜩하게 들린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윤곽선이 이중으로 보이는 디더링 현상이 나타난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만큼 별도 디스크에 감독과 배우들, 작가의 인터뷰, 칸영화제 영상, 기자간담회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이자벨 위페르는 12년간 피아노 개인교습을 받아 피아노를 잘 친다. 극 중 연주는 모두 직접 했다.

원작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요소를 담고 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원작 소설을 직접 각색했다.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브느와 마지멜. 그는 원래 피아노도 못치고 악보도 볼 줄 몰랐으나 촬영 전 4개월간 강훈련을 통해 극 중 피아노 연주를 직접 했다. 그는 '퐁네프의 다리'에 나온 줄리엣 비노쉬의 남편이다.
주인공을 가두는 굴레 역할을 한 어머니 역은 애니 지라르도가 연기. 원래 하네케 감독은 잔느 모로를 염두에 뒀다.
영화에서는 '스케르조'와 피아노 3중주, 소나타 등 슈베르트 음악이 많이 나온다. 합주 장면에 현악 4중주곡 '죽음과 소녀'가 흐른다. 촬영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했다.
하네케 감독은 영화로 만들기 곤란한 소설 속 회상 장면을 모두 걷어내고 대신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새로 만들어 넣었다.
하네케 감독은 지금까지 본 영화 중 가장 감동적 작품으로 파졸리니 감독의 '살로'를 꼽았다. 그는 이 작품을 보고 3주 동안 마음이 아팠으며, 이후 그동안 갖고 있던 영화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원작자 옐리네크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 공산당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교회를 증오한 무신론자였고, 어머니는 부르주아 집안 출신의 카톨릭 신자였다.
작가는 어머니의 강요로 6,7세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얼린을 배웠고 음악학교에 진학해 작곡을 공부했으며 오르간 연주자 학위를 받았다.
마지막 장면의 건물 현관이 피아노의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을 연상케 한다. 감독은 "영화에 대한 해석은 관객의 몫인 만큼 각자 다르게 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