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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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허달림 '기다림, 설레임'

울프팩 2008. 8. 4. 06:48
휴가 때였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은 한여름 더위를 내리 누르듯 저녁부터 비를 쏟았다.
더위에 지쳤는 지, 빗소리에 취했는 지 어느 순간 잠이 들었고, 그러다 노래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1시.
라디오에서 나즈막히 흘러 나오는 노래 소리는 잠에 취한 나를 완전히 사로 잡았다.
자다가 노래 소리에 깨본 게 얼마나 오랜만이던가.

그만큼 이 노래는 달랐다.
부드러우면서도 서글픈 선율은 마치 마법처럼 잠에 취해 혼곤한 몸을 허공에 둥둥 띄웠다.

누굴까.
못내 궁금했고, 결국 음반을 사게 만들었다.

강허달림.
그가 부른 '기다림, 설레임'이었다.

전형적인 블루스 가수인 그의 목소리는 두 명의 여자 가수를 떠올리게 한다.
안으로 한을 삭이는 듯 서글픔이 잔뜩 응축된 목소리의 니나 사이몬과 블루스를 새롭게 조망하게 만든 우리 가수 명혜원이다.

니나 사이몬이 부른 'ne me quitte pas'는 끊어질 듯 이어질 듯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가 저음에서 고음을 오르내리며 듣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쓸어내린다.
명혜원의 '청량리 블루스' 역시 거칠게 디스토션이 걸린 기타 반주와 함께 몽환적인 목소리가 온 몸을 나른하게 만든다.

강허달림의 목소리에는 두 사람의 느낌이 모두 묻어있다.
그래서 반가우면서 낯설고,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이다.

동전의 양면 같은 매력이 공존하는 그의 목소리는 올해 5월 '기다림, 설레임'이라는 정식 음반으로 세상에 빛을 봤다.
홍보가 많이 안된 탓에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지만 이 음반은 상반기 묻혀버린 걸작 중 하나로 꼽힌 명반이다.

블루스가 성공하기 힘든 풍토에서 제대로 된 블루스 음반이 나온 것도 반갑지만, 판소리로 단련된 우리 소리를 섞어 독특한 제 음색을 가미한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 하다.
물론 그 정점에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아름답고 슬픈 '기다림, 설레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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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허달림은...>
본명은 강경순.
올해 서른 다섯의 전남 승주 두메산골 출신 여성.
달린다는 뜻의 달림에 어머니 성 허씨를 합쳐 스스로 '강허달림'이라는 예명을 만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가수 이선희의 노래를 듣고 가수가 되기로 결심.
고교 졸업 후 음악을 하려고 서울로 상경해 회사 경리, 청소부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서울 재즈아카데미 보컬과에 입학한 것이 음악 인생의 시작.

나중에는 돈이 없어 학원에서 청소부를 하면서 노래했는데, 동기생들 앞에서 처음 노래 한 날, 강사가 "지금껏 수업중에 자기 색깔로 노래를 부른 사람은 처음"이라고 칭찬을 했단다.
이후 스튜디오70's라는 클럽에서 접시닦이를 하던 중 그의 노래를 들은 사장이 공연을 제안했고 이 공연을 본 가수 엄인호가 신촌블루스의 보컬로 전격 발탁.

덕분에 그의 1집 '기다림, 설레임'에는 엄인호가 기타 반주를 했다.
갖은 어려움 끝에 나온 음반이라서 그런 지, 그가 전곡을 작곡한 1집 음반의 노래들은 참으로 절절하다.

블루스를 좋아한다면,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한 번 들어볼 만하다.
우리에게도 이런 가수가 있다는 사실은 반가움이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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