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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블루레이)

울프팩 2011. 12. 31. 09:47
인류가 멸망한다.
43년 전 개봉한 '혹성탈출'은 인류의 멸망을 다룬 무시무시한 재앙같은 영화였다.

그 영화가 특히나 충격적이었던 것은 인류가 유인원의 지배를 받는 비참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끔찍했던지, 어린 시절 TV에서 본 영상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았다.

과연 인류가 어쩌다 그토록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으며, 유인원들은 어떻게 지배자가 될 수 있었을까.
1편에서는 한 줄의 암시같은 영상이 전부였다.

절반의 해답을 들고 나온 것이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의 프리퀄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년)이다.
와이어트 감독의 설정은 그럴 듯 하다.

치매치료제 개발을 위한 실험이 급기야 침팬지에게 놀라운 변이를 일으켰고, 이들이 스스로 자존을 위해 탈출을 하는 내용이다.
결국 원인은 사람들의 잘못이다.

과거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잡아다가 비인도적으로 다룬 백인들처럼, 포획한 침팬지들에게 몹쓸 짓을 한 인류의 자승자박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황당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있다.

1편 이후 제작된 후속편들 가운데 가장 낫다.
그동안 나왔던 후속편과 리메이크작은 허접한 내용과 진부한 구성으로 오히려 1편에 누(累)가 됐다.

1편보다 진일보한 것은 디지털 배우들이다.
모션캡처를 이용해 표정까지 컴퓨터 그래픽으로 감쪽같이 만들어낸 디지털 유인원들의 연기를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탄탄한 대본과 감독의 긴장감있는 연출, 감쪽같은 디지털 이미지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 제법 볼 만 한 작품이 됐다.
그래도 이 작품의 충격이 배가 되려면 역시 오리지널 1편을 봐야 한다.

1080p 풀HD의 2.35 대 1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최신작답게 화질이 훌륭하다.
색감이 생생하고 사프니스가 우수해 커다란 화면으로 키워 놓으면 디지털 영화의 진가를 발휘한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또한 서라운드 효과가 뛰어나다.
부록으로 감독과 대본작가 등 2가지 음성해설, 제작과정 및 삭제장면, 유인원에 대한 설명, 모션캡처 장면 등이 모두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이 1963년 발표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피에르 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유 프랑스군과 영국 특수부대원으로 참전한 경력이 있으며, 이를 토대로 유명한 소설 '콰이강의 다리'를 썼다. 두 작품 모두 영화화 됐으며, 소설 '혹성탈출'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다.
이 작품은 시각적으로 충격적이다. 표정과 눈빛까지 사람 못지 않게 감쪽같이 재현해낸 컴퓨터 그래픽 솜씨가 놀랍다. 특히 화면에서 침팬지의 고뇌와 번민이 그대로 묻어난다.
주인공 침팬지인 시저의 연기는 모션캡처 배우로 거듭난 앤디 서키스가 맡았다. 바로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을 연기한 배우다.
이 영화는 오리지널 1편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하다. 신약 ALZ-112는 1편의 상영 시간인 112분에서 따왔으며, 수용소에 갇힌 시저가 호스로 물을 뒤집었쓰는 장면, 실험대상인 침팬지가 과자를 달라고 손을 내미는 장면 등은 1편에서 그대로 따왔다. 1편에서는 찰튼 헤스톤이 감옥에 갇혀 유인원들에게 물을 맞았으며, 언어능력을 상실한 인류가 유인원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한다.
디지털 침팬지는 웨타디지털에서 제작. 피부 밑에 근육과 골격 및 주름, 모공까지 제작했다. 웨타는 진짜 침팬지의 발을 실리콘으로 본을 떠서 컴퓨터 스캔한 뒤 질감을 표현했다.
눈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웨타사 제작진은 안과의사들의 자문까지 구했다.
유인원과 경찰의 금문교 싸움은 모션캡처 사상 최초의 야외 찰영이다. 이를 위해 웨타는 자연광 속에서도 모션캡처용 마커를 인식할 수 있는 카메라를 개발했으며, 비가 와도 합선이 되지 않도록 카메라에 차폐막을 설치했다.
금문교 위 싸움 장면은 일부 구간을 밴쿠버 교외에 야외 세트로 제작한 뒤 촬영했으며, 다리 전체의 모습은 디지털로 만들었다.
침팬지의 DNA는 사람과 99% 정도 같다고 한다. 하지만 힘은 인간보다 5,6배 강하다. 중부 아프리카에 15만 마리 정도 서식하는 침팬지는 멸종 위기종으로, 과일 나무껍질 곤충 등을 먹는 잡식성이다. 침팬지는 숫자를 셀 줄 알고 도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초식동물인 고릴라는 수컷의 경우 체중이 200kg이 넘어 영장류 가운데 가장 크다. 가슴 아래 공기주머니가 있어서 두드리면 공명이 잘돼 소리가 멀리 퍼져 나간다. 역시 멸종위기종이다.
말레이시아어로 숲에 사는 사람이란 뜻의 오랑우탄은 보르네오 수마트라섬 등 동남아에만 서식한다. 주식은 과일이지만 육식도 한다. 특히 오랑우탄은 언어 학습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작 부분의 침팬지 포획 장면은 1편 옥수수밭에서 인간을 사냥하는 유인원들의 모습을 흉내낸 것.
설탕을 좋아하는 침팬지는 탄산수, 그중에서도 게토레이를 좋아한단다. 분홍색 음료가 바로 게토레이다.
어수룩한 관리인으로 나오는 제이미 해리스는 명배우 리차드 해리스의 아들이다.
창살 아래 갇힌 시저가 벽에 그리는 원은 바로 그가 자란 집의 다락방 창문이다. 자유와 가정을 그리워하는 시저의 마음을 대변하는 그림이다.
수용소에서 시저가 뜰로 나가는 장면은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인용했다. 콜로세움에서 터널을 지나 경기장으로 나서는 검투사의 모습을 흉내낸 것.
유인원 수용소의 못된 관리인 도지(톰 펠튼)가 여자친구들을 데려 오는 장면은 영화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를 흉내냈다. 잭 니콜슨이 정신병원 수용자들을 위해 여자들을 데려와 즐기는 장면을 따라한 것.
각본가인 릭 자파는 가정에서 키우던 침팬지가 발견돼 열악한 시설에 보내져 고초를 겪은 기사를 읽고 영감을 얻어 대본을 썼다.
시저 어미의 이름인 '반짝이는 눈'은 1편에서 유인원 자이라 박사가 사로잡힌 찰튼 헤스톤에게 붙여준 이름이었다.
법원 관계자로 잠깐 나온 캐나다 배우 카린 코노발은 오랑우탄인 모리스의 모션캡처를 연기했다.
시저가 수용소를 탈출해 약을 훔쳐 다시 돌아오는 장면은 영화 '대탈주'에서 스티브 맥퀸이 포로수용소를 탈출했다가 일부러 잡혀 돌아오는 내용에서 힌트를 얻었다.
시저와 도지의 싸움은 1 대 1 대결을 벌이는 서부극 분위기로 찍었다.
침팬지보다 더 무서운 인류의 실수가 빚은 종말을 다룬 악몽같은 영화다. 특히나 그 끝이 뻔히 보이기에 더 무섭다.
무리를 모아 탈출한 시저가 나무 위에 올라 샌프란시스코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장면은 1편에서 해변에 쓰러진 자유의 여신상만큼이나 공포스럽다. 삭제장면에는 유인원들이 숲에서 줏은 총기 사용법을 터득하는 장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