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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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 (블루레이)

울프팩 2016. 10. 7. 06:29

정지우 감독의 '해피엔드'(1999년)가 개봉한 지 벌써 17년이 지났다.

앳된 소녀 같은 얼굴의 전도연과 젊은 청년의 모습이 역력한 최민식, CCTV도 보이지 않고 휴대폰 조차 흔치 않아 유선전화를 이용해 밀회를 나누는 장면 등에서 지나간 세월의 깊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인 이 작품은 불륜이라는 만만찮은 주제를 다뤘다.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남편이 절망과 분노 끝에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다.

 

통속극에서 다루는 흔한 소재이고 배반당한 사람의 복수라는 상투적인 흐름으로 이어지지만 결말을 알면서도 과정 자체가 궁금해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그만큼 이야기를 농밀하게 풀어내고 장면들을 짜임새 있게 엮어낸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여기에 IMF 이후 실직한 가장들의 불안한 삶과 여성들의 사회 진출, 이 안에서 역할이 바뀌며 일하는 여성과 살림하는 남자라는 가치전도의 불안정성을 적절하게 얹었다.

하지만 불륜 드라마의 전형적인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한 부분도 보인다.

 

남편과 정사에 만족하지 못하는 아내, 불륜녀에게 집착하는 애인, 좋은 엄마를 고집하는 남편 등은 불륜 드마라에서 흔히 보여준 코드들이다.

이야기 전개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전형성이라는 한계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일각에서는 이 작품이 마초적인 남성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영화가 회사와 집안 일 모두에 충실하기를 원하는 틀에 박힌 여성의 역할에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불륜에 대한 단죄이기도 하지만 아이를 내팽개친 나쁜 엄마에 대한 단죄라는 설정을 통해 남편이 벌이는 복수의 정당성을 획득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들보다는 남성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더 크다는 시각이다.

 

더불어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남편이 아내의 낯선 열쇠를 바로 발견하고 이를 통해 불륜남의 집을 찾아가는 설정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매력적이다.

감독의 꼼꼼한 연출과 전라 연기를 마다않고 투혼을 불사른 배우들의 연기, 적절한 카메라 구도 등이 잘 조화를 이뤘다.

 

삽입곡들도 좋다.

그래험 내쉬의 'Prison song', 빌리 본 오케스트라의 'Petite Fleur', 오티스 레딩의 'These Arms of Mine' 등은 장면과 잘 어울렸고 따로 떼어내 들어도 가슴에 와닿는 좋은 곡들이다.

 

1080p 풀HD의 1.78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은 편이다.

영화 시작하고 초반 타이틀 부분은 윤곽선도 퍼지고 지글거림이 심하며 디테일도 떨어지지만 뒤로 갈 수록 안정된다.

 

원경과 중경의 디테일은 떨어지지만 클로즈업 장면은 잡티 하나 없이 아주 말끔하고 깨끗하다.

DVD 타이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개선됐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극의 특성상 서라운드 효과가 그렇데 두드러지지 않는다.

부록으로 정 감독과 심재명 명필름 대표, 전도연이 참여한 음성해설, 제작과정, 배우 인터뷰와 뮤직비디오가 들어 있다.

 

음성해설은 DVD 타이틀에 없는 부록이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초반 타이틀 부분은 화질이 썩 좋지 못하다. 그러나 뒤로 갈 수록 나아진다.

개봉 당시 전도연이 전라를 마다 않고 파격적인 정사 연기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최민식의 모습을 보면 깜짝 놀랄만큼 젊다.

불륜남을 연기한 주진모. 대본도 정 감독이 직접 썼다.

전도연은 원래 머리에 가발을 붙여서 길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이 작품은 '쉬리' '주유소 습격사건' 등 히트작들과 같은 해 개봉했는데, 이 틈바구니에서 114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 해 한국영화 흥행 순위 6위에 올랐다.

주인공 부부가 사는 아파트로 나온 곳은 당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종암동의 SK아파트다.

이 작품으로 정 감독은 영평상 신임감독상, 전도연은 영평상 여우주연상과 춘사영화제 여우주연상, 최민식이 아태영화제 남우주연상, 주진모는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촬영은 '암살' '고지전' '만추' '그때 그 사람들' '바람난 가족' '거짓말' 등을 찍은 김우형 촬영감독이 맡았다.

정 감독은 많은 영화를 연출하지는 않았지만 이 작품 이후 '모던보이' '은교' '4등' 등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을 만들었다. 또 강우석 감독이 연출한 '이끼'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해피 엔드 (Happy End)
정지우/최민식, 전도연, 주진모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해피엔드 (500장 풀슬립 넘버링 한정판) :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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